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하영 Jun 11. 2020

심전에서 올라오는 본질적인 우울이 있다.

우울의 구원




얼음 잔에서 기포가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바닥에서 올라와 수면에서 터지는 공기구멍을 보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마음대로 술을 마시고 담배를 태울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몸이라도 아팠으면 눅눅한 이불 위에서 우는 것밖에 더하겠나. 이별에는 철인과도 같은 체력이 필요하다는 엄마의 말을 떠올리며 한가득 술을 입에 머금었다. 근데 엄마. 이별은 지구력도 필요하지 않을까.


심전에서 올라오는 본질적인 우울이 있다. 그건 나도 알 수 없는 감정이라 그대로 놔두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아주 오랫동안 하늘 위에 먹구름이 껴있는 느낌이랄까. 비가 올 것 같지만 내리지 않고 진득한 습기만 만드는. 만약 비가 내리면 젖기라도 할 수 있지만 누구 하나 말려주는 이 없으니 가만히 서서 찹찹 해지는 살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쉽게 소멸되는 저 기포 녀석이 내 참 부러웠다. 뭐가 그렇게 쉽게 부서지는지.


술과 담배를 리듬감 있게 비우고 태우다 보면 뼈가 부러진 사람처럼 어깨가 툭 떨어진다. 술기운은 주위 사람들을 아무렇지 않게 바라보게 하고 렌즈를 낀 눈은 금방이고 뻑뻑해져 아주 강력하고 진한 하품을 만든다. 그렇다면 집에 가야지. 근데 저 구름은 2주일이 지났는데도 왜 소멸하지 않는 거야. 

질기긴.


우울의 구원이 내 앞에 놓인 온 더 락이었으면 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입술을 갖다 대고 얼음 사이사이에 끼어있는 술까지 모조리 빨아마셨다. 그리고 계산대로 향하다 다시 돌아와 얼음 두 개를 물고 카드를 꺼낸다. 사랑스러운 초여름의 밤. 네온사인이 즐비한 거리에 나는 홀로 서있다. 어떻게 집에 가야 할까 고민하다 걷기로 한다. 근데 그 사람, 지금 보니 참 못났더라. 뭐라고? 미쳤지. 내가 무슨 말을.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못났어. 잊어버려야지. 내일은 진짜 할 일이 많아 그렇지? 10분 만에 집에 도착하고 싶다.


밤은 그렇게 저물어간다. 

유월의 하늘은 점철된 회색빛 구름이 아주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무엇을 위해 인연을 만났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