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소설> - 착한 일 포인트
어린 세준이는 자그마한 기타를 가지고 싶었다.
언젠가 티비에서 교양 프로를 봤는데 미국의 턱수염 난 아저씨가 나무 탁자 위에서
멋있게 통기타를 치는 걸 보곤 반해버리고 말았다.
그 아저씨는 낡은 가죽조끼를 입고 있었는데
부모님이 집을 비웠을 때 몰래 아빠의 옷장을 살펴본 세준이다.
하지만 아빠에겐 그런 조끼는 어울리지 않나 보다.
턱에 수염을 그리고 거울을 본 뒤
배드민턴 채를 들고 연주에 빠진 연기를 한다.
세준의 귀에는 티브이에서 들은 기타소리가 어렴풋이 남아있다.
입으로 흥얼 거려보지만 멋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낡은 배드민턴 채로 연주를 하면 하얀 가루만 날릴 뿐이다.
난 그 소리를 듣고싶은데
세수를 해 수염을 지우고 배드민턴 채를 다시 가방안에 넣고
소파에 털썩,하고 앉았다.
티비에서 나오는 어린이 만화가 눈에 들어올리가 없다.
세준은 오늘 부모님이 오신다면 기타를 사달라 말해야겠다고 작게 다짐했다.
물론 엄마는 영어공부를 더 하라고 하실 게 분명하지만.
.
부모님이 집에 오시고
엄마는 곧장 저녁을 준비했다.
아빠는 세준에게 와 오늘 있었던 일을 물었다.
"아들, 오늘은 뭐하고 놀았어?"
"몰라요."
아들의 표정에서 무언갈 감지한 아빠다.
"우리 세준이한테 무슨 일 있나본데 여보?"
"어쩐지, 오늘 엄마한테 안기지도 않더라. 일단 와서 앉아 저녁 먹자.
여기 세준이 좋아하는 새우튀김도 있네?"
"그래. 세준아 저녁 먹으면서 얘기해보자."
"네."
엄마가 정성스레 차린 저녁에는 세준이가 좋아하는 새우튀김과 소세지 볶음이 있었다.
엄마도 어쩜 타이밍이 이리 좋은지. 평소에는 건강에 안좋다고 절대 해주지 않던 건데.
세준이는 입술을 쭉 내밀었지만 이런 반찬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어린아이였다.
"맛있지?"
"네."
"우리 세준이 왜그러는지 엄마한테 얘기 해줄 수 있어?"
세준이는 소세지를 야물야물 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엄마. 저 기타가 갖고싶어요."
"기타?"
"네. 작은 기타요."
"갑자기 기타는 왜?"
"티비에서 봤어요. 그게 너무 좋아서 나도 연주하고 싶어졌어요."
부모님은 놀란 표정으로 서로의 눈을 쳐다보더니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가 미소를 지으며 세준이의 머리를 쓰담았다.
"세준이가 음악에 관심이 있는 진 몰랐네."
"하지만. 안 사주실 거 알아요."
"왜에?"
"그야 영어공부를 안했으니깐요."
세준이의 말에 엄마는 하하 웃었다.
그리고 물을 한모금 마신 뒤 말했다.
"세준이 그러면 엄마랑 아빠가 한가지 테스트를 할 테니까, 통과하면 세준이가 갖고싶은 기타 사줄게."
"어떤 테스트요?"
결국 이런 식이야, 라고 생각한 세준이었지만
일단 기타를 가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에 세준은 의자를 바짝 댕기고 엄마의 눈을 바라보았다.
"착한 일 포인트를 쌓는 거야."
"그게 뭐에요?"
"세준이가 착한 일을 할때마다 착한 포인트가 올라갈 거야.
그게 10포인트가 되면 엄마가 기타 사줄게."
"착한 일이 어떤 건데요?"
"그건 세준이가 판단해야 할 일이겠지? 할 수 있겠어 아들?"
"네..에.."
"엄마랑 아빠랑 지켜보고 있을 게. 최선을 다하면 금방 가질 수 있을 거야."
세준이는 오물오물 거리며 착한 일에 대해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뭔지 모르겠는데...
생각을 끝내니 자연스럽게 입이 삐죽 나왔다.
하지만 이미 부모님과 이야기는 끝난 거다. 도와주지 않을 게 분명했다.
밥을 다먹고 평소 하던대로 먹은 접시를 싱크대에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 혼자 양치를 하고 방에 들어가 읽다 만 만화책을 읽었다.
10시가 되면 엄마가 방에들어와 머리를 쓰담아준다.
오늘도 여느때와 다름없이 엄마의 푸근한 향기를 맡으며 잠에 빠져들었다.
잠들기 전까지 세준이의 머릿 속에는 온통 착한 일에 대한 생각 뿐이었다.
.
다음 날
세준이는 학교 화단에 있는 쓰레기를 주웠다.
물론 청소시간이 아니었기 때문에 착한 일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꾸깃한 메모장에 '쓰레기 줍기'를 적는다.
3교시 수학시간에는
짝지 호진이가 지우개를 빌려달라고 해서 아무 말 없이 빌려주었다.
세준은 평소 학용품을 아껴쓰는 습관이 있었기에 호진이는 조금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세준이의 얼굴을 보니 미소를 띄우고 무언갈 적고있었다.
점심시간에는 호박볶음이 나왔다.
가지 다음으로 싫어하는 거지만 물과 함께 억지로 식판을 비워냈다.
약간 거부룩했지만 책상에 앉아 '호박볶음 먹기'를 적는다.
어느 날에는 친구 시우가 옆반 혜정이에게 고백을 한다고 난리를 피운적이 있었다.
시우는 세준이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평소 부끄럼이 많은 세준은 이를 악물고 시우의 고백을 도와주었다.
그건 대신 편지를 전해주는 것이었다.
자기가 고백하는 것도 아니면서
편지를 갖다주고 한참 볼이 빨개져있던 세준이다.
스쿨버스에서 내리고 난 뒤 신호등을 기다리는데
폐지를 줍는 할머니가 열심히 수레를 끌고 계셨다.
근데 수레 뒤에서 폐지가 떨어지는 걸 보곤 세준은 얼른 뛰어가 폐지를 주우며 할머니를 불렀다.
"할머니!"
할머니가 뒤돌아 보더니 폐지를 들고 뛰어오는 세준을 보고 미소를 지으신다.
"이거 떨어트렸어요."
"아이고, 고마워라. 고 옆에 끼워줄랴?"
"네."
"그래 그래."
할머니는 곧장 수레를 끌고 가던 길을 갔다.
하지만 세준이는 수레 뒤를 밀면서 머릿 속으로 착한 일을 생각했다.
'할머니가 힘들어 하시니깐 도와줘야지.'
할머니는 세준이가 뒤에서 밀어주는 걸 뒤늦게 보곤 깜짝 놀라했다.
사실 세준이의 힘이 그리 세지않았나보다.
"아후 우리 고마운 친구. 이 할미는 안밀어줘도 잘 가는디."
세준이의 머리를 쓰담으며 주머니에서 요구르트 한개를 꺼내는 할머니다.
"이따 할미가 마실라고 남겨났는디. 우리 친구 예뻐서 안줄수가 없네.
이거 마시면서 어여 집에 가. 엄마가 기다리고 있겄다."
세준이는 요구르트를 받고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잘 먹겠습니다."
그리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뛰어간다.
찰랑 거리는 머리
들썩이는 가방
함박 웃음을 짓는 세준이의 얼굴
.
부모님과 과일을 먹고 있을 때 세준이는 방에서 메모장을 들고나왔다.
여태 한 착한 일을 말하기 위해서였다.
"엄마 아빠 이것 좀 보세요."
부모님은 메모장을 보더니
이내 서랍장에서 스티커를 꺼내 세준이의 메모장에 붙어주었다.
"우리 세준이 착한 일 많이했네? 이 스티커는 1포인트 짜리 스티커야.
여기다가 붙여줄테니까 열개 모으면 원하는 기타사줄게."
"그치만 다섯 개나 했는 걸요."
"그렇게 치면 하루만에 원하는 기타를 가질 수 있을텐데.
엄마가 사주겠어? 그치 여보?"
"그럼~ 그리고 호박볶음 먹기는 착한 일이 아니야.
아빠랑 약속했잖아 야채 거르지 않겠다고. 기억나지?"
"네.."
"그렇지만 잘했어."
"잘했어 아들~ 스티커는 금방 모아질 거야."
세준이의 볼에 뽀뽀를 해주는 엄마다.
그래도 노력을 하는 아들의 모습이 예뻐보이는가 보다.
결과적으로 세준은 실망을 했다.
이제 한개를 받았는데 앞으로 나머지 9개를 어떻게 채운담..
하지만 포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만 통기타를 맨 아저씨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아른거리는 게 문제였다.
.
다음 날에도 다다음 날에도 세준이의 착한 일은 계속됐다.
수저를 들고오지 않은 친구에게 젓가락을 양보했고
착한 일은 아니지만 싫어하는 야채도 눈을 질근 감으며 목으로 넘겼다.
자신의 물건에 애착이 많은 세준이는
옆반 친구에게 리코더도 빌려줬고 책도 빌려줬다.
그리고 여자친구가 생긴 시우에게는 용돈으로 아이스크림도 사줬다.
사실 얻어먹어도 모자를 판인데 시우가 여자친구에게 돈을 다 써버렸다해서
그냥 하나 사주었다. 세준이는 기타를 생각하면 이정도 쯤이야 라고 생각했을 게 분명하다.
시우 여자친구 혜진이의 친구중에 미정이라는 아이가 있었는데
점심시간에 의자에 걸려 넘어진 걸 일으켜 세워준 적도 있었다.
뒤로 묶은 머리가 잘 어울리는 아이였다.
"고마워."라고 했는데.
부끄러워 그냥 반으로 온 뛰어온 세준이었다.
착한 일은 학교 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계속됐다.
어느 날은 놀이터 뒷 하단에서 새끼고양이를 발견해 경비아저씨에게 전해주었고
부모님이 시키지 않은 분리수거를 다녀오곤 했다.
지팡이를 든 할아버지가 걸어가고 계시면 괜히 넘어질까 뒤에서 천천히 걸었고
자기보다 어린 동생에게 요구르트를 준적도 있었다.
세준이는 매일 저녁을 먹고나면 자신이 적은 착한 일 리스트를 부모님께 보여주고
부모님은 기특한 마음으로 스티커를 붙여주었다.
세준이는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 지도 모른 채
점점 메모장에 착한 일 스티커를 모으고 있었다.
그렇게 10일이 지났다.
.
마지막 스티커만을 남겨둔 걸 안 부모님은 평소 세준이가 가지고 싶다했던
연갈색의 기타를 사고 저녁을 준비했다.
세준이를 부르고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오늘은 세준이의 다짐이 시작 된 날과 같이 새우튀김과 소세지 볶음이 있다.
맛있게 먹는 세준이를 보며
부모님은 아들이 메모장을 내밀면 선물을 건네주어야겠다 생각했다.
근데 왠걸 오늘은 세준이가 메모장을 건네지 않는다.
부모님은 의아했고 세준이의 표정은 온전했기에 무슨 일이 있나 싶었다.
예를들면 '사랑에 빠졌나?' '기타에 흥미를 잃었나?' 같은 것 처럼
참다못한 엄마가 세준이에게 물었다.
"세준아 오늘은 메모장 안줘?"
세준이가 곧장 대답한다.
"네."
"왜?"
"착한 일을 안했으니깐요."
실제로 오늘 세준이가 옷을 개어 옷장에 넣는 걸 보곤 약간 감탄을 한 엄마였다.
그것도 착한 일의 한 부분인데 왜 안했다고 했는지.
"착한 일을 왜 안했을까? 오늘은 잠시 쉬었어?"
"아뇨. 오늘은 내가 한 게 착한 일이 아닌 것 같아서요. 엄마."
이야기를 듣던 아빠가 놀란 눈으로 세준이를 바라본다.
"그래서 오늘은 그냥 안 적었어요. 대신 내일은 꼭 적어올거에요."
"응. 좋아."
세준이의 행동에 정말 당황한 부모님이다.
실제로 주변에서 세준이가 조금 달라졌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경비 아저씨는 세준이가 얼마 전에 어미 잃은 새끼 고양이를 가져다준 것과 쓰레기를 줍는 것을 봤다고 했고
옆집 민수엄마는 세준이가 할아버지 뒤를 안절부절한 표정으로 졸졸 따라다는 걸 봤다고도 했다.
그리고 이틀 전에는 담임 선생님에게 전화가 와 세준이가 부쩍 바뀐 것 같다며 칭찬도 해주었다.
실제로 집 안일도 부쩍 많이 도와주었던 세준이었다.
저녁을 먹고 세준이가 숙제를 할 때 부모님은 결정했다.
우리 예쁜 세준이에게 오늘 기타를 주자고.
기특한 아들의 방문을 똑똑 노크한다.
세준이가 의자에서 내려와 방문을 연다.
그리고 부모님의 품에 안겨있는 기타를 보고는 놀라 소리를 지르는 세준이었다.
"와아아! 기타다!"
기타를 손에 쥐고 행복한 표정을 짓는 아이의 표정을 보는 부모님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너무 좋아 어쩔줄 모르는 아들의 이마에 뽀뽀를 해주곤
기특하다며 칭찬을 해주었다.
착한 일 포인트는 이로써 마무리 됐다.
좋은 취지에서 한 부모님의 숙제였지만 이렇게까지 세준이가 성장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실제로 세준이는 아무 거리낌 없이 야채를 먹을 수 있게됐고
이제 친구들과 서스름없이 물건을 나눠쓴다.
그리고 혜정이 친구 미정이에게는 친하게 지내자고 고백도 했다.
수레 할머니와는 월요일에 하교를 할 때마다 횡단보도에서 만나 요구르트를 마신다.
경비 아저씨에게는 밝게 인사를 하고 아무렇지 않게 쓰레기를 줍는다.
세준이에게 착한 일 포인트의 숙제는
용기를 주었고 기쁨을 주었고 또 성숙함을 주었다.
기타를 받고 난 후 과연 세준이가 착한 일을 하지 않았을까?
자신이 하는 일이 착한 것이 아니라
당연하게 해야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기타를 받았지만
세준이는 멈추지 않았다.
세준이는 나머지 1포인트를 채우기위해 오늘도 또 다른 착한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착한 일 포인트
p.s
매번 어두운 글, 사랑이야기만 쓰다
교육적이고 동심적인 글을 한번 써보는 게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계획한 건 아니지만 막연한 생각중에 분리수거장에서 어린아이가 혼자 열심히 분리수거를 하는 모습이
보이더군요.
그때 바로 영감이 떠올랐는데 그게 바로 '착한 일 포인트' 였습니다.
이런 글을 처음 써보는데 여간 쉬운 게 아니더군요.
아무쪼록 잘 읽어주셨으면 좋겠네요.
제 글로 잠시동안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