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의 콩떡입니다"
글짓기 실력, 정말 책만 열심히 읽으면 될까요? 만만의 콩떡입니다.
분명히 이런 아이(어른) 있습니다.
“그렇게 책을 많이 읽는데 글짓기는 왜 이 모양이죠?”
“왜 문장 쓰기가 이상하죠?”
지금 그 아이(어른)에게 소리 내어 동화책 일부분 읽기를 시켜보십시오.
처음 읽는 지문의 단어와 단어 사이, 문장과 문장 사이를 잘 구분하고 호흡하고 끊어내어 읽을 줄 아는지, 어떤 단어와 어떤 주부, 술부를 강조해서 읽을 줄 아는지 냉정하게 보십시오.
순수하게 저의 경험에 비추어 판단하자면, 제가 생각하는 원인은 아이가 정독을 못했거나, 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정독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판별 기준 중에 가장 쉬운 것이 “성독” 즉, 소리 내어 읽혀보는 겁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처음 읽는 지문의 단어와 단어 사이, 문장과 문장 사이를 잘 구분하고 호흡하고 끊어내어 읽을 줄 아는지, 어떤 단어와 어떤 주부, 술부를 강조해서 읽어낼 줄 아는지 여부에 따라, 글짓기 실력, 즉 문장 "표현력"도 상당히 비례합니다.
제가 몇 년을 여러 아이들과 함께 수업하면서, 정말 똑똑하고 명석한 아이임에도 글짓기가 서툰 아이들, 그 아이들이 문장 읽어내는 것 또한 몇 년을 지켜보았는데, 변함없이 “대충, 맛없게, 희미하게, 흐리게, 웅얼웅얼” 읽습니다. 이 아이들은 띄어 읽기, 문장과 문장 사이의 적절한 호흡, 감정 표현이 거의 없습니다.
자, 그럼 책 별로 안 읽는데도, 독서량이나 학습량에 비해 공부도 썩 잘하고, 무엇보다 글짓기를 잘 하는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를 불러 짧은 동화책을 읽어보라 시켜보십시오.
아마도 결과는, “이 아이는 연기해도 되겠어!”하실 겁니다. 따박따박, 속도와 강조점까지 아이 스스로 문장을 읽으며 바로바로 찾아냅니다. 그만큼 “성독을 제대로 할 줄 안다”는 말이죠.
초등 저학년 때 선생님들이 ‘소리 내어 읽기’ 숙제를 귀찮게 내주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눈으로만 좌르르 후딱 세 번 읽는 것보다, 제대로 흥 살려서, 분위기 살려서 한 번 소리 내어 읽어보는 게 “표현력” 키우기에는 좋습니다.
못 믿으시겠다면, 오늘부터 잠들기 전에, (아이에게 혹은 본인이) 시 낭독을 매일 한두 편씩 소리 내어 읽어 보시지요. 2~3분이면 됩니다. 그렇게 딱 두 달 하신 후에, 감히 “시”라는 걸 직접 써 보십시오. 놀라운 경험을 하실 겁니다.
또 하나, 자신이 쓴 문장이나 글을 반드시 소리 내어 읽어보십시오. 분명 쓸 때는 주어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소리 내어 문장으로 “말”을 해 보니 뭐가 안 맞는다는 걸 알게 됩니다. “어 내가 왜 이렇게 썼지?”하고 웃게 되지요.
요즘 아이들은 스마트폰 문자 메시지 같은 단답형, 축약형 글쓰기에 익숙하기 때문에 길게 글 쓰는 걸 매우 힘들어합니다. 기본적으로는 글이란 자꾸 써봐야 늘지요.
조금은 제 말을 믿어 주셔도 될 겁니다. 한동안 대학에서 디자인과 학생들의 논술지도를 했는데, 20살 넘은 성인들도 수개월 만에 작문 실력 늘어나는 걸 수 차 봤으니까요.
다독, 물론 이 또한 중요합니다. 언제고 성대 망가질 때까지 목청껏 연기만 할 순 없지요. 그러나 이렇게 읽을 줄 아는 아이하고 모르는 아이하고 분명히 차이가 있다는 거, 그리고 이렇게 읽을 줄 아는 아이는 이제 묵독과 다독으로 넘어가야 “실력”으로 이어진다는 건 당연한 일이겠죠.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와서, 책 읽기만 열심히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느냐? 아닙니다. 그러나 책 읽기를 “제대로”하면 좋아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