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온도를 기다리며
신기합니다. 입추를 지나고 나니 정말 날이 선선해졌어요. 늦여름이 투정 없이 가을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것 같아 하늘도 예뻐지고 바람도 좋아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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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무온도를 좋아해요. 봄과 가을에는 무온도의 바람이 불거든요. 높낮이가 없고 내 피부에 딱 맞는 바람이에요. 여름과 겨울은 너무 명확한 녀석들이라 그런 바람을 맞을 수가 없어요. 그러고 보면 사람들은 명확한 걸 좋아한다면서 이도 저도 아닌 것들을 선호해요. 그건 혼날 일도 없고 책임질 일도 없고 한결 마음이 편안하거든요. 알아요. 제가 무온도의 바람을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그거니까요. 덥지도 춥지도 않은 바람이 불면 나는 평범하게 걸을 수 있어요. 옷깃을 여미지도, 펄럭일 필요도 없죠. 그저 마음을 내려놓고 평온한 하루를 느낄 수 있어요.
있잖아요, 어른이 돼가는 건 세상에 무던해지는 것이래요.
그래서 사람들이 무표정으로 신호등을 기다리는 걸까요. 그런 거라면 나는 조금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뭐든 치열하게 하려 했던 지난날, 물론 지금도 열렬히 무언 갈 하려고 하지만 사랑도 일도 꿈도 보통의 상태로 만족하고 싶어 져요. 그건 아마 봄이나 가을에 부는 무온도의 바람 같은 거겠죠. 그리고 10월 초에 짙은 노을을 기다리는 마음이랄까요. 아마 인생은 그런 거겠죠. 항상 평온함을 기다리는 연속이겠죠.
사계절이 없었다면 아마 견뎌내는 방법을 몰랐을 거예요.
이제 조금 있으면 내가 기다리는 계절이 와요. 사람들은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무온도의 바람을 맞으며 미소를 지을 거예요. 그리고 다시 겨울이 오면 봄을 기다리며 열심히 살아가겠죠. 무온도를 기다리며.
그러고 보면 행복한 때는 반드시 돌아오는 것 같아요. 인생은 계절이네요. 나의 감정 또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