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tgrim Dec 13. 2017

영재아동과 낭중지추(囊中之錐)

예전에 한 어머니께서 초1 아이가 수학 시간을 지루해한다며 상담을 해 오신 적이 있습니다.

아이는 이미 4살 때 연산을 시작했고 유치원 때 초등 2학년 수학 문제집을 틀리지 않고 푸는 아이였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입학 후, 학교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영 힘들어하더랍니다.


어떤 특정 분야에 조금 일찍 재주가 드러나 버린(?) 아이들은 참 여러 가지로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선행학습 없이도 직관적으로 곱셈 나눗셈을 영유아의 나이에 깨우치는 아이들이 간혹 있습니다. 유전적으로 달리기나 수영 같은 운동 종목에서 이미 엄청난 기질을 발휘하는 아이들도 있고, 한 번 듣고 그대로 피아노로 쳐 내 버리거나 한 번 보고 그대로 따라 그리는 아이들. 우리는 이런 아이들을 “영재”라고 부르지요.


그런데 꽤 많은 경우, 이런 “특별한” 아이들은 학교에서 힘들어할 때가 많습니다.


어린 나이에 “특별한” 재능이 일찍 드러난 아이에게 꼭 인식시켜 주셔야 할 마음이 있습니다.


셈을 잘하는 아이들은 학교 교실에서 다른 친구들에게, "피이~너 이렇게 쉬운 것도 틀려?" "에이! 이런 건 너무 쉬워. 시시해~!"라는 말을 쉽게 하곤 합니다.  그러나, 당연히 또래 아이들은 이 말에 불쾌감을 느낍니다. 아이가 이런 말과 행동을 자주 하는 하다 보면, 학교 생활과 교우관계가 필연적으로 힘들어집니다.

 

엄마나 선생님이 "그냥 그렇게 말하지 마!"는 소용없어요. "그런 말을 왜 하면 안 되는지" 아이 스스로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  나는 이런 것들이 시시하다고 말하면 안 될까?"에 대하여 한 번쯤은 제대로 같이 이야기 나누어 봐야 합니다. 엄마가 답을 주지 마시고, 유도만 하세요. "그런 말을 하면 왜 안될 거 같아? 이유가 있다면 뭘 거 같아?" 답은 아이가 하도록 기다려줍니다. 아이가 잔뜩 찡그린 얼굴로 "왜 하면 안 돼?"하고  되물어도 흔들리지 마시고, 아이 스스로 답을 말하도록 기다려보세요.


조직에서 몸을 낮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능력을 숨기라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나는 너 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자칫 큰 실수로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 아이가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다른 친구들에 대한 배려이자, 타인에 대한 예의라는 것도 동시에 알아야 합니다. 만 7세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충분히 대화를 한 후에 아이가 마음속에 "아, 다른 아이들보다 내가 수학을 조금 잘하긴 하지만, 나도 다른 친구들보다 못하는 것도 있다. 친구가 나 체육 못한다고 놀리면 나도 싫을 거 같다"하는 말을 스스로 할 줄 알게 되면요, 아이가 쉬워서 지루해하던 수학 시간이 마법처럼 힘들지 않는다는 거 아세요? 진짜랍니다. 아이가 진심으로 자신이 못하는 다른 분야처럼 다른 친구들이 수학을 어렵게 느낀다는 걸 이해하면 자세가 달라진답니다.


낭중지추(囊中之錐).

주머니 속에 넣은 뾰족한 바늘은 가만히 있어도 그 끝이 주머니를 뚫고 비어져 나온다는 뜻입니다. 아이에게 낭중지추의 원리를 말씀해 주시고, 바늘의 뾰족함은 저절로 드러나는 것이라는 걸, 싫든 좋든 "가진 재주"는 언젠가 티가 난다는 걸, 하지만 그 뾰족함 때문에 다른 사람이 다칠 수도 있다는 걸, 한 번쯤은 이야기 나누어 보세요. 그리고 바늘과 마찬가지로 빛나는 보석도 결국 빛을 발하며 귀하게 여겨진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아이가 친구들 앞에서 쓸데없는 "잘난 척"으로 스스로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일이 없겠다 싶으시면 아이의 능력과 재능에 맞게 계속 선행 학습하셔도 됩니다. 아이가 이 세상 홀로 존재하는 양 겸손함이 없다면, 더 이상 영재의 영재성을 망치는 선행학습은 멈추셔야 합니다. 오만함을 먼저 배워버린 영재는, 돌고 돌아서 걷게 될 길이 멀다는 점, 잊으시면 안 됩니다.



응답하라 1988 ost] 노을 - 함께 (Together)

https://youtu.be/c-WBmg7RG4s

매거진의 이전글 책 좋아하는 아이 낚시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