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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tgrim Mar 13. 2018

엉킨 관계를 푸는 일

- 엉킨 줄 사이의 공간이 필요하다

귀도 뚫지 않아 귀걸이를 해 본 적이 거의 없는 나는 심지어 고무장갑 기피자라 반지를 끼는 일도 거의 없다. 다만 목 부분이 심심하다 싶을 때 이따금 목걸이를 착용한다. 소유 중인 목걸이는 결혼할 때 받은 세 개 외에 세 개 도합 6종이 전부. 하긴 사용하는 향수와 바디로션 마저 올 해로 같은 제품으로만 20년 차다. 몸이 다소 심심한 사람이다. 

며칠 전 착용하고 벗어 두었던 내 유일한 귀중품인, 진주 목걸이를 꺼내는데, 아뿔싸, 고속터미널 지하상가에서 5000원 주고 산 줄목걸이와 엉킨 채 발굴되었다. 급한 마음에 한쪽 끝을 잡아당겼더니 젠장, 완전히 엉켜 버렸다. 외출 직전이라 입고 있던 패딩잠바를 던지고 낑낑대며 침대보 위에서 다시 풀어보기 시전. 더 엉켰다. 

그리고 생각했다. 엉킨 관계. 풀어보려 할수록 더욱 틀어져버리는 어떤 인간관계.

다시 침대 위에 목걸이들을 본다. 대체 이 두 목걸이는 왜 엉키게 되었을까… 생각해보니 며칠 전에 함에 넣어둘 때 급히 던져둔 일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 다음 날인가 다른 물건 찾는다고 뒤적거렸던 것 같다. 그렇게 두 목걸이들은 널브러져 나의 진동에 속수무책으로 흔들리며 어느 순간 틀어져 버렸던 거다. 진주 목걸이 끈이 더 얇어서도 아니고 빈티지 줄목걸이에 문제가 있어서도 아니다. 목걸이를 따로 잘 보관 못했던 내 탓이 일차적인 이유다.

아무리 끙끙대며 풀어내려 해도 진주목걸이의 얇은 줄이 줄목걸이의 한 부분을 완전히 감고 있었다. 순간 가위를 떠올렸다. 까짓 줄목걸이 확 잘라버리면 되겠네. 그렇게 한 3초 자를까 말까 생각하던 나는 가위 대신 폰카메라를 가져왔다.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그제서야 알았으니까…. 자르면 안 된다는 것을. 하마터면 자를 뻔했다. 내 소중한 줄목걸이를.


우리 모두 관계의 지점에서 자신에게 진주 같은 사람들이 따로 있다. (물론 나 자신일 수도 있다) 나뿐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중요도 순서는 나름 있는 게 아니겠나. 그런데 참 묘한 것이 고속터미널 지하상가를 무심코 걷다가 내 눈에 확 들어온 어떤 물건, “마침 네가 필요했어”라고 외치며 수중에 있는 현금 탈탈 털어 기어이 소유하고 싶은 어떤 것 하나쯤도 누구에게나 있다. 비록 교환의 가치가 비싸지는 않았다 해도 내게는 불과 6개뿐인 목걸이들 중 하나, 그것도 내가 직접 고르고 선택한 매우 소중한 목걸이다. 그 소중한 목걸이를 하마터면 버릴 뻔했다.

다시 두 목걸이를 살살 돌려가며 엉킨 순서를 따라 짚어가는데 역시 줄과 줄 사이의 공간과 틈이 문제다. 한쪽을 손톱으로 꼭 집어 넉넉하게 빼 두면 생기는 공간 옆으로 또 다른 빈 공간을 다시 만들어 보니, 드디어 엉킴의 실마리가 보였다. 두 개의 엉킨 목걸이는 드디어 분리되었다.

나 자신도 누군가에게는 지하상가에서 우연히 조우한 제법 마음에 든 목걸이였을 지도 모른다. 오고 가며 스치는 어떤 인연에 대한 가격이 그 정도라는 뜻이 결코 아니다. 그 우연성과 그 무게가 그러하다는 말이다. “한낱 싸구려 목걸이”가 아니라 나름 시간과 정성을 들여 우연히 만난 매력적인 목걸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렇게 우연함으로 기쁘게 만난
 인연도 우리는 서로 쉽게 가위부터 찾았다. 순간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참고 숨 한 번 쉬었다가 다시 넉넉한 공간을 만들어보니 쉽게 풀리는 두 목걸이처럼, 불가능한 풀어짐은 없는지도 모른다.

나의 부주의로, 혹은 나의 무심함이나 태연함으로 유발한 어떤 관계의 엉킴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내 몫이다. 그러나 지나친 자책도 불가능한 것이 우리 사는 게 바쁘니까, 정신없다 보니 그래, 심지어 진주 목걸이도 그렇게 대충 집어넣게 되는 게 현실이더라. 그렇게 쉽게 관계는 엉킨다.

결론은 이것이다.
가위를 찾기 전에, 애초의 부주의함의 시작이 (의도치 않았더라도) 내게 있었다면 서두르지 말 것. 
조금의 인내를 가지고 두 줄 사이의 공간을 확보할 것.
그렇게 다시 떨어진 두 개의 목걸이는, 각자의 원래 장소에 다치지 않게 잘 보관할 것.
그러면 진주 목걸이도, 빈티지 줄목걸이도 다치지 않고 소중한 나의 것이 되어 가는 것. 

#시간과공간을두기로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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