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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tgrim Feb 29. 2020

미술사에서 사라진 임산부들

인류가 생존해온 그 긴 세월 동안 여성에게 임신은 분리할 수 없는 일상이다. 각자 인생의 가장 비옥하다고 할 수 있는 시기 동안 여성들은 임신은 반복하여 왔다. 여성의 삶에서 임신은 하나의 일상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를 사는 우리가 만나는 미술사의 모든 페이지에서 임신은 대체적으로 지워져 있다. 


지난 봄 런던 파운들링 박물관 (Foundling Museum)에서는 미술사에서 사라진 임산부들을 담은 작품들을 중심으로 열린 <임신의 초상(Portraying Pregnancy)展>을 개최한 바 있다. 이 전시회를 기획했던 미술사학자 카렌 헨(Karen Hearn)은 “여성들이 시각예술 안에서 표현되고 있는 자신의 몸, 임산부에 대해 탐구하면서 타부(taboo) 되었던 이 주제를 끌어올린 지 불과 20년밖에 되지 않는다”며 전시회 개최의 의미를 밝혔다. 헨은 20년 넘도록 임신과 임산부를 중심으로 미술사를 연구하고 있다. 그녀는 테이트 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하던 중 ‘매우 눈에 띄게 임신한 것으로 보이는’ 정체불명의 여성 초상화를 보게 되었는데, 이후 현재까지 남겨진 초상화 중에서 임산부를 그린 것이 있는지 찾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영국의 경우, 1630년대 이후부터 임산부를 그린 초상화를 찾기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그 이전 시기까지만 해도 임신은 그 상태 그 자체로 성스러운 것으로 여러 장르에서 드러났는데, 이 시기 이후의 임산부 초상화는 극소수만이 남겨져 있다고 한다.

Marcus Gheeraerts II, Portrait of a (unkown) Woman in Red (1620)


초상화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의도적일 수밖에 없는데, 가임 여성의 대부분이 임신을 반복했던 것이 마땅히 당연했던 시기에 그녀들의 모습이 남겨지지 않았다는 것은 결국 ‘선택’에 의한 ‘삭제’라고 보인다는 것이 헨의 설명이다. 간혹 귀족 여성이 임신 상태로 남겨진 초상화가 있는데, 이것은 개인적인 친분으로 남겨진 경우다. 1817년 조지 다우(George Dawe)가 남겼던 샬롯 공주의 초상화가 그러한 사례다. 이 그림이 남겨진 같은 해 그녀는 출산 도중 사망하였다. (그런데 초상화는 만삭의 모습은 아니다.) 당시 많은 여성들이 출산 도중에 사망했기 때문에 이를 두려워했던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영정사진”처럼 주문하여 따로 남겼다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미술사에서 임산부의 모습은 거의 찾기 힘들다.

George Dawe, Portrait of Princess Charlotte of Wales (1817)

 

<임신의 초상(Portraying Pregnancy)展>에는 얼마 전 논란이 되었던 가수 비욘세의 만삭 사진도 함께 전시 되었다. 2017년 2월 잡지 표지로 공개되었던 만삭의 비욘세 이미지는 여성성과 외설성, 신성함과 대중성 등에 대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최근 대중 스타들의 만삭 사진을 이 전시에 함께 공개하는 것은 임산부에 대한 인식 변화를 보여주는 한편, 임산부에 대한 지나친 미화도 이 시대의 우리가 읽어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겠느냐는 일종의 반문이다. 

Beyonce의 2017년 2월 인스타그램 사진


이 아티클의 저자, 샬롯 잔센 (Charlotte Jansen)은 “임신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그것이 (이상적으로 미화된 모습)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임신이라는 때때로 고통스러운 경험이다”라고 지적하며, 화가 길슐레인 하워드(Ghislaine Howard)가 1984년에 그렸던 피곤하고 지쳐 보이는 임신 자화상을 의미 있게 살펴본다. 

Ghislaine Howard, Self Portrait Pregnant (1984)


인류의 생존을 위해 여성들이 의무처럼, 임무처럼, 기쁨처럼, 저주처럼, 축복처럼, 일상처럼 경험해왔고 경험하고 있는 임신. 그 마땅하고 당연한 모습들이 삭제되었던 지난날을 짚어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캔버스 위에, 종이 위에 그려내야 하는 “일상의 초상화”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인도하는 어떤 지침이 될 것이라 믿는다.



글 작성에 참고한 원문: "Why We Don’t See More Pregnant Women in Art History" by Charlotte Jansen

https://www.artsy.net/article/artsy-editorial-pregnant-women-art-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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