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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하영 Nov 24. 2020

좋은 책은 잘 팔리는 책인 것일까?

책을 기획한다는 것에 대하여 



출판사를 운영한지도 어연 1년 반이 지나간다. 출판사에서 일만 하던 사람이 출판사를 이끄는 입장이 되고 난 뒤로부터는 모든 책이 작가의 산물이 아닌 작가와 출판사의 산물로 보이기 시작했다. 저 책을 어떻게 해서 만들었을까, 어떤 기획을 통해 저런 책이 나왔을까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좋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는 책들이 있다. 단순하게 책이 좋다고 해서 베스트셀러에 오래 버티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출판업은 분명 성공하기 힘든 직군이다. 실제로 도산하고 있는 출판사도 많고 버티고 버티는 출판사가 성공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지하기 어려운 사업이다. 맞다, 책 하나가 크게 성공하지 않는 이상 출판사는 다양한 책을 내고 판매율을 차곡차곡 쌓아나가야 한다. 출판 관계자 말을 인용하자면 출판사가 안정권에 들어가려면 최소 20권의 책을 내야 하고 3만 부 이상 팔린 책이 있어야 하며 그것도 아니라면 70권의 책을 내야만 탄탄한 시스템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70권이라, 매달 책을 한 권씩만 내도 6년이라는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우리 딥앤와이드는 10개의 책을 냈으니 이제 5년만 버티면 되는 것일까? 동료와 밥을 먹으면서 이런 우스갯소리를 했다. 5년 뒤에도 월급 못 가져가고 똑같이 이 일을 하고 있는 거 아니냐면서. 그런 일이 생기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매년 불황기의 연속인 출판계에서 나는 가끔 잔잔한 불안함을 느낀다. 


책을 팔아야 한다. 그것도 좋은 책을. 그렇다면 좋은 책은 무엇인가. 사람들에게 현실적인 위로를 주는 책인가 아니면 작품성이 있는 책인가. 잘 팔리는 책이 좋은 책인가. 주옥같은 문장이 많은 책이 좋은 책인가. 

나는 이러한 질문 속에서 답을 찾고 있다. (아니, 벌써 찾았으면서도 모르는 채 하는 것일 수도) 



책을 만드는 삶이라...



한 대학생 친구가 내게 물었다.


Q. 출판사를 운영하시며 많은 책을 보셨을 것 같습니다. 좋은 책을 구분하는 작가님의 방법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A. 좋은 책을 구분하는 저만의 방법은 아주 주관적인 것이라 쉽게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사람들이 왜 책을 읽을까요? 마음이 공허하다던가 무언가가 빠진 일상을 보내고 있을 때 그것을 채우려고 책을 읽는 것이죠. 배움과 위로 크게 이 두 가지 키워드를 도출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저는 그 사람의 빈 공간을 아주 꼼꼼히 채워주는 책이 좋은 책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제가 "어떤 책은 좋은 책입니다"라고 단정 짓는 건 사실 의미 없는 말이거든요. 누군가에겐 하찮은 책일지 몰라도 누군가에겐 인생을 바로잡아준 책이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책의 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내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책을 읽으세요. 그 책이 당신에게 좋은 책이 되니까요


이처럼 우리의 빈 공간을 채워주는 책이 좋은 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위로 또한 검열을 하고 남들이 받고 있는 위로가 괜히 나에게도 위로가 되기에 '잘 팔리는 책'이 곧 좋은 책이 되는 시대다. 

조금 더 쉽게 말해보자. 많은 사람들이 읽은 책이라면 그만큼의 신뢰도가 있는 것이고 믿고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독자가 모험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반면에, 알지도 못하는 작가에 유명하지 못한 책이면 그 책을 구매할 때 독자는 수도 없는 고민을 하게 된다. "그냥 베스트셀러 사서 읽는 게 낫지 않을까?" 같은 느낌으로 말이다,

우리는 똑같은 사회 안에서 나름의 틀에 맞게 살아왔기 때 비슷한 고민과 비슷한 경험, 아픔, 상처 등을 가지고 산다. 그래서 위로를 개개인이 아닌 포괄적으로 해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잘 팔리는 책 = 좋은 책을 만들려면 대중성을 잡아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만인을 위로할 수 있는 책을 만드는 것이다.




위로의 정의를 쉽게 내리긴 힘들지만 가끔 사람들은 당연한 말들에 위로를 받는다. 척박한 사회에서 "괜찮아" "더 잘할 수 있어" "넌 좋은 사람이야"같은 말을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포괄적인 위로를 주는 책을 사람들이 읽는 것이다. 난 이점이 싫었다. 솔직하게 뻔한 말들은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이기에. 하지만 좋은 작가와 작업한 책들이 점점 수면 밑으로 가라앉는 걸 보니 현실과 타협을 하게 됐다. 그리고 힘든 날이면 나도 모르게 그런 뻔한 말들에 위로를 받곤 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는가. 그래서 이제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책을 만드려고 한다. 빈 공간을 채워줄 수 있는 그런 책 말이다.


2020년이 저물어간다. 내 책 <사랑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리커버 개정판이 나왔고 대기업 직장인 언니와 프리랜서 동생의 라이프 스타일이 담긴 <퇴근은 내가 할게 출근은 누가 할래>도 곧 출간이 된다. 이제 동료들과 나는 단순한 예술성을 고집하기보단 마음 한구석이 텅텅 빈 독자들을 위해 책을 만들 것이다. 

2021년도에도 꾸준하게 책은 나온다. 2020년과 다른 양상의 행보를 달릴 수 있기를. 노력한 만큼 그 보상이 돌아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보며 이 글을 마친다. 


저의 리커버 책도 많이 사랑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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