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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하영 Jun 28. 2020

아버지의 대리운전

그에게서 배울 수 있었던 성실함이 있다.



아버지가 가족의 품을 떠난 지도 2년이 훌쩍 지났다. 근 2년 동안 변화한 일상에 적응하며 다시 제자리를 찾은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엄마는 간호사로 누나는 치위생사로 나는 작은 출판사의 대표로. 

아버지에게 직접적인 조언을 듣진 못했지만 본래 아들이라는 건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일을 언덕 너머로 바라보며 무언갈 배우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아버지에게 배울 수 있었던 건 바로 두터운 근면성실이다. 20년 동안 휴대폰 가게를 하셨던 그는 매일 아침 반여동으로 가 가게 문을 여셨고 삐삐 시절부터 스마트 폰이 나올 때까지 모든 기기를 만지시며 오랫동안 장사를 하셨다. 통신 3사에서 나오는 직영점이 많아지며 점점 뒤떨어졌지만 아버지에게는 옹골진 단골이 있었다. 하지만 구매 주기성이 긴 통신업계에서 단골은 매출에 그리 큰 힘이 되지 않았기에 누나와 나를 공부시키기에는 턱없이 돈이 부족했을 터다. 그때 아버지는 대리운전을 택하셨다. 

10시쯤 가게문을 닫고 새벽까지 대리운전을 하다 집에 돌아오면 그의 손에는 현금이 들어있었고 등교를 할 때 학원 봉투에 만 원짜리를 한 움큼 넣어주며 공부 열심히 하라고 말하던 그의 모습은 어린 나로서도 미안하고 안쓰러웠다. 


어렸을 때. 

그러니까, 아버지가 동이 트는 아침에 집에 들어왔을 때 졸린 눈을 비비며 그에게로 가 "아부지 고생했어요."라는 말 한마디를 했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조금이라도 그의 피로가 덜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표현에 무색했던 나 자신을 생각하면 참 못난 아들이었던 것 같다. 낯선 곳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올 때 그는 우리 가족을 생각을 하며 버티셨을 거다. 그 짙은 밤들을 내가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어렸을 때부터 본 그의 근면성실은 지금의 나를 있게 하기 충분했다. 

 

대리운전을 하기 위해 길거리에서 어묵을 먹으며 핸드폰을 바라보는 아저씨들을 보면 저분도 어느 한 가정의 아버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조금이라도 가족이 더 편하게 생활할 수 있게 아등바등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자는 시간 빼고는 일 밖에 하지 않는 현실에서 그들에게 행복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빠의 낙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가지고 온 성적표였을까 아니면 주말에 보는 야구였을까. 아버지도 그저 가족들이 건강하게 지내는 것만 바라 왔을까.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사실이 애석할 뿐이다. 


글을 쓴지도 어연 9년이 지났다. 글과 책은 이제 내 업이 되었고 업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단연 근면성실이었다. 나는 큰 욕심도 없었고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오랫동안 글을 써왔다. 브런치만 해도 벌써 4년 동안 운영하고 있으니 전에 썼던 글들을 보고 있자면 깜짝 놀라곤 한다. 어제는 인스타그램을 보는데 게시물이 1200개더라. 여기서 적어도 1000개의 글을 쓰고 올렸다고 생각하니 매일매일 글을 적었던 나의 생활이 마치 잘 자란 나무처럼 느껴졌다.(아주 느리게 천천히 자라온)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지구력과 성실함은 모두 아버지의 영향이다. 실제로 그가 아니었다면, 그의 성실한 모습을 보지 못했다면 지금쯤 나는 나태한 삶을 보내고 있었을 거라고 '확신'한다. 나는 이 바지런함으로 아버지가 완성시키지 못했던 어머니와 누나의 행복을 완성시키려 한다. 하지만 아버지가 내게 했던 말처럼 인생은 미완성으로 조금은 부족하고 투박하게 살아갈 것이다. 

그렇게 나이를 먹다 보면 나도 언젠가, 그가 지녔던 공허하고 외로운 시간을 느끼게 되겠지. 

우리 아빠 참 고생 많이 했다. 보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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