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이야기
20살. 나름의 다사다난을 겪고 일기를 쓰게 된 나는 매일 느낀 점을 싸이월드 비밀 일기장에 고스란히 담았다. 누구를 보여주기 위해 쓰는 글은 아니었다. 단지 이 풍부한 감정을 어디다 쏟아내야 할지 모르겠어서 적은 것뿐이다. 그리고 그때 내 유일한 위로가 바로 글쓰기였으니까.
나는 어렸을 때 영화감독이라는 꿈을 가지고 있었는데(엄청난 SF광팬이었다.)
그때 아주 짧게나마 시나리오를 쓰곤 했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전자사전으로 깡패 누아르 소설을 써서 친구들에게 꽤 많은 인기를 얻은 적도 있었다.
이 생각으로 컴퓨터를 하다 발견한 건 [난 죽었다]라는 파일이었다. 읽어보니 내가 죽어 하늘에서 나의 장례식장을 보는 장면이더라. 꽤 흥미로웠다. 나는 이내 마음을 먹었고 그 날 부터 페이지를 이어받아 내 인생 첫 소설을 적게 되었다.
그렇게 일기와 소설을 번갈아 써가며 우울의 시간을 차츰 이겨내고 있었다. 몇 개월 정도 쓰다 보니 자연스레 글이 쌓이더라. 하지만 보여줄 이 하나 없으니 그저 자기만족으로 그쳤던 것 같다. 그냥 나 이런 글을 쓰고 있구나 같은 느낌. 어느 날 갑자기 친한 친구 놈이 미국으로 유학을 간단다. 그는 내가 모든 예술 행위를 지지하는 녀석이었는데 나는 큰 마음을 먹고 원고를 A4용지로 뽑아 선물 상자에 넣어 출국 전날 친구에게 전했다.
선물은 내 일기를 담은 [춤과 바람]이라는 에세이와 [난 죽었다]이라는 단편 소설이었다.
부끄러웠지만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이 컸던 것 같다. 그리고 뉴욕에 도착한 친구는 내게 재밌게 읽었다는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그때가 글쓰기에서 느낀 나의 첫 소름과 쾌감이었다.
자신감은 얻은 나는 그 상태로 다음 카페 '인소닷'으로 향한다. 나를 아는 사람들이 아닌 독자들에게 읽힘을 당하고 싶었던 것이다. 난 죽었다를 올렸고 조회수가 77이 뜬 걸 아직까지도 기억한다.
인소닷은 글을 올릴 때 여러 가지 사항을 맞춰야 하는데 그걸 맞추지 않아 글은 며칠 지나지 않아 운영자에 의해 삭제가 된다.
자, 좋다. 77명이나 읽어주었으니까. 쪽팔리니까 피드백은 됐고. 나는 계속 글을 쓰기로 한다. 생각보다 소설 쓰는 게 재밌었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연애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20대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감성으로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메일 한 통이 내게 날아온다.
마음세상이라는 출판사였다. 그러니까, 인소닷에 글을 올린 작가들에게 전체 메일을 보낸 것인데 관심이 있다면 원고 투고를 해보라는 메일이었다. 옳다구나! 나는 서둘러 2개의 원고를 준비했고 읽어만 주셔도 감사하겠다는 메시지를 넣은 채 메일을 전송했다. 그리고 3일 뒤 회신이 왔다.
메일을 본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순 없었다.
뭔가 복권에 당첨된 기분이었고 어딘가에 합격한 기분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리고 며칠 동안 홀로 무한의 상상을 펼치며 홀로 답장을 썼다 지웠다.
-3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