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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하영 Sep 03. 2020

시절 인연을 믿습니까 당신은

짙은 사랑에 대하여




시절인연(時節因緣)


사랑은 여행이라고, 나는 사랑을 시작할 때 많은 것을 가방에 챙겨야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인연이라고 한들 쉽게 사라질 수도, 부서질 수도 있으니 몇 그램의 괴리감과 미련 그리고 가슴에 바를 빨간약을 챙기는 것이다. 그러다 정말 이별을 하면 사랑을 하지 않았던 척을 하는 그는 마음에 너저분한 구멍이 뚫려 인연이 와도 그것을 손에 쥐지 못했다. 그는 분명 사랑이 하고 싶었을 테다. 하지만 도망칠 준비부터 하는 이에게는 천운이 아닌 이상 제짝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비통해하던 그는 어느 날 '시절 인연'이라는 말을 보고 온몸에 힘을 빼고 방바닥에 주저앉았더랬다. 널브러진 가방에서는 악취가 났고 성급하고 급했던 미련과 후회의 부스러기가 잔뜩 쌓여있었다. 사랑에는 부스러기가 없다더니. 억울함에 고함을 질러도 누구 하나 그의 잔여물을 치워주는 사람은 없었다.


맞아, 인연이라는 것은 스치기만 해도 성립이 되지만 그것을 잡기 위해 아픔을 감수하고 뛰어드는 것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고 상처받을 걸 알면서도 사랑하는 이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존경 그 이상의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처럼 그는 모험을 해야 했다. 어떤 육식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 미지의 곳으로, 아무것도 없는 휑뤵한 마음속에서 불을 지필 수 있게 사력을 다 해야 했던 것이다.


시절 인연은 누군가를 헤어지게도 하지만 불가항적인 사랑을 표하기도 한다. 그는 그간의 인연들을 떠올리며 구멍 난 마음에 실을 꿰기 시작한다. 그 행위는 그가 사랑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을 만들어주었을 것이다.


나는 언젠가 인연을 우주분의 1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드넓은 우주에서 각자의 방향과 속도로 움직이다 만난 기적이 바로 사랑이 아니겠는가. 서로가 만나 폭발하며 하나의 별이 되는 것. 때가 되면 만나게 되는 것이 나는 '시절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우린 앞으로 수도 없이 어긋날 테지만, 반드시 내 사람은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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