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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tgrim Feb 25. 2018

너의 갑옷, 그리고 이빨 요정

너에게 커밍아웃하려 했다.
“이빨 요정은 이 세상에 없다”라고… 이미 눈치채고 있었던 너의 마음을 너 스스로 애써 외면하며 “그래도 있을 거야” 하면서 오늘 저녁 내내 그동안 이빨 요정 엑셀리온에게 받았던 편지들을 다시 찾아 꺼내 읽어보는 너를 보며, 결국 이번에도 엄마는 엑셀리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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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에서 살 거라곤 그나마 너에게 이제는 필요할 거 같은 이어폰. 작년 미국에서 가깝게 지냈던 친구 Conor와 내일 Skpe로 오래간만에 통화하기로 했는데 너만의 이어폰이 없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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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에서도 이어폰을 팔아서 다행이다. 편리하게 언제든 손 닿는 지점에 너에게 필요한 작은 것 하나 건질 수 있었으니, 이런 것이 사는 즐거움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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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들아, 엄마는 소통보다는 너에게 ‘갑옷’에 대해 이야기했다.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갑옷은 끝까지 잘 살아남기 위한. 그러므로 방어가 아닌 “삶을 향한 너의 공격”이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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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믿었던 사람이 언제든 자신이 살기 위해 너를 공격하기도 한다. 심지어 혼자의 공격이 두려워 여러 사람들을 모으고 같은 어둠 한 조각씩 나누며 그것으로 사슬을 엮어 갑옷을 만들더라. 그러나 미워하지 않아야 한다. 그 부화뇌동하는 자가 나일 수도 있고 너일 수도 있더구나. 한동안의 시간이 지나야, 달력의 페이지가 넘어가야, 그제야 알아지는 일들이라 너무 탓하지는 말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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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개 밑에 네가 잘 끼워둔 작은 이빨 봉투를 꺼내어 엑셀리온의 꾸러미를 넣는다.
이것이 마지막 이빨요정의 선물이 될지, 아직은 너의 동심을 위한 “갑옷”으로 엄마가 몇 번 더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들아, 부디 너는 “삶을 잘 살아내기 위한 갑옷”의 지혜를 얻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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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이 겁 많은 엄마는… 튼튼하지 못한 갑옷을 입었던 탓에 뚫린 상처가 조금 쓰리더라. 하지만 괜찮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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