"흙수저"라니요...

우리,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예의를 갖춥시다

by 마타이

직업을 가진 이후로 직장을 여러 차례 옮겼다. 연애뿐만 아니라 직업에 있어서도 금사빠인지라, 초반엔 애정이 절절 끓어올라 연인에게 구애하듯 살뜰히 매만지다가도, 2년만 지나면 아무리 부딪혀봤자 목석같이 별 반응 없는 조직에 싫증이 나서 몸이 근질근질해진다.


왜 또 그만두냐는 엄마의 타박에 어딜 가도 이만한 직장 못 구할 것 같냐며 당당히 맞서지만 스스로라고 자신이 있어서는 아니다. 못 견딜 뿐이다. 스스로의 지랄 맞은 성격을. 그러니 내 몸이 고생이다. 한참 일 잘한다는 소릴 들을 때, 내 몸 편해질 때가 되면, 그게 바로 떠날 때다.


대학졸업 후 20년 넘게 직장생활을 했으니 3년에 한 번씩만 직장을 옮겨도 무려 7개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3년에 한 번씩 새 직장에 적응하고, 내 보잘것없는 연장으로 새로운 재료를 다듬고 써는 삶도 의미는 있었다. 다양한 산업으로 옮겨다녔기에 지겨워 미치지 않고 이제껏 같은 직종에서 일할 수 있었다.

한국사회에서는 스무 살이 지난 자식도 품 안의 자식이다. IMF로 많은 아이들이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대학 입학금부터 생활비까지 내리 제 손으로 벌어 살아온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니 대학시절 스스로를 벌어 먹인 것까지 합치면 벌써 30년을 바라보고 있다. 풍족하지 않은 집안 살림도 30년간 꾸준히 일하게 해 준 동력이다.


아빠의 아빠, 엄마의 엄마는 그들이 어린 시절에 돌아가셨다. 처음엔 원래의 거주지에서 산과 바다의 것들을 채취하며 살아가다, 결국 가족들과 헤어져 생계를 위해 일거리가 있다는 서울로 상경하게 된다. 형제자매들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제대로 학업을 마치지 못했으니 서울에서 구할 수 있는 직업도 보잘것없긴 매한가지였다. 서울에서 청년으로 성장한 남자와 여자는 가진 것도 가릴 것도 없었기에 판자촌 단칸방에서 살림을 시작했고, 십여 년간 한옥으로 또 3층짜리 빌라로 거처를 옮겼으나, IMF와 함께 이 모든 것들은 사라졌다.


내 부모의 시대에는 남자는 구혼할 때 처자식은 굶기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을 것이나, 시대가 변해 내 엄마와 내 삶은 달라졌다. 맞벌이도 하고 애도 네가 키워야 한다고 살림도 네가 해야 한다고 당당히 말하던 셈 빠르고 시대착오적인 애인들 덕에 시집도 못 갔다. 그 어느 누구도 나를 대신해 나를 먹이고 입히겠다 거짓이라도 고하지 않은 것이 가장 고마운 일이 될 줄은 몰랐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랬다.


2010년대 초반 회사에서 대리 조무래기 무렵, "흙수저"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부모의 경제력이 자식의 경제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이야기다. 그때쯤 응당 나왔어야 할 이야기다. 상속재산뿐만 아니라, 어려서 받는 교육과 기회, 경제적 지원의 차이가 결국은 살아가는 데 있어 차이를 만들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발생할 불평등한 사회적 기회에 대한 이야기가 이제 시작되어야 마땅한 사회로 진입했기 때문이다.


힘들었던 대학시절 에피소드를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된 것도 그때쯤이다. 사람은 이야기 속에서 사는 것이라 믿어왔는데, 내 부모의 이야기는 어느덧 주홍글씨가 되었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이제는 더는 극복 가능한 이야기가 아닌 세상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 스스로에게도, 타인에게도 절대 붙이지 않는 라벨을 제 스스로 붙이는 이들을 만나게 되었으니 내가 다니는 직장의 오너들이었다. "저는 흙수저였습니다" 배울 만큼 배운 양식 있는 그들이 흙수저가 무엇인지 몰랐던 것일까.


그들의 부모는 40년대 50년대에 서울에서 대학을 나왔고, 나중에 청사가 들어선 큰 땅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그들의 자식에게 재산을 상속했으며, 서울에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신문을 보았다면 알았으리라, 흙수저는 자산 5,000만 원 이하, 연 소득 2,000만 원 이하,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일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업이 업이다 보니 기업의 오너를 근거리에서 보고, 또 그들의 인생사를 마치 내 이야기인양 스토리텔링에 활용해야 하는 일도 많았는데, "내가 흙수접니다. 제 혼자 힘으로 여기까지 일구어냈지요"라고 말하는 것을 듣자니, 아마도 흙수저와 자수성가를 혼동한 모양이다. 아니면 "자수성가"라는 단어보다 "흙수저"가 더 드라마틱하고 직관적이라고 여겨졌던 것일까.


이러다 이재용도 흙수저라고 나설 판이다. 왜 아빠는 준비도 다 끝나기 전에 눈을 감으셨나요. 사회적인 부채 의식 없이, 다른 이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바라볼 생각도 없이 자기 삶의 고단함만, 자기 삶의 대견함만 생각하고 사는 이들이 안타깝다.


나라고 그런 실수를 안 하는 것은 아닐 거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나만 돌보다 타인을 자꾸 잊는 것들, 나 자신의 인생 밖에 살지 못하는 한계가 있는 것이니까. 어떤 사람들은 태산을 가지고도 가난한 집 이삿짐 차 살듯이 산다. 부실하고 미천한 생각을 부끄럽게 여기지 못하고 만천하에 보일 수밖에 없는 삶. 그들의 자산이 하나도 부럽지 않아 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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