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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tgrim May 28. 2020

마리아 홀린 이야기

-  끝까지 살아남은 마지막 마녀

1593년 현재 독일 지역의 작은 마을 뇌르틀링겐(Nördlingen). 그 곳에 크라운(Crown)이라는 작은 여관이 있었다. 소빙기가 한참이었던 혹한 이상기후가 감돌았던 추운 10월 어느 날, 이 여관의 여주인 마리아 홀린(Maria Hollin)은 몇몇 사내들에게 잡혀 지하 감옥으로 끌려갔다. 누군가 그녀가 마녀 춤파티에 있었다는 것을 목격했다며 고발하였다는 이유다. 마리아 홀린은 그 날로부터 11개월 동안 무려 56번의 지독한 신체 고문을 받았으며, 최장시간 최고횟수의 고문을 견디고도 무죄로 석방된 유일한 사람으로 역사에 기록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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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사냥은 16~17세기 유럽에서 벌어진 학살로, Peter Marshall의 저서 <종교개혁>에 의하면 약 10만 명이 고발당해 총 4만 명이 사망했다고 추정된다. 이런 마녀사냥이 300여 년 동안 유럽사회를 휘몰아친 원인으로는 교황권에 대한 저항, 종교적 갈등, 여성에 대한 증오 등이 뒤엉켜 있지만 더 근본적인 배경에는 소빙기 기후변동이 있었다. 마녀사냥이 최고조에 달했던 것은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후반으로 소빙기의 추위가 절정에 달했던 때였다. 사람들은 이러한 흉작과 기근을 신이 내리는 형벌로 여기면서, 이러한 불행의 원인을 마녀들의 탓으로 돌렸다. 그 결과, 수만 명의 여성들이 죽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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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에 기술된 <History of the German People at the Close of the Middle Ages> 8권에는 1593년 마리아 홀린의 56번의 심문 기록이 기록되어 있다. 그 중 일부를 편역하여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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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번째 고문
손가락 비틀기와 허벅지 조이기 고문 당시 마리아가 했던 말: " 오, 하나님! 나의 이 말을 용서하소서. 나 이 사람이 정말 마녀여서 고백할 것이 있도록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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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섯 번째 고문
로프에 매달려 높은 곳에서 세 번 연속 떨어뜨리기 고문 당시 마리아가 했던 말: “오, 나는 결백해요. 나는 마녀가 아니에요!” 그러자 기록관은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그녀는) 계속 같은 말을 되풀이 한다. 더 이상 기록할 필요를 못 느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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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덟 번째 고문
형틀에서의 고문이 계속되어 그녀가 의식을 거의 잃어갈 때 한 말: “고양이들이 나의 방에 왔어요. 계란과 음식 부스러기를 먹었어요. 아, 그래서 제가 밀가루를 먹으라고 조금 줬거든요? 근데, 그러니까 그 일로 고양이들이 죽었는지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그 뒤로 제 방에 오지 않았거든요. 혹시 이 일 때문에 내가 고발되었나요? 고양이가 죽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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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홉 번째 고문
고문 중 혼절했다가 잠시 깬 그녀가 한 번 했던 말: "한 번은 잘 생긴 청년이 내게로 왔어요..아, 염소 발을 했나 봐요. 악마였어요. 아마 그래요 강간을 당했던 거 같고, 맞아요, 나의 피로 계약을 맺었을 거예요.” 그러나 이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다시 곧바로 방금의 진술을 다시 번복한다. “아! 아! 아니에요. 방금 제 말은 모두 거짓이에요. 제발, 이 고통을 잠시라도 멈추고 싶어서 제가 전혀 모르는 이야기들을 했어요. 아마 다른 마녀들에게 들었을 거에요” 오열하며 그녀에게 다시 형틀의 허벅지 조이기가 시작되자 그녀는 이런 기도를 했다. “오 주여! 제게 자비를 베푸소서. 오 하나님의 어린양이 세상의 죄를 대신하였으니, 오, 제게 자비를 베푸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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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 번째 고문
물 속으로 세 번이나 담금질 당하는 물고문이 기록되었으나, 어떤 이유로 이 고문을 그만두었는지 상세히 서술되어 있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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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의 기록은 전부 불명확하다. 총 56번의 고문으로 이루어진 심문이 11개월 지속되자, 마리아 홀린의 심문과 재판 담당자들은 더는 버틸 힘이 없을 만큼 지쳤는데다가, 경제적인 문제마저 발생하였다. 당시 마녀사냥은 경제적 갈취가 목적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마녀 혐의로 기소된 사람들이 무죄가 되는 경우가 거의 없었던 이유는, 마녀라고 자백만 하면 규정에 따라 그 사람의 재산을 몰수할 수 있었기 때문에 죽기 직전까지 고문을 해서라도 자백을 받아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처형된 마녀의 재산은 몰수되어 영주, 주교, 심문관 등이 배분하였다. 그리고 고문 및 처형 비용도 심판을 받는 사람과 그 가족이 지불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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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마리아 홀린의 경우, 무려 56번이나 고문을 해도 “자백”을 받지 못했고, 마리아 측이 지불할 수 있는 돈도 바닥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자백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을 1년 동안 학대하는 행위 자체는 고문관들에게도 정신적 트라우마를 주었을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결국 고문관들, 심문관들이 판사(주교)에게 청원서를 내었는데, “그녀의 남편이 고문 비용을 지불하고, 석방 이후에도 그녀가 법원의 허락 없이는 외출할 수 없는 감금의 조건으로 석방시키자”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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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홀린의 고향 울름(Ulm)의 목사 빌헬름 루츠(Wilhelm Lutz)는 그녀의 11개월 간의 투쟁을 전해 듣고 그녀의 용기에 큰 감명을 받았다. 그는 분노하며 개신교 박해에 항의하며 다음과 같이 일갈하였다 : “이런 식의 심문으로는 절대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시어머니들에게, 아내들에게, 남편들에게, 저들이 수상하다고 마녀같다고 쑥덕거리는 말들 때문에 재판을 하다니, 대체 이것이 다 무슨 소용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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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후에 기록으로 남겨진 것으로 보이는 그녀의 최후 판결문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노블링겐의 명예롭고 고귀하며 현명한 심문관들과 치안판사들은, 자신들의 관직에 대한 충성심 아래 그녀를 체포하여 수 차례 엄중하게 조사하였다. 심문관과 치안판사들 모두는 그녀가 적극적으로 확고히 결백을 주장하다가 잠시 어떤 자백을 한 후, 곧바로 이를 철회했기 때문에, 이후 오랫동안 그녀에게 대단한 인내심으로 조사에 임하였다. 이후의 증거와 정황이 있어 그녀가 다시 조사를 받았으며, 그녀가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지만 그녀 앞에 놓인 증거와 혐의에 대한 완벽한 해명 또는 설명, 반증 된 바가 없었기에, 심문관들과 치안판사들은 그녀를 상대로 계속 조사를 진행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한 번에 한하여, 자애로운 아버지와 같은 친절과 동정심으로 우리는 그녀를 석방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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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그녀에 대한 기록은 없다. 다만, 이 일이 있은 이후 뇌르틀링겐에는 마녀로 판결받아 화형에 처해진 사람이 없었다는 기록이 남겨져 있을 뿐이다.

<광신의 순교자 (The martyr of fanaticism)> by José de Brito (c. 1895)




참고한 문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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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에 기술된 <History of the German People at the Close of the Middle Ages (Volume 8)> 480-484 p (Weng, Heft vii 4-24 재인용으로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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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ch Hunt: The History of Persecution , Nigel Cawthorne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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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위키 – 마녀사냥 (https://namu.wiki/w/마녀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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