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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하영 Apr 26. 2020

어렸을 때 우리 엄마는 김밥 장사를 했다.

소고기 김밥과 쫄면



신하영



지독한 서울살이. 오늘도 혼자 밥을 먹어야 한다. 1일 1식을 빌미로 넘길 수 있었지만 요즘 들어 밥심의 필요성을 심히 느끼고 있어 바지런히 챙겨 먹기로 했다. 근사한 것은 필요 없으니 근처 김밥 집으로 들어가 메뉴를 살핀다.


"사장님, 여기 소고기 김밥 하나랑 쫄면 하나 주세요."


별 고민 없이 주문을 한 이유는 김밥 중에 소고기 김밥을 가장 좋아하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우리 엄마는 김밥 장사를 했다. 아직도 정확히 기억하는 장산 김밥. 집 뒤에 장산이라는 산이 있었기에 엄마는 나름 산에 가는 등산객들에게 김밥을 팔기 위해 이런 이름을 지었을 것이다. 장산 김밥에는 다양한 메뉴가 있었는데 그중 기억나는 김밥은 단연 소고기 김밥이 아닐 수가 없다. 다진 소고기를 간장 베이스 양념에 볶아 김밥 안에 넣으면 어찌나 맛있는지, 사실 제일 비싼 김밥이기도 해서 내게 소고기 김밥은 일주일에 한 번쯤 먹을 수 있는 특식 같은 것이었다. 김밥집은 아파트 상가 지하에 있었고 엄마는 매일 아침 아빠와 꼭두새벽에 일어나 장을 보고 재료를 손질하고 예약된 김밥을 말았다. 하지만 지하에서만 장사를 할 수 없어 밖에서 테이블을 펴고 김밥을 팔곤 했는데 단속원이 오면 서둘러 테이블을 정리하는 엄마 아빠의 모습이 아직 머릿속에 새겨져 있는 걸 보면 어린 하영이는 그때 가슴이 많이 아팠나보다.


엄마는 장국을 정말 잘 끓이셨다. 멸치와 다시마로 끓인 아주 기본적인 장국. 그래서 단골손님들은 그 장국으로 만든 국수를 좋아했고 나도 가게에 놓여있는 장국에 후추를 톡톡 뿌려 후후 불며 마시곤 했다. 하교를 하면 가게로 가 장판이 깔려있는 작은 공간에 몸을 돌돌 말아 낮잠을 자기도 했고 스포츠 신문을 보거나 책방에서 만화책을 빌려보기도 했다. 허기가 질 때면 엄마가 "뭐 먹을래?" 하며 내게 여지를 던져줬는데 나는 항상 칼국수나 소고기 김밥을 싸 달라고 했던 것 같다. 야무지게 먹는 내 얼굴을 바라보며 "어이구 내 새끼 잘 묵네"라고 말했던 우리 엄마. 아직까지 엄마 앞에서 밥풀을 흘리며 밥을 먹는 아들인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는 엄마의 큰 조력자로서 아침에 일어나 테이블을 옮기고 엄마의 서포터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그러고 보면 두 분은 엄청난 일을 한 게 분명했다. 지금은 한 줄에 2000원이 훌쩍 넘는 김밥을 재료를 한가득 넣고도 천 원에 팔고 그것만으로 몇 천만 원을 벌었으니 말이다. 어린 나는 그 노고를 알리가 없었다. 오락실을 좋아해 지폐가 잔뜩 들어있는 돈통에서(그땐 현금 장사라 집에 항상 지폐와 동전이 많았다.) 지폐를 빼갔고 양아치 형한테 돈을 빼앗긴 적도 몇몇 있었다. 철이 없는 나는 우리 집이 부자인 줄만 알아서 친구들에게 말도 안 되는 허세를 부리기도 했다. 그런 나를 혼내고 다시 아무 일 없듯 일을 했지만 엄마는 분명 많이 힘들었을 테다. 매일 6시에 일어나 장사를 하다 집에 돌아오면 가족들의 저녁을 챙겨야만 했던. 나는 그런 엄마의 인생이 이제야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장산 김밥은 내가 중학생 때 다른 사람에게 넘겨졌고 엄마는 김밥은 쳐다도 보기 싫다며 손에 묻은 깨와 참기름을 말끔히 씻어내셨다. 내심 아쉬운 마음도 있었지만 뭐든 잘하고 빠르게 실천하는 사람이었기에 금세 다른 일을 찾으셨다.


가끔, 이렇게 서울에서 혼자 김밥을 먹다 보면 나는 엄마가 해준 소고기 김밥이 생각난다. 우엉 몇가닥이 밖으로 삐져나온 김밥과 송송 썰린 파가 올라간 장국. 그리고 나를 사랑스럽게 쳐다보는 조금 젊은 날의 엄마의 얼굴이 말이다.

다시 그 김밥을 만들어 달라고 말은 못 하지만 나는 묵묵히 김밥을 말고 있는 아주머니를 보며 사랑하는 엄마를 떠올렸다. 작은 바람이 있다면 엄마가 그때의 시절을 좋은 추억으로 여겼으면 싶다는 거다. 이제는 다른 사람이 싸준 김밥을 포장해서 내 옆에 엄마를 태우고, 엄마 아빠가 출근했을 때 매일 내 아침을 챙겨주었던(지금도 늘 나를 챙겨주는)우리 누나와 함께 어디론가 소풍을 갈 수 있을 테다.


그러니까, 내가 사는 이유는 이런 사소한 것이 아닐까. 밥 먹으면서 괜히 유난은.

나는 버무린 쫄면 위에 속이 꽉 찬 소고기 김밥 한 개를 올리며 목 안에서 올라오는 울음을 간신히 참아냈다.






p.s

이 글을 엄마와 누나에게 보여주니 엄마는 그때를 회상하면서 많은 메시지를 톡방에 보내셨다.

나는 그저 "맞아, 엄마 정말 고생했어." 라는 말 밖에 해주지 못했지만 이건 정말이지, 나의 진심어린 마음이었다는 걸. 


엄마는 정말 많이 고생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나는 김밥집에서 소고기 김밥과 쫄면을 동료와 함께 먹었다.)


엄마의 김밥이 백 배는 더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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