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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tgrim Jan 31. 2018

춘설, 다시 오는 봄

- 고 황병기 선생님을 추모하며

방금 황병기 선생님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또 한 분의 명장이 사라지는 아침, 스산하여 등이 시리더니, 눈물 한 방울 떨어지네.


아이들 둘 다 한국에서 낳지 못했다. 남편과 결혼을 하자할 당시에도 미국에는 한 1년만 더 있을 줄 알았던 것이 여차저차 사정이 바뀌어서 5년을 머무는 통에 두 아이 모두 첫 숨을 한국에서 맡아보지 못했다.


그렇게 신생아 배꼽 떼는 거부터 시작하여 아이가 열이 날 때마다 매달릴 수 있는 건 얄팍한 인터넷 정보뿐이던 시절. 큰 아이가 2살 반, 둘째가 6개월 젖먹이였을 무렵, 두 아이가 같이 기저귀를 떼지 못했기 때문에 손과 몸이 두배로 바쁠 수밖에 없었다. 밖은 6개월이 겨울이고 안은 귀엽지만 울기만 하는 아이들 둘과 퉁퉁 불어 터진 내 육신뿐이었다. 그때 감기가 왔었던 것 같다. 마음의 감기가…


“약이라도 좀 주세요. 당장 미칠 것 같아요. 엉엉”하며 진료실에서 소리 지르는 내게 한 열살은 어려 보이는 인도계 의사가 어설픈 인도 영어로 대답한다.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건 약이 아니에요. 당신과 아이들을 돌봐줄 수 있는 사람이에요”

누가 그걸 모르냐고 이 양반아. 하는 욕을 한국말로 해 줄까 하다가 그냥 나왔다.


그 병원을 찾기 며칠 전, 오후에 내 품에 안겨 있는 작은 아이, 손가락 빨면서 내게 징징대며 다가오는 큰 아이… 둘 중 누구를 던질까 생각한 적 있다. 진짜 잠깐 한 5초… 6초 후 대성통곡하며 나의 상태를 깨닫고 찾아간 병원에서도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남편도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출퇴근을 해야 하는 남편이 없는 나머지 시간. 친정 엄마는커녕 잠시 아이를 맡겨 볼 친구 이웃 하나 없는 곳에서의 육아는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이다. 82년생 김지영은 키즈카페도 다니더구먼. 


그 극악무도했던 5초의 상상. 그때 알게 된 것은, 이 세상 그 누구도 “善”하지 않다는 것. 위대한 어머니의 사랑은 개뿔, 어미이기 이전에 던지고 도망쳐서 내 목숨이라도 건지고 싶은 인간일 뿐이다.


그렇게 잠시의 감기와 겨울을 걷던 중, 황병기 님의 <춘설> <침향무><미궁> 등의 가야금 연주를 매일 24 시간 틀었다. 거의 꼬빡 한 달쯤 그랬던 거 같다. 아이들 밤에 재울 때는 이만한 게 없었다. 스르르 정말 잘도 잠에 든다. 조금씩 조금씩, 5초의 순간을 상상하게 했던 내 마음의 괴물은 음악이 지겨웠는지 저만치 멀어지는 게 보였다. 


다시 봄. 결국 봄은 온다. 끝까지 눈이 녹을 때까지는 조금 더 걸리더라도. 그래도 봄은 온다.

그 봄을 다시 알아볼 수 있는 다리를 놓아주셨던 분이 내게는 황병기 선생님.

그분의 영면을 기원드리며. 


https://youtu.be/Ts2SOQBbT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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