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져도 헤어진 게 아닐 때가 있다

사랑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by 신하영

KakaoTalk_20200102_160117745.jpg 수요일 저녁 8시 43분


“그래서 어떻게 지냈어?”


나도 외로웠다. 그날이 지나고 왠지 세상에 모든 것들이 미워 등을 돌리고 살았는데 나는 어쩔 수 없이 사람 냄새를 맡아야 살 수 있는 사람이었다. 매몰차게 갔던. 어쩌면 그리 깊지도 않았던 우리였지만 난 헤어지는 건 언제나 질색하고 아파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네가 갑자기 우리 집에 불쑥 찾아와서는 밥을 해달라니.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지만, 비에 젖어있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문을 열어주고 말았다. 소나기는 여자의 마법을 풀어버린다고 하던데.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는 너를 힐끔 쳐다보고 끓는 물에 된장을 풀었다. 다신 못 볼 것 같은 사람이었는데.

나의 기억 속에 그녀는 된장국을 좋아했다. 그러니 다른 방도가 있을리가. 덜거덕 그릇 소리를 내며 어색함을 이겨내려는 찰나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지냈어? 나? 나야 잘 지냈지. 별 다를 것 없이. 그때보다 피부도 좋아졌고. 어머,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아. 잘 지냈나 보네.


“응.”


사실 아니. 나는 그간 외로워서 집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는걸. 애인이 있는 친구 집에서 며칠을 자서 친구 애인이 날 미워했어. 유명한 펍에 가서 이름 모를 여자랑 춤도 추고 돈도 많이 썼어. 연애했을 때보다 더 말이야. 회사에서도 단단히 혼이 나서 집에서 명상 좀 하려고 했는데 네가 왔잖아.


“무슨 생각해?”

“아니야. 얼른 앉아. 밥 다 됐어.”


비 오는 수요일 밤 열한 시. 주방 조명만 덩그러니 켜진 이곳이 과연 우리 집인가 싶을 정도로 차가운 분위기에 나는 양 볼 가득 음식을 오물거리는 나의 옛사람을 보며 오묘한 감정을 느꼈다. 이건 정말이지, 아무런 설렘도 미움도 없었다.


“근데 내가 왜 왔는지 궁금하지도 않아?”

“응.”

“왜?”

“무슨 이유가 있어서 온 거겠지.”

“퍽퍽하긴.”


의미 없는 잡담을 하고 소파에 앉았다. 잔잔한 피로가 밀려와 눈을 질근 감았다가 떴다.


“저기, 다 먹은 접시는 싱크대에 놔둬.”

“아냐, 내가 먹은 건데 먹고 바로 정리할게.”


고개를 돌려 창문을 보니 비가 그쳤다.

아아,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씻고 가.”


이 말을 던지고선 그녀의 얼굴을 쳐다봤다. 연분홍색 입술이 반짝거린다. 오늘 우리가 함께 밤을 보낸다면 네게 받았던 상처가 아물어질까. 아니면 다시 사랑하게 될까 우리. 그것도 아니라면 어제처럼 뭣 같은 하루를 다시 보내겠지. 나는 외로웠다. 나는 분명 그녀가 집에 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지만 지금 이 상황이 두려운 것도 사실이었다.


“고마워.”


나지막이 들리는 목소리. 의자에서 일어나는 소리에 잠시 눈을 감는다. 곧장 들리는 샤워기 소리에 몸을 일으켜 싱크대로 향했다. 세 개의 너저분한 그릇이 놓여있다. 이것 봐. 바로 하지도 않을 거면서.


“아무튼, 여전하네.”


고무장갑을 끼지 않은 채 그녀가 먹은 밥그릇을 씻는다. 그리고 나는 한동안 잃고 있었던 미소를 지어버리고 말았다. 나에겐 어쩔 수 없는 비 오는 수요일 밤이었다.




<사랑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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