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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tgrim Mar 24. 2020

고자질쟁이, 그리고 조주빈

아들을 키우는 모든 부모님들에게

내심 방울을 떨어뜨리지 않으려 애쓰는 아이를 나도 적절히 모른 척하며 웃으며 말해주었다

아침식사를 마친 초6 아들이 의자에 누워 르네 고시니의 <꼬마 니콜라의 쉬는 시간>을 읽다가, 대뜸 묻는다.


“엄마! 고자질이 나쁜 건가?”

“응? 글쎄… 고자질쟁이라는 것은 분명 좋은 어감은 아니긴 하지”

“하지만, 알려야 하는 건 선생님께 알려야 하는 거 아닌가? 그걸 고자질이라고 하면 좀 그래서.”

“어떤 내용이길래?”


이야기 속에는 한 아이가 작은 키를 감추려고 발뒤꿈치를 몰래 들어 키를 쟀다는 걸 뒤에 있던 아이가 선생님께 일러바치며 고자질하는 장면이 나온다고 했다.


“승준이 네 생각은 어때? 너라면 선생님께 일렀을까?”

“나라면, 그 친구한테 너 그러면 안된다고 먼저 말했을 것 같긴 해.”


.


그리고 한참을 생각했다. 분명 7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의무교육을 받았던 나는 “고자질”이라는 말이 주는 어감이 부정적이다. 밀레니얼 세대라 할 수 있는 나의 아들은 “고자질”은 그저 “신고” 내지는 “고발”이라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새삼 군부독재와 전체주의와, “튀면 안 돼”라는 우리 어린 시절 문화 등등 따위가 떠오르면서 마음이 혼잡했다. 그러게, 어찌 보면 “어이, 아닌 것은 아니야. 너 그러면 반칙이야”라는 가치를 저변에 깔고 집단의 책임자, 즉 선생님에게 이를 “알림”에 대하여 우리는 이를 “고자질”이라고 규정했던 문화였던가 생각했다. 어찌 보면 처음부터 "알려야 했던 것"을 우리는, 우리 세대는 “저들이 나를 고자질쟁이라고 뭐라 할까 봐” 망설였던 적이 어디 한두 번도 아니었으니까. 실제로.


.


저녁 식사를 마치고 n번방 사건을 다룬 탐사보도 <스포트라이트>를 이어폰 끼고 훑었다. 5분 정도를 더 고민한 후에 결심이 섰다. 이 정도 수위와 내용은 아이들과 공유해도 된다는 확신이 들었다. 중2 딸과 초6 아들을 불렀다. 그리고 모니터 앞에 두 아이를 앉혀 놓고 나와 함께 셋이 처음부터 다시 영상을 보았다. 담담하고 제법 드라이하게 ‘n번 방 사건’과 ‘박사’라는 이가 벌인 일들이 소개된다. 사실 내심 n방 사건이 제법 궁금했던 두 아이는 110%의 몰입감을 보이며 시청했다. 조금 자극적인 내용이다 싶을 때에는 “이것은 실제 장면이 아니야, 대역이야”라는 말, 그리고 중간중간에 필요한 코멘트를 추임새처럼 어미는 넣어주는 역할을 담당했고.


시청을 마치던 딸아이가 그제야 자기 폰을 훑더니 “엄마! 엄마! SBS에서 박사 신상 공개했대! 얼굴하고 이름도 나왔어!” 외치는 것이 아닌가. 마침 모든 영상을 다 본 후, 실제로 확인하게 되는 ‘조주빈’이라는 이름.


나는 스포트라이트 영상을 보면서 내내 박사는 20대 청년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내 예상은 맞았다. 그동안 수사대 조사를 조롱하며 그가 던졌다는 멘트는 조금이면 눈치챌 수 있는 딱 20대의 치기였다. 그러나 단순히 이 때문만은 아니다. 의외로 어린 ‘포주’ 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미, 너무나 이미 우리 부모들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2010년, 지금의 아이들은 1980년대의 아이들과 다르다. 아무리 스마트락을 걸고 유해사이트 차단을 걸어둔 스마트폰을 아이 손에 쥐어 줬다지만, 이미 IT 강국다운 어린 백성들은 가볍게 이를 뛰어넘는 법을 안다. 초5만 되어도 각 학교마다 각 교실마다 “어린 포주”들이 분명히 있다. 조금 노는 나이 든 형이 있던지, 처음부터 매우 무방 비였던지의 이유로 야동 사이트에 접속하는 링크와 방법에 해박하여 또래 친구들에게 이를 “전파”하는 핵심 인물이 꼭 있게 마련이다. 우리 세대로 치면 중학교 교실에서 500원씩 받고 플레이보이 잡지 공급하던 아이 역할이랄까. 이제는 링크와 앱, 그리고 접속 방법이다. 심지어 초등학교 고학년 남학생들 사이에서는 ‘모자이크 지우는 방법’까지 링크가 돈다.


중학교, 고등학교 연령의 청소년들은 이미 “누구나 한 번은” 야한 동영상을 직접 두 눈으로 보았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어머~정말 제 아들은 아니에요. 애가 너무 순진해서!”라고 말하는 부모라면 정확히 속고 계신다는 이야기. 아이들은 안다. 그리고 이미 보았다. 그러므로 문제는 지금부터다. 아이들에게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


우연히 링크 주소를 클릭한 그곳에서 본 어떤 “영상”이 대체적으로 n번방과 같이 범죄로 탄생한 영상을 재탕 삼탕으로 재가공하여 나왔다는 사실을 아이들은 알지 못한다. 단순한 호기심에, 그리고 나아가 점차 빠져드는 습관처럼 “야한 동영상” 여기저기를 들춰보는 것이 그저 성장과정 중에 일 수 있는 호기심이 유발 동기라 할지라도, 이 출처에 대한 의심과 회의 없는 “관망” 그 자체가 불러일으킬 수 있는 비극에 대한 것을 단 한 번이라도 미리 알았다면 당연히 한 걸음 물러설 아이들이 대다수라는 것도 우리는 이해해야 한다.


곧 n번방과 박사 방을 들락거렸던 26만 명의 신상이 어떤 식으로든 공개될 것이다. 이 안에는 거금 몇 십만 원을 지불할 수 있는 대단한 직급과 상당한 연령의 아저씨들이 가득할 것이나, 분명 ‘링크’와 ‘추천’을 받아 무중력의 우주 공간인양 정신이 팔려 아버지의 이름으로 로그인하여 들어온 청소년들이 상당할 것이다. 결코 적은 수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이는 문명의 편리함을 누리는 우리기 지불해야만 하는 어떤 통과의례, 또는 책임과 결과를 묻는 우리의 자책이어야 할 것이다.


.


SBS 뉴스에서 보도되는 조주 빈의 얼굴을 보던 딸이 외친다. “우쒸! 조두순이도 올해 나온다니까! 그게 뭐냐? 무조건 무기징역 가야지!” 조주빈을 잡았다는 뉴스를 보며 아동 성폭행범 조두순이는 올해 출소한다는 사실을 딸은 떠올린다. 아직 정황 파악이 안 되는 아들이 묻는다. “조두순은 또 누구야?”라고.


“아침에 우리 승준이가 엄마한테 물었잖아, 고자질이 나쁜 거냐고. 사실 누구에게 누구의 행동을 “이른다”는 것은 맥락에 따라 판단이 다르기는 해. 근데, 분명한 거 우리 하나 오늘 배웠다 그지? 지금 뉴스에 나오고 있는 저 조주빈이 이제야 잡힌 이유는, 26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 중에 제대로 “고자질”한 사람이 없어서라는 것. 승준이 말처럼 ‘너 그러면 안된다’고 먼저 말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 필요한 고자질이 있다 그지??”


상기된 얼굴의 아들은 그제야 작은 눈물 방물이 고인다. 내심 방울을 떨어뜨리지 않으려 애쓰는 아이를 나도 적절히 모른 척하며 웃으며 말해주었다.


“야한 게 무조건 나쁜 건 아니야. 정해진 나이에 봐도 되는 야한 건 그때 가서 즐겁게 봐도 되는 거야, 알았지?”


초6 아들은 허리를 펴며 내게 대답하였다. “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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