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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tgrim Oct 17. 2019

뭐가 그렇게 웃겨?

-  영화 <조커 Joker>에서의 몇 마디들

아무리 근사하고 맛난 요리도 바로 먹지 않고 미루었다가 데워 먹은들 그 처음의 맛만 못하듯이, 보아줌직한 콘텐츠도 막 따끈할 때 섭취하는 것이 가장 좋다. 이제 곧 <Joker>에 대한 말잔치가 무수하게 쏟아질 것이다. 영화 <기생충>과 마찬가지로 갈래갈래 되새겨가며 공부하기 더할 나위 없는 텍스트가 될 것으로 짐작한다. 더 식기 전에, 너무 많은 이른바 “평가”들이 물리도록 넘쳐나기 전에, 가능하다면 빨리 따뜻할 때 드시는 것이 좋겠다. 이하는 몇 가지 관전 포인트랄까, 도무지 잊히지 않은 몇 마디였달까. (스포 매우 약)

1. “뭐가 그렇게 웃겨?”
러닝타임 내내 가장 많이 반복되었던 말일 것이다. “What’s so funny?” 아서 플랙은 일종의 틱을 앓고 있다. 어떤 정서적인, 신경학적인 원인으로 인해 자신의 의지와 의사와 상관없이 반복적으로 튀어나오는 행동장애인데, 아서는 참을 수 없이 터져 나오는 기괴한 웃음 때문에 정상적인 일상을 살아내기 버거운 사람이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밑도 끝도 없이 우는 얼굴로 웃는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는 그냥 압도적이다. 관객의 기가 다 빨렸으리라. 관객은 시작부터 지고 들어간다.


2. “거기는 나올 수만 있는 출구야. 들어갈 수는 없다고!”
영화 곳곳에 소스라치는 상징들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 토드 필립스 (Todd Phillips) 감독의 전작들에서도 현대문명에 대한 탁월한 도상학이 남달랐다고 생각했는데, 아뿔싸, 이 감독이 칼을 제대로 갈았구나 싶다. 당장 떠오르는 정말 많은 상징들이 있다지만, 아서를 찾아온 형사가 이 말을 하던 순간에 찌르르 감전되어 버렸다. 이 쪽에서 저 쪽이 보이는 유리문으로 된 어떤 출구(Exit)는 나오는 것만 가능하다. 진입이 불가능하다. 뻔히 보여도 말이다.


3. “그냥 좀 예의를 지키라고!”
자기 자신의 모습 그 자체로, 현실 그 자체로 언제나 타인에게 민폐가 되는 것을 아서는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며 그만큼 언제나 미안해한다. 한때 토크쇼에서 홀어머니를 모시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자기 자신에게 쏟아지던 박수가 그저 위안이고 그만하면 되었다고 끄덕이면서 살았단 말이다. (물론, 이 조차 그의 병적 환영인지는 불분명하지만) 그의 내면을 완전히 무너지게 한 것은 차곡차곡 퇴적물처럼 누적된 것들이 마침내 지진으로 갈라지던 순간이었겠다. 그때 그가 했던 말, “그냥 좀 예의를 지키라고!”


4. “우리가 광대다!”
역사가 혁명적 사건으로 기록한 많은 순간들은 어떤 인과에 의한 필연과 가늠할 길 없는 우연의 쌍곡선이 겹쳐지는 어떤 에너지였다. 트리거(Trigger)가 되는 지점, 누군가의 버튼(button)이 눌리는 지점, 광기(madness)로 치닫게 하는 지점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볼 수 있다면, 우리는 어쩌면 ‘인간’이라는 이 처연하고 슬픈, 맹랑하고 허망한 필멸자에 대해 통곡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기준과 규범, 중심과 질서가 없는 집단처럼 무서운 것도 없으나, 그러한 집단 안에 속해 있지도 못하는 것은 더더욱 무서운 일이니까.  

미쳐 날뛰는 시위대들이 모두 어릿광대의 가면을 쓰고 외친다. 스크린에 뜬 한 줄의 자막. “우리가 광대다! (We are the Clown!)”


그 순간, 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정작 나는 웃고 싶었는데 말이다.


.
덧) 가장 큰 아이러니랄까 모순이랄까, 이런 터질 것 같은 아나키스트적인 파괴 에너지 가득한 콘텐츠를 정작 가장 자본적인, 가장 시장원리적인, 가장 할리우드적인 구조망에서 섭취하게 되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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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on't you love a farce, my fault I fear
I thought that you'd want what I want, sorry my dear
But where are the clowns, send in the clowns
Don't bother, they're 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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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k Sinatra - Send In The Clow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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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YCfrS-lp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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