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지구
어쩌다 낯선 동네에 가면 내가 얼마나 자기중심적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여기에도 아파트가 있고 학교가 있고 상가가 있고 사람이 있을 텐데. 그러면 여기에도 분명 가족이 있고 한 무리의 친구들이 있고 분식집과 공원이 있을 텐데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저기 저 아파트 몇 층 몇 호에 사는 당신의 인생에도 여러 일이 있었고 예전보다는 잘살고 있겠지 하며 몰래 의미 없는 상상을 해본다.
근데 말이다. 누군가의 가족인 당신이 방안에 누워 꾸고 있는 꿈이나 감성에 푹 빠져 멍하니 있는 것을 생각하니 나도 참 특별할 것 없는 사람이더라. 여기서도 수많은 사랑이 이루어지고 이별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고 어머니의 된장국 냄새와 상가에서 울리는 피아노 소리, 고요함 속에 울리는 차 소리 같은 것들이 있을 텐데 우리 동네가 뭐가 그리 달랐다고 어깨를 가득 폈는지.
맞아, 새로운 곳에 오면 그렇다. 기분이 묘한 게 후줄근한 옷을 입고 슈퍼에 가는 당신의 귓속에 싱 스트리트의 OST가 들릴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 그렇다면 우리는 영화 얘기로 한 시간을 떠들 수 있을 텐데. 그리고 이곳에서 수십 년을 산 추억은 내가 가진 추억만큼이나 무거울 것이 아닌가.
이처럼 나는 낯선 동네에 가면 여기에 사는 한 사람의 인생을 가늠하곤 했다. 그러고 보면 세상은 참 넓고 인생도 정말 많구나. 여기서도 수없이 많은 일이 일어난다는 게 새삼 신기하고 즐거울 때가 있었다. 그때 나는 여기에 잠시 가만히 서서 누군지도 모를 당신을 떠올렸다.
책 <사랑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160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