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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tgrim Oct 23. 2017

불명열, '거룩한 식사'

처음부터 황지우 시인의 <거룩한 식사>를 떠올렸던 건 아니다. 

39도까지 치솟은 고열 중에도 허기를 느낀 나의 육신이 병원 앞 뼈다귀가게에 혼자 앉아 뚝배기에서 올라오는 김이 눈을 맵게 하던 그때, 황지우의 그 나이든 남자의 뒷모습을 본 것 같았다.


불명열… 말 그대로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고열이 난 지 일주일이 되어 간다. 

남편은 “오래오래 같이 살아야 할 거 아니겠어. 이제 당신도 조심해야 해. 맥주도 좀 줄이고.” 

핀잔반 애정반 툴툴거리며 싫다는 내게 건강검진을 하라며 등 떠밀었고, 그 검사를 받고 온 날부터 이 열 잔치로 난리가 난 거다. 아침에 도무지 몸조차 세울 수 없는 날 바라보던 남편 표정에 애매한 미안함이 묻어 있었다.


다행히 내시경에 의한 부작용도 아니었지만, 오들오들 추운 것 이외는 딱히 열이 왜 나는지 모르는 상태. 

그러나, 다시 몇 가지 검사를 하면서도 이 목숨은 한동안 별 일 없으리라는 걸 알고 있다.

고열로 온 몸이 덜덜 떨리는 와중에도 나는 저 뼈다귀해장국을 매우 탐했고 욕망했다. 

살아있다는 증거다.


찬 밥이든 뜨신 밥이든, 혼자든 둘이든, 숟가락 가득 차올리는 쩍 벌린 입이 있으니, 

나 잘 살고 있다고, 먹고 싶은 것도 있고 당신도 있고, 그래서 행복하다고… 그렇게 변명 같은 나의 '거룩한 식사'



거룩한 식사 

- 황지우

나이든 남자가 혼자 밥 먹을 때

울컥, 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다

큰 덩치로 분식집 메뉴표를 가리고서

등 돌리고 라면발을 건져올리고 있는 그에게,

양푼의 식은 밥을 놓고 동생과 눈 흘기며 숟갈 싸움하던

그 어린것이 올라와, 갑자기 목메게 한 것이다


몸에 한세상 떠 넣어주는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

이 세상 모든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여

이 세상에서 혼자 밥 먹는 자들

풀어진 뒷머리를 보라

파고다 공원 뒤편 순댓집에서

국밥을 숟가락 가득 떠 넣으시는 노인의, 쩍 벌린 입이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살기 위해서"


amazarashi『僕が死のうと思ったのは』"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라이브 

https://youtu.be/_hcvGjy2v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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