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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 Apr 03. 2023

오래된 일기장을 꺼내고는

먼지를 툭툭 털어보자, 이번에는 다 써볼 것을 다짐하면서. 


 솔직히 얘기해보자면, 나는 무엇이든 쉽게 질리는 편이라 그리 오래 흥미를 가지지 못하는 것 같아. 그렇게 수많은 꿈을 가졌고, 몇 번의 사랑에 빠졌고, 더 많은 날들을 쓰레기통에 쳐박았고. 그리고 오늘은 차마 버리지 못해 먼지가 쌓일 정도로 방치된 상자 속에 있던 일기장을 꺼낸 날이야. 


 그런 사람이 있어, 노트를 다 쓰지 못하는 사람. 정확히 말하자면 노트의 오른쪽 면만을 사용하는 사람. 내가 그런 사람이야. 글씨를 꾹꾹 눌러 적는 습관이 있어서, 그렇게 글씨를 써나가다 보면 어느새 왼쪽 면은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어서 말야. 뒤집으면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보통은 다른 노트를 꺼내고 있더라고. 못된 습관인 걸 알아 의식해서 고쳐보려고 하고는 있어, 아무래도. 


 3월이 지나고 어느새 시간은 4월이야. 3월이 온전히 지난 입장에서 22살의 3월에 대한 평론을 해보자면 역시 정신 없다, 로 시작하려나. 봄-여름-가을-겨울의 서순 중 그 첫번째 계절에 우리가 서 있어. 봄은 장난스러운 계절이자, 시작의 설렘이 곳곳에 묻어나는 부드러운 계절이야. 가장 좋아한다는 거짓말은 못 하겠지만, 이 계절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리 사랑스러운 계절을. 


 솔직히 나는 괜히 겁을 먹었어. 몇 년 동안 지루한 책만 들여다 보고 있다 보면 사람이 소심해지기 마련이라.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로운 관계를 형성한다는 거, 솔직히 어려우니까. 어떻게 대해야 할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어떤 얼굴을 하고 사람을 마주해야 할지. 하나도 확신할 수 없어서 그저 무서웠어. 그런데 너네가 있어서, 너네가 날 잘 받아주어서 이 계절을 무사히 보낸 것 같아. 이 자리를 빌어 무한한 감사를 보내. 몇몇의 사람들, 지은이나 나림이 또는 민창이나. 여러 선배들이나, 다른 동기들에게도. 이름이 언급되면 부담스러울까 뒤로 삼켜버린 몇몇 이름을 기억해. 다음에는 꼭 이곳에 네 이름을 적을 수 있게 되길 바라면서.


 길게 적으면, 다음이 기대되지 않으니 이쯤 마무리하도록 할까. 여기에는 언급하지 못한 수많은 사람에 대한 감사를 더하며. 사회에서 나만 독특한 사람인듯, 이상한 사람인듯 괴리감이 들었던 세상 속에 나룻배처럼 방랑하던 나에게 안식처를 준 또 다른 몇몇의 사람의 이름을 입 안에서 굴려 봐. 특유의 다정함을, 따스함을 기억해 봐. 그게 나를 어떤 마음으로 이 세상에 살아가게 해줬는지 몰라.


 한없이 감사한 계절이야. 날이 점점 따뜻해지는 계절이고. 


 꽃이 피었어. 다음에는 꽃을 보러 간 이야기를 해야겠다. 다들 너무 긴 밤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온점을 찍고는.

 봄의 절정에서,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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