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행복한데 당신은 행복하세요?
질투와 경쟁 그리고 시기 속에서 자란 우리는 아마 죽을 때까지 남과 비교를 하며 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지혜와 자존감이다. 지혜는 경험에 비롯하는 것이며 자존감은 세상을 살아가며 얼마나 나 자신을 더 많이 알아가느냐에 달려있다.
자존감과 지혜는 행복과 직선적으로 연결이 되어있는데 행복의 기준이 점점 높아져 가는 사회에서 우리는 나 자신을 알아가지 못한 채 행복까지 놓치고 있다.
우리는 부러움이라는 감정을 필연적으로 가진 채 세상을 살아간다. 정말이지, 모든 것에 초연해지기는 어렵다. 행복의 기준이 타인의 눈일때는 더더욱. 하지만 나는 부러움이라는 단어를 질책하고 싶진 않다. 그것은 욕심도 아니고 시샘도 아닌 온전하고 순수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바라는 삶이 있을 것이다. 지금보다 더 나아진 일상을 살기 위해 우리가 매일 고군분투를 하며 살고있는 게 아닐까. 맹점은 행복의 기준은 각자 다르기 때문에 어느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며 살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남자는 좋은 회사에 취직을 하고 돈을 많이 벌고 적금도 두둑히 넣고 빚은 당연한듯 없으며 부모님도 건강하시고 여자친구는 예쁘며 자가용도 가지고 있는 친구가 참 부러웠다. 녀석은 대체 어떤 복을 받았길래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을 다 가졌을까? 하고 생각해보면 그저 자신의 모습이 한스럽게 느껴질 뿐이었다.
그렇다면 그 남자는 도태된 삶을 살고 있던 것일까? 아니다. 아마 절대 아닐 것이다. 그도 자신의 능력을 실천할 수 있는 곳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누구보다 가족들에게 사랑을 받았으며 누군가와 사랑도 했었고 해외여행도 몇 번 다녀왔을 것이다. 하지만 단지 같은 나이에, 심지어 자신도 열심히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친구보다 부족한 삶을 산다는 자체만으로 자신을 불행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지금 자신의 현실을 만족하느냐다. 하지만 그는 부정적인 탓에 자신의 삶과 친구의 삶을 비교하기에 급급했다.
여기 한 남자는 웃기게도 잘 나가는 친구를 보며 되려 물어본다.
친구는 그 친구의 얼굴을 보고 "행복?"이라고 말한 뒤 고민을 하는 표정을 짓는다. 자신이 행복한지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것이리라. 질문을 한 남자는 그 친구보다 가난하고 슬프고 외로운 삶을 사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어째서 그 친구에게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던걸까.
그것은 아무것도 필요없이 "나는 지금 내 삶이 너무 행복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행복하면 되는 거니까.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살아가기 때문에.
친구는 "난 잘 모르겠어. 너는?"라고 다시 되물었지만 남자가 짓는 표정만으로도 모든 걸 알 수 있었다.
이 세상 누구에게도 지지않는 말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나는 지금 행복해"라는 말이 아닐까.
상대방이 나를 보고 안쓰러운 듯 말을 해도, 혀를 끌끌차도 아무런 상관이 없을 때는 내가 이 삶에 만족을 하며 살고 있을 때 뿐이다. 지혜로운 당신은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고 있으니 행복하는 방법 또한 알고 있지 않는가. 사실, 이기고 지는 삶을 논한다는 것 또한 의미없다는 것을 알지만 나는 행복한 인생에 빗댈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기에 이런 말을 해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