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 대하여
상대방과 마주 앉았을 때 나는 종종 거리에 대한 생각을 한다. 몸을 앞으로 내밀거나 등을 기대는 행위에서 불확실한 가늠을 하는 것이다. 물론, 볼을 맞대고 애기같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면 좋겠지만 그건 영화에서나 본 장면이라 지금의 시야에서 테이블 너머에 있는 당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 밖에 할 수 없다. 손만 뻗어도 그 사람의 몸이 닿을 때가 있지만 어쩔 땐 우리 사이에 거대한 산이 있는 것처럼 엄두를 못 낼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손톱을 물어뜯었고 꽤나 감정적이게 변해 세상의 모든 것을 시련이나 사랑으로 빗대곤 했다. 집으로 갈 땐 지하철 구석으로 가 머리를 기댄다. 2호 차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당신은 어찌 그 사람을 만나 서로를 애틋하게 바라보고 있는지 속으로 물음을 던지기도 했고 괜히 나처럼 쓸쓸한 사람을 찾기도 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수 많은 인연을 만났던 걸까. 그리고 그 인연을 곁에 두기 위해 무엇을 해왔던 걸까.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데. 생각해보니 요근래 보고싶은 사람이 없더랬다. 친구들도 어쩐지 조용하다고 말하더라. 어쩌면 내 마음이 관계의 잔가지들을 쳐내고 있었던 게 아니었는지. 행하지 못하고 이대로 둘 거라면 그냥 0으로 만드는 게 낫지 않겠냐고 하며. 그래서 그토록 쓰다 지운 말이 많았나 보다. 꽃봉오리를 피우지 못할 잔가지들을 쳐내기 위해 마음이 나를 속박한 게 분명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힘이 없다. 뼈가 부러진 사람처럼. 손을 뻗어도 당신에게 닿지 않았던 이유가 이런 것인가.
지금 내 일상이 무채색인 것에 대한 이유는 오로지 나 자신이다. 그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나는 잘못한 게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었다. 우리 사이의 거리는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거리를 잴 능력도 없으면서 유세를 떨었는지도. 하지만 나는 단지 주고받음의 애정이 필요했을 뿐이다. 실존하는 감정으로 말이다. 다시 0이 된다면 나는 지하철을 타고도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