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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tgrim Feb 16. 2018

사람도 팔레트를 닮아 있습니다

- 당신도, 나도 좋은 작품 되기

사람도 팔레트를 닮아 있습니다

50개도 넘는 다양한 이름의 물감들이 팔레트 안에 채워져 있습니다.


그냥 파란색 하나만 있는 줄로 알았겠지만, 왠 걸요… peacock blue, cobalt blue, cerulean blue, marine blue, ultra-marlinedeep blue… 이 외에도 많습니다. 우리 말에도 쪽빛, 남빛, 푸른색, 하늘빛, 시퍼런 색 등, 여러 결의 파란색이 있지요. 


붓에 물을 적시고 파란색 한 번, 붉은색 한 번 휘리릭 섞은 채로종이 위를 달리게 해 봅니다. 푸르스름하고 불그스레한 보랏빛이 붓 그림자를 쫓아 뜁니다. 그렇게 색은 뒤섞이며 또 다른 색이 되는군요.


사람도 팔레트를 닮아 있습니다. 

사람 속이란 알고 보면 다양한 물감이 나뉘어 담긴 팔레트입니다. 


어떤 사람은 의외로 몇 가지의 물감이 없는 팔레트입니다. 그려내는 그림마다, 말하는 언어마다 모노톤입니다. 덕분에 매우 선명합니다. 조금이라도 다른 색이 묻히게 되면 바로 눈에 띌 수밖에 없는 데다, 갑자기 다른 그림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얼른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칫 내 편이 아니면 네 편이고, 흑색이 아니면 백색입니다. 때로는 수묵화가 주는 여백의 미가 충만한 작품을 만들지만, 부서진 대나무를 그린 사군자가 없듯 빈틈없이 단호하기도 하지요.


어떤 사람은 셀 수 없이 많은 물감이 담긴 팔레트를 닮았습니다. 돌아가며 다른 색의 물감을 찍어 점만 찍어 나간대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점묘법 화가의 수고로움으로 내내 바쁜 사람이지요. 가까이서 보면 붉었다가 또 옆은 노랬다가, 다시 보니 또 파랬다가 온갖 난리통 아무색 대잔치입니다. 가끔은 대체 뭔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뭔 소리를 하는지, 무슨 주제의 작품을 그리고 있는 건지 보는 사람이 모를 때가 있습니다. 한창 초록색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검은색에 흰색마저 있다며 잔소리도 듣지만, 한 걸음 떨어져서 멀리서 보면 의외의 풍경을 담고 있는 경우도 있지요.


먼 조상으로부터 알게 모르게 물려받은 어떤 팔레트... 그 속에 담긴 물감들의 종류와 개수는 어쩌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붓과 종이를 선택하 고조 절 할 수 있으니 다행입니다. 똑같은 팔레트라고 해도 어떤 붓, 어떤 종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남겨진 작품은 모두 제각각이니까요. 


설령 흰색과 검은색만 담긴 팔레트로도 어울리는 붓과 종이를 선택하면 큰 깨우침을 세상에 던지는 명작을 만들 수 있고, 발 디딜 틈 없이 온갖 정신없는 물감으로 산만한 팔레트를 사용해도 인생을 바꿀 만큼 멋진 작품을 그려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부디…

다른 사람의 팔레트가 내 팔레트와 다르다고 너무 놀라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의 팔레트가 다른 사람의 것보다 물감 종류가 적다고 너무 슬퍼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 사람의 팔레트가 너무 지저분하다고 손가락질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세상에는 원래 각양각색의 팔레트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팔레트가 아니라, 당신과 내가 지금부터 손에 쥘 붓, 그리고 적합한 재질의 종이를 찾는 일입니다. 당신도 나도… 최선을 다해 좋은 작품이 되면 좋겠습니다.



https://youtu.be/oxHnRfhDm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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