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소설> - 밤이 되기 5분 전

by 신하영




























혜진은 덤덤하게 운동화를 신었다.

현관 거울을 응시한 채 삐져나온 잔머리를 정리하고 수척해진 얼굴을 매만진다.

이제 역으로.

그곳으로 가면서 지난 2년 동안 사진첩을 가득 채운 추억들을 바라보며 함께 듣던 음악을 들었다.

짙은 노을이 지고 있다.

오후의 지상철은 한편의 로맨스 영화처럼 아득하고도 잔잔한 감정을 담고 있다.

눈이 조금 부셔도 괜찮았다. 이제 이런 감정 또한 안녕이 될 테니까.

지하철을 내리고 약속 장소로 가면서 음악을 껐다.

가슴이 조금씩 떨려오기 시작한다.


어딘가를 응시한 채 한 걸음씩 걸으며 혜진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것이 어떤 것이든 그들의 선은 이미 지평선을 넘어버렸는데.






.






현석은 일찌감치 샤워를 하고 집을 나섰다.

미용실로 가 이발을 하고 새 셔츠도 샀다.

혼자 커피를 마셨는데도 아직 약속시간이 두 시간이나 남아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약속시간을 바꾸는 애교 따위 부릴 수 없다.

그렇게 멍하니 벤치에서 시간을 보낸다.

자주 보지 않았던 하늘

노을은 오늘따라 세상을 더욱 진하게 적시고 있다.

어떡하면 좋을까.

음악을 들으며 사진첩을 봤다. 두터워질 때로 두터워진 우리의 낡은 추억들

낮은 한숨을 쉬며 현석을 그곳으로 발을 옮겼다.

스산한 바람이 분다.







.







"혜진아 여기."



"응."





하늘공원 공중전화 부스 앞

어색한 기운을 견딜 수 없었지만 둘은 서로를 마주 보며 인사를 했다.


2년을 만났다.

공과 사를 넘어 각자의 인생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서로를 사랑했던 그들은 이제 이별을 한다.

그 모든 시간들이 모여 만든 것이 고작 이별이라니.

현석은 실감할 수 없는 현실에 그만 웃음을 터트렸다.






"왜 웃어?"



"그냥. 이 상황이 실감이 안 나서."



"서로 정리할 만큼 정리했잖아."



"그래."



"마음 약해지지 말자."



"알겠어."






혜진은 마음을 꽉 쥐고 있음에 분명했다.

아플 만큼 꽉 쥐어 절대로 눈물을 흘리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녀는 헤어짐이 이렇게 어려운지 몰랐다.

홀로 감당해야 하는 모든 것들을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랑은 나눌 수 있는데 왜 이별은 나눌 수 없을까.

그런 생각들을 하니 모든 게 원망스러웠다. 지금 내 앞에 서있는 남자까지도.

사실, 앞으로 맞이해야 할 날들이 겁이 나서다.

2년의 연애를 분해하여 조금씩 집어삼키기엔 너무나 버거운 것들이다.

집 앞, 가로수길, 식당, 버스정류장, 벤치, 편의점, 바다.

어딜 가도 너와의 추억이 쌓여있을 텐데..

하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며 현실을 직시했다.


아랫입술을 길게 깨물고 그의 눈을 쳐다본다.






"고생했어 그동안."






그의 말 한마디가 가슴 깊숙한 곳을 쿡, 하고 찌른다.

"그동안"이라는 말이 이렇게나 슬픈 말이었던가

하지만 동요하지 않고 대답했다.






"미안했어. 현석아."






현석은 당장이라도 혜진이를 끌어안고 싶었다.

그렇다면 너의 눈물이 내 가슴을 적실 텐데.

그렇다면 내 눈물이 너의 머릿결에 닿을 텐데.

이렇게 돌아서버리면 다시는 잡을 수 없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일들이 그들이 헤어지는 명백한 증거이자 명목이었다.

그걸 너무나 잘 알기에 차마 그녀를 안지 못했다.

매일 맡았던 혜진이의 은은한 향기가 제일 그리울 것이다.

어딜 가도, 무슨 노래를 들어도, 어떤 음식을 먹어도 나는 네가 생각날 거야.

이렇게 덤덤한 그녀의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프다.

어쩌다가 이런 상황까지 와버렸는지 자신을 원망해본다.

하지만. 정말 이제는 서로에게 등을 보여야 한다.

우린 그러기로 했으니까.

그것이 우리의 앞날에 도움이 된다는 걸 알았으니까.






.







"잘할 수 있겠지?"



"뭐든 잘할 수 있을 거야."



"힘들 것 같아."



"알아."



"그래도.."



"응. 알아. 그러니까 얘기 안 해도 돼."



"응."



"잘 지내."



"너도."



"이제 어디가?"



"집에 가야지."



"그래. 가자 이제."



"......"







서로에게 손을 흔든다.

애써 미소를 지어보지만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그들이었다.

아주 짧은 시간

단, 5분



2년이라는 시간은 5분 만에 끝이 났다.

이별이라는 게 이렇게 가혹하다.




뒤돌아 걸어가는 그들의 눈물에 어떤 의문을 던질 수 있을까?

소리 없이 운다.


'사랑하지만 이젠 안녕'

이것이 그들이 사랑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다.




노을은 이별에 밀려 모습을 숨겼다.

5분이 지나자

그들의 마음처럼 세상은 밤이 되었다.




아주, 아주 슬픈 밤이다.

너무나 검은 밤





















p.s


관계라는 건 세상에서 가장 두꺼운 것이 아닐까요?

하지만 우린 그것을 너무나 쉽게 잘라내고 있어요.

무슨 이유인지 생각해보니


앞에서 잘라내는 건 겉치레더군요.


사실 관계의 끊음은 헤어진 뒤에 혼자 하는 겁니다.


아파도 참고 잘라내고 잘라내야하죠.

그들의 밤은 어땠을까요?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플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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