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소설> - 물집

3분만 앉아 쉬다가세요.

by 신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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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소설> - 물집











'내 모든 하루에는 네가 있었다.'




이런 문구를 보며 마우스를 딸각거렸다.


맞아. 내 하루에는 네가 있었지.


수정은 왼손으로 턱을 괸 채 한참 동안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오늘로써 26일.
내게서 네가 떠난 지 624시간.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에 그만 몸에 힘을 빼버렸다.



수정은 거울을 보며 자신의 얼굴을 체크한다.
볼에 바람을 넣으며 피부를 만지고 비누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뭐, 꾸밀 일도 없겠지만.


오후 1시


장마가 오련지 하늘은 꽤나 뿌옇다.
방안에 불을 켜고 옷을 벗는다.

정말이지 이상한 일이다.
평생 생겨본 적도 없는 상처가 왼쪽 가슴에 생기다니.

인터넷에 찾아보니 물집이란다.
물집


그 단어를 보곤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는데.
내가 정말 어이가 없어서

상처가 나서 망정이지
안 났으면 어디로 표출이 됐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줄곧 상처 없이 지낸 내가 지금은 거울을 보며
그곳에 연고를 바르며 미간을 찌푸리고 있다.



'이게 다 당신 때문이잖아.'



수정은 다시 옷을 입곤 침대에 몸을 던졌다.

윙윙

알 수 없는 이명과 회색빛 천장
울리지 않는 핸드폰과 너저분한 화장대

이제 한시지만 오늘은 뭘 해야 되나 싶다.
글쎄, 헤어지고 맞는 4번째 주말이지만 아직 적응이 안 되는 건 확실하다.



"아 적적해."



결국은 이런 말을 뱉어냈다.
sns를 쭉 살펴본 후 어제 친구랑 갔던 와인 바 사진을 대고
몇 글자를 끄적이다 그만두고 만다.


배가 고프지 않다.


고마워. 그렇게 다이어트가 하고 싶었는데
덕분에 좋네.

이렇게 생각하며
수정은 다시 눈을 감았다.
시간이 빨리 갔으면, 하면서 말이다.







.







이별이 잔인한 이유가 뭔 줄 아는가?

바로 시간차 공격을 해오기 때문이다.

이렇게 날카로운 것으로 사람을 베고 갔음에도
이별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피를 토하고 만다.

그곳이 아문다 싶어도 다른 곳에 상처가 나기 시작하고
이젠 이렇게 아픈 것도 모른 채 무심하게 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모른다. 언제 또 다가올 파도를

상처는 무심한 이에게 더욱 무서운 존재가 아니던가.

그녀가 그것을 망각하고 있진 않지만 지금은 이렇게라도
생활에 쉼표를 찍어야 그 사람을 잊고 자신의 상처에 대한 약을 꺼낼 수 있었다.





.





물집이라는 것은 이랬다.

한 곳에 지속적으로 마찰력이 일어나 그 안에 물이 차는 것

그래 난 당신이라는 곳에 계속 내 마음을 닿으려 했기 때문에 물집이 생긴 거겠지.
하지만 웃겨 당신이 말했듯

우린 그저 짧게 사랑을 하다 헤어진 사이니깐.

웃기는 소리지만
수정은 실제로 저 말을 듣은 것에 감사해한다.

'짧게 사랑?
그래, 짧은 사랑
맞아. 사랑도 기간이 중요한 거겠지.'

이런 생각을 하며 자신을 위로했다.

세상 어느 곳에 눈을 돌려도 온통 위로의 글이다.
자신의 시야를 좁혀서 그런지 몰라도
다시 눈을 뜬 수정은 어둑해진 방 안에서 sns를 보며
상처 난 가슴을 매만졌다.







.








일하는 게 좋아졌다.
세상에, 주말을 그렇게 기다리던 내가 이젠 월요일을 기다리는 꼴이 돼버리다니

수정에겐
이어폰을 꼽고 회사에 출근하는 게 좋아졌고
사원들과 함께하는 점심이 즐거워졌으며
퇴근을 하고 친구와 마시는 맥주 한 잔에 모든 걸 기댈 수 있게 됐다.

사람 참 쉽지.
전에는 절레절레 고개만 짓던 것들이 이젠 그녀에게 힘이 되어주고 있다.



이틀 전에 친구가 말했다.




"다른 남자는 안 만나려고?


"왜?"


"너 입술이 뿌예. 이 지지배야.


"립스틱 바르면 되지."


"바르면 되지만 바를 일을 만들어야지."


"왜~ 아무렴 괜찮다니까."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 거야. 원래."


"난 아니야.
또 만나서 감정 소비하고 데이트 전쟁 하고 매일 왔다 갔다 하는 시소 같은 거
어후..
이젠 하라고 해도 못해."


"그게 다 경험인데 뭐. 시행착오가 있어야 백마 탄 왕자가 나타나지."


"왕자는 무슨 백마도 필요 없어."


"너무 비관적이다.."


"내가?"


"응."


"아냐 미진아 그렇게 말하면 안 돼. 네가 그러면 내가 이러는 게
힘들어하고 못 이겨내는 것 같잖아."


"수정아. 힘들어하는 게 뭐가 부끄러워서 그래?
헤어지면 당연히 힘들어하고 누구한테 기대는 게 당연하지.
너 너무 강하게 할 필요 없어.
그러다 더 곪아."


"잘하고 있다 생각하는데
그런 말 들으면 진짜 힘이 다 빠져나가는 기분이야."


"그래.. 내가 억지 부려봤자 무슨 위로가 되겠어.
정 그러면 나 불러. 남자친구 없는 내가 더 방방 뛴다 얘."


"그래서 오늘도 우리가 만난 거잖아."


"우리도 참 웃기지."





그래 미정아 우리도 참 웃기지.

난 네 말을 듣고 내 물집의 이유를 곪은 상처라 판단했어.

그래 이겨내려 한들 어쩌겠어?
어차피 시간이 약이라는 건 누구나 알잖아?
그 시간을 못 견뎌서 다들 문제인 거지.

누군가를 만나면서 상처를 덮는 건
상대방에게 내 상처를 나눠주는 것과 다름이 없어.
내가 마음이 빈 백지가 됐을 때 누군갈 만나야지.


수정은 이런 생각하며 맥주를 마셨다.

시끄러운 음악이 들려오지만 꼭 소리가 없는 방에 들어온 기분이다.







.







일요일 저녁.

내일 출근을 하는 수정은 옷을 꺼낸 채 차가운 녹차를 마신다.

노래를 틀어놨지만 휑뤵한 분위기는 도대체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이래서 혼자 사는 여자들이 반려동물을 키우나 보다.
난 털 알레르기가 있으니 패스.


오늘은 괜히 기분이 좋다.


내일이 월요일이어서도 있지만
물집이 자연스레 터지면서 조금 아물었기 때문이다.

사실 자신의 상처가 사랑으로 생겼다는 사실을 믿었을 때부터
수정은 자신이 미쳐버렸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 상처에 그를 대입시킨다.

상처가 아문다.




아아, 잊혀지려나.




가지런히 놓인 옷 옆에 앉아
멀찌감치 보이는 야경을 안주 삼아 녹차를 넘긴다.



그렇게 사랑은 갔고
정확히 30일이 되었을 때
물집은 완전히 가라앉았다.

언제 어디서 또 상처가 나올지 모르지만
그녀는 똑같은 일상에서 '그'라는 존재만 빼놓은 채 다시 하루를 보낸다.


상처가 와도 좋다.


이렇게 한숨이 나와도
걷다 발걸음이 멈춰도
밥을 먹다 숟가락을 내려놔도
좋아했던 음악 리스트를 마구 넘겨도
맥주 대신 소주를 마셔도
수목드라마 남주인공을 좋아해도
네가 잘 살아도


나는 곧 아물 테니까.






.






좋은 사람 만나라는 말도 꼴값이야.
어쨌든 나도 행복할게.

짧은 사랑 따위

이것도 결국 다 웃겨

감성적인 나란 여자 같으니라고.



.



수정은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물집-










p.s
우리에겐 어느새 담담해진 것들이 있죠.
덤덤하게 모든 걸 잘 이겨내는 사람들이 있어요.
멋진 사람들

아무것도 아님이 아니라
힘든 것이라 오히려 자신만의 방법으로 상처를 이겨내는 그들이
오늘도 더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그들이

새삼 멋지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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