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의 가벼운 일탈
낚시라 하면 고기를 낚는 행위이지만 어느 누군가는 세월을 낚는 것이라고 말했고 또 어느 누군가는 고독을 씹을 수 있는 최고의 환경이라 했다. 이번에 낚시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건 전자보단 후자의 뜻이 더 강했다.
여러 생각이 얽히고 얽혀 자력으로 풀릴 수 없다고 판단되었을 때. 나는 내가 속해있는 일상에서는 답이 없다 생각했고 가까운 사람들과 작은 일탈을 계획했다.
토요일에 글쓰기 클래스를 정갈히 마치고 차를 탄 뒤 부리나케 서울을 빠져나왔다.
어마어마한 교통량으로 서울을 빠져나오는데만 2시간이 소요됐지만 서울을 벗어난 것만으로도 이리 속이 시원할 수 있다니. 나는 속으로 '떠나는 건 역시 좋은 것이야.'하고 생각했다.
우리가 간 곳은 통삼 저수지. 경기도 용인 어딘가에 있는 낡은 낚시터다. 자기만의 공간에서 찌낚시를 할 수 있고 고기를 구워 먹을 수도 있으며 작은 방에서 눈도 붙일 수도 있는 아주 실용적인 곳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여기서 잡는 고기는 놓아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잘 모르지만 그렇게 알고 있다.)
나는 그게 제일 마음에 들었다. 물고기를 잡고 회를 떠먹고 찜이나 탕을 해 먹는 게 아니라 그저 잡기를 기다리는 것 말이다. 생각이 많았던 내게 황금 같은 시간이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일단 따뜻한 외투를 입고 사온 고기를 구워 먹으며 간단히 술을 마셨다.
왜 항상 여행만 오면 배가 빨리 부른 지 우리는 취하기 전에 얼른 낚시를 시작하기로 했다.
두 개의 바늘에 각각 다른 찌를 끼운다. 그리고 나의 포인트로 멀찍이 줄을 던진 뒤 강물 표면 위로 올라온 찌를 가만히 바라본다. 살랑살랑,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게 꼭 한 여름날에 아지랑이 같았다.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별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했고 반년 전에 끊었던 담배도 오랜만에 몇 개비 피웠다. 그리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우리는 고요에 빠지고 물고기를 놓쳐 서로를 놀리다 다시 고독에 빠지곤 했다.
미동조차 없는 찌를 바라보며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사실 막 멍을 때린 채로 어느 무언갈 생각하진 않았다.
어쩌면 풀 수 없는 것들이라 그대로 놔두는 게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여서일까. 아무런 근심 없이 가만히 앉아 있는 지금이 평온하고 행복했던 것 같다. 어쩌면 나는 이런 상태를 기다리고 있던 게 아닐까.
몇 시간 동안 낚시를 하니 점점 몸이 얼어가는 게 느껴졌다. 후리스의 능력도 새벽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던 것이다. 잡은 건 별로 없지만 우린 아랑곳하지 않았다. 애초부터 고기를 잡으러 온 게 아니란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기장판을 따뜻하게 데워놓고 남은 라면을 끓인 뒤 저번 달 클래스에 참여한 작가님에게 선물 받은 막걸리를 마셨다. 그리고 각각 꽁꽁 언 소주를 한 병씩 들고 시답잖은 대화를 하며 몰려오는 피로를 느낀다. 치우는 건 내일 하자. 그러곤 일자로 총총 누워 각자 핸드폰을 바라보다 볼에 떨어트리곤 잠을 자는데 그게 어찌나 달콤한지 아침에 일어나니 등에는 땀이 차있고 생각 이상의 개운함이 느껴졌다.
해가 뜨는 걸 보진 못했어도 윤슬이 가득한 물결을 바라보며 낚시를 할 수 있다는 게 좋았던 것 같다.
두 시간 정도, 낚시를 더 하다 짐을 정리한다. 다음에 또 오자는 말을 나누면서.
주변을 한 번 돌아본 뒤 우리는 다시 얽히고설킨 서울로 향한다. 돌아갈 때는 다행히 도로가 한산했지만 우리의 일상은 서울을 빠져나올 때 그 도로처럼 다시 막히고 촘촘해질 것이다.
그래도 절대 희망을 놓치고 살진 않아야지. 열심히 살다보면 다시 좋은 여행을 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