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matgrim Sep 29. 2020

솔웨이의 순교자

-  그저 믿었던 여자

밀물의 때가 다가오면서 차가운 바닷물이 서서히 차 오른다. 나무 말뚝에는 18세 소녀 마가렛 윌손(Margaret Wilsond)이 묶여 있다. 소녀는 “여호와여 내 젊은 시절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주께서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으로 하옵소서(시편 25장 7절)”을 높이 외치고 있다. 

멀찍이 무리의 군중이 울며 외치는 소리, “제발, 오 제발 마가렛! 이제 그만 왕에게 만세를 외쳐다오. 너의 목숨을 스스로 구해다오!” 로마서의 서신을 읊조리던 소녀가 다시 외치기를, “하나님께서 뜻이 있다면 왕을 구원하실 거에요. 그것을 저는 기도할 뿐이에요" 그때 마가렛의 가족들이 오열하며 집행관에게 말하기를 "보세요! 마가렛이 말했다니까요! 왕의 축복을 기도하고 있잖아요! 오, 제발 사형을 멈춰 주세요!" 그리하여 마가렛에게 가까이 다가간 집행관이 다시 왕께 맹세를 하겠느냐고 물을 때, 마가렛이 답하기를, "거부합니다. 나는 주 그리스도의 자녀일 뿐, 나를 죽이시오." 

그리고 소녀는 그렇게 서서히 밀려드는 바닷물 속으로 잠긴다.

.

마가렛 윌손은 1667년 스코트랜드 위그타운셔의 글렌버노크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독실한 장로교 신자로 스코틀랜드의 17세기 스코틀랜드 장로교 운동인 커버넌터스(Covenanters)의 일원이었다. 커버넌터스는 1638년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에 영국 본토 스튜어트 왕들의 간섭을 반대하는 맹서를 하며 저항 운동을 하였는데 이들을 맹약파(盟約波)라고도 한다. 이들은 그 어떤 사람도, 심지어 왕도, 교회의 정신적 우두머리가 될 수 없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기독교 교회의 영적 우두머리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순수주의자들이였다. 

.

영국의 찰스 1세가 사형된 이후 크롬웰의 공포 정치 등 여러 갈래의 복잡한 상황을 거치며 다시 찰스 2세가 복귀하였고 애초에 찰스 1세를 도왔던 스코트랜드의 커버넌터스는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왕, 귀족, 군인, 교황, 목사, 지주, 상인 등 이른바 각계각층은 서로의 필요에 따라 끊임없이 합쳤다가 갈라서기를 반복했다. 권력을 쥐어야만 하는 당위성은 누구에게나 있었을 것이다. 당장 그 누구에게도 그것이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략이었으니까. 배신과 배신의 연속이었던 17세기 영국과 스코트랜드. 이 두 국가의 경계에 있는 갤러웨이 해변 마을에서 두 여자가 처형된 것은 1685년 5월 11일이었다. 

.

당시 커버넌터스들을 찾아내기 위해 실시했던 것이 이른바 왕의 안녕을 기원하는 만세와 충성 서약이었다. 그저 몇 마디의 짧은 만세 한 구절이었지만 커버넌터스들은 이를 거부했고 그 즉시 끌려가 사형에 처해지던 시기였다. 14세 여동생과 같이 붙잡힌 마게렛, 그리고 또 다른 나이 든 과부 한 명이 감금되었고, 마가렛 자매의 아버지는 눈물로 호소하며 보석금을 지불하였으나 14세 어린 여동생만 풀려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래도 젊은 마가렛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줄 요량(?)으로 늙은 노파를 먼저 처형시켰고, 일부러 가 모습을 마가렛에게 보여주게 하여 그녀의 “왕께 맹세” 자백을 받아 풀어주려고 했다는 기록도 남겨져 있다. 그러나 18세의 마가렛은 애초의 자신의 신념과 믿음을 철회하지 않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

335년 전, 지금의 고등학생 나이의 어린 소녀가 바닷물에 잠겨 죽음을 맞이했다. 자고 일어나면 뒤집히고 바뀌고 서로를 배신하고 갈라치는 권력자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는 이유로 죽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가장 순수하고 순전한 사람들은 희생된다. 역사가 증명하기를, 권력은 늘 치열하고 정쟁은 언제나 소란스러우며, 군주를 향한 맹세는 부질없다.

그러나 2020년, 지구상의 그 어떤 국가도 순수하고 순전한 권력자와 정치는 없건만, 여전히 순수하고 순전한 소녀와 소년들만 죽임을 당하는구나.

.

이 작품은 존 에버렛 밀레이 (John Everett Millais)가 1871년에 남긴 <솔웨이의 순교자(The Martyr of Solway)>이다. 작품을 X-ray 촬영한 결과 애초의 스케치는 고통스러운 표정의 누드였으나 어린 여성 순교자를 에로틱하게 그렸다는 비난이 일어 후에 의상을 추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

마가렛이 말뚝으로 향하던 길목이 지금도 남겨져 있다. Approach to the Martyrs' Stake.


이전 04화 마리아 홀린 이야기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그림 같은 여자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브런치 시작하기

카카오계정으로 간편하게 가입하고
좋은 글과 작가를 만나보세요

카카오계정으로 시작하기
페이스북·트위터로 가입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