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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하영 Mar 27. 2020

내 사랑하는 똥강아지에게



쭈쭈야. 잘 지내지? 형 이사했어. 봉천이라고 아주 괜찮은 동네야. 나 전에 살던 집은 해가 참 잘 들었어. 언젠가 네가 침대 위에서 햇살을 받으며 자는 걸 상상한 적이 있었는데 결국엔 한 번 눕히지도 못했네. 내가 꾹꾹 마사지해주면 기분 좋게 한숨 잤을 텐데. 지금 이사 온 집은 해가 잘 안 들어. 그래서 아주 큰 조명을 샀어. 분위기가 꽤 좋거든. 집에 오면 냉장고에서 생수 하나를 꺼내고 소파에 앉아서 여러 생각들을 해.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도통 잠을 잘 못 자. 이유는 모르겠는데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야. 해가 잘 안 들어와서 그런지 일어날 때마다 왠지 울적하더라. 며칠 전에는 친구랑 술 한 잔 하면서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는 말을 했어. 그렇다고 정말 키운다는 말은 아니었는데 섭섭해하진 말고. 형 네 사진 정말 많이 보면서 살거든. 휴대폰 배경화면도 2년 전에 찍은 그 사진 그대로고 얼마 전에는 엄마가 우리 쭈쭈네! 하고 해서 같이 한참을 너를 바라봤었어. 있잖아, 형 쓸쓸해 쭈쭈야. 너를 가슴에 충분히 묻었어도 보고 싶은 건 보고 싶은 거야. 난 성인군자도 아니고 지혜로운 어른도 아니야. 그래서 가끔은 서랍을 마구마구 뒤져. 보고 싶은 것들을 액정 너머라도 봐야 조금 괜찮아지거든. 사람들은 다 각자의 사연이 있다고 해. 그래서 몇 가지 아픔을 끌어안고 산다고 하잖아. 나도 그렇게 살고 있는 것 같아. 무기력해도 웃고 몰래 시기하고 다이어트 강박증도 있고 꽤나 평범하게 살아내고 있어. 넌 거기서 뭐 하고 있어. 아빠는 잘해줘? 괜찮으면 가끔 꿈에 나와서 볼좀 핥아주고 그래. 

우리 똥강아지 발 냄새 맡고 싶네. 이마에 뽀뽀도 하고 싶고 배에 차가운 손도 갖다 대고 싶어. 그리고 내 팔에 눕혀서 잠들 때까지 토닥토닥해주고 싶어. 

잘 지내지? 형도 잘 지내. 한 번 만져보고 싶다. 우리 똥강아지.   




2년 전, 앞으로도 계속 쓸 내 동생 배경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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