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소설> - 꿈사랑

by 신하영

















<3분 소설> - 꿈사랑













"어디 안 갈 거죠?"



"네."



"저기. 사랑해요."



"얼 만큼요?"



"정말 많이."



"하지만 전 존재하지 않는 걸요.

당신도 알면서."


"그런 소린.. 안 하기로 했잖아요."



"돌아가요 이제."



"아직은 아쉬워요."



"안돼요 이제는."









.









am 7:45





"어.."





알람이 채 울리기 전에 눈을 떴다.

오늘째로 4번째 꾸는 꿈이다.

그러니까 사랑하는 그녀를 만난 것도 4번째.

나는 아직 뛰고 있는 심장을 가득 느껴본다. 아름다운 그녀

오늘은 조금 더 진지한 대화를 해보려고 했는데 사랑한다 말하면 계속 돌아가라 하는 그녀다.

도대체 이게 뭔지.

꿈에서 만난 그녀가 누군지도 모르는 내가 이렇게 사랑에 흠뻑 빠져버린 기분이 드는 건

현실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탓인가.



나에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그것도 미래를 약속한.

하지만 어느 날 꿈에서 나타난 그녀가 이렇게 깊숙이 내 마음을 흔들고 있다.

그것은 살아생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사랑? 아니 그 이상이다.

그 꿈에서 느꼈던 새하얀 것들.

그녀와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모든 걸 버릴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

선명하지 않은 기억. 미친 듯이 느껴지는 희열감. 진정되지 않는 심장.

이런 것들이 요즘 날 미치게 하고 있다.



첫째 날에는 기억나지 않는 그녀의 얼굴이 내 하루를 통째로 집어삼켰고

두 번 째에는 그녀의 하얀 발목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매일은 아니었지만 일주일에 한 번. 그러니깐 지금이 벌써 한 달째인데 난 사랑하는 여자를 옆에 두고도

꿈속에 그녀를 생각하곤 한다. 더 이상 나오지 않길 바랬지만 세 번째 꿈에서 우린 포옹을 했고

네 번째 꿈에선 키스를 했다.

사랑이 확인된 것 같아 펄떡펄떡 뛴 나는 하늘을 나는 기분을 느꼈다.



그녀는 어느 날에는 교복을 입고 있었고 어느 날에는 하얀 천으로 만든 드레스.

또 어느 날에는 청바지

그리고 어제는 하늘색 구두에 긴 셔츠를 입고 있었다.

우린 서로의 이름도 모른다.

그저 꿈속에서 눈을 뜨면 그녀가 짙은 미소로 날 반겨주고 주제 없는 대화를 이어간다.

어떤 날엔 놀이터였고 어떤 날에는 들판이었으며 오늘은 물에 젖은 모래 위를 걷고 있었다.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어느 날에 만나든 불었던 일정한 속도의 바람이다.

나는 늘 그녀의 긴 머리카락이 흩날리는 걸 보고 미소를 지었다.



꿈에서 만난 여자

또 그 만남이 이어지는 꿈

회색빛 아침

현실



이 사이에서 느껴지는 괴리감은 꽤나 컸다.

사랑하는 그녀의 전화를 받으면 난 줄곧 피곤한 역력을 내비쳤고

그녀와 사랑을 나눌 때도 집중을 하지 못했다.

밥을 먹을 때도 손을 잡고 걸을 때도

어젯밤 꿈속에 나타난 그녀의 감촉을 생각하며 밤이 오길 기다렸다.



오늘째로 4번째


한참을 멍하니 침대에 앉아있는다.

눈을 뜨면서 사방으로 깨진 꿈의 조각들을 천천히 모아 보지만

은연중에 떠도는 그녀의 하얀 느낌밖에 남지 않은 것 같다.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그녀가 다시 나에게 찾아온다면

그땐 꼭 내 물어보리다.






.






pm 8:45






"서현아 여기."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녀에게 인사를 하고 미리 주문해놓은 저녁을 먹었다.




"오랜만에 먹으니깐 맛있다 오빠."



"많이 먹어. 오늘도 다이어트한다고 점심때 샐러드 먹은 거알어."



"어머, 어떻게 알았어?"



"sns로 다 보고 있어. 너 요즘 살 빠지는 거 난 되게 별로다?"



"그래도오. 우리 내년에 결혼하려면 지금부터 준비해놔야 해."





결혼

그래그래. 서현이와는 결혼할 사이였지.

가만히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원인모를 안도감이 들었다.

사실 서현이도 꿈속의 그녀처럼 소리 없이 사라질지도 모르는데.

근데 서현아 요즘은 정말 이상해. 이걸 말할 순 없으니 조금 답답하구나.

넌 사랑한다고 말해도 돌아가라 하지 않을 거지?




혼자 이런 망상을 해본다.





"알았으니까. 오늘은 많이 먹어."



"알겠어. 오늘은 말 들을게."





신나는 표정으로 음식을 먹는 서현이에게선 진한 사람 냄새가 났다.



좋은 식사였다.

다만, 지긋한 생각 덕분에 약간의 두통이 일어났을 뿐이다.



운전을 하면서 노래를 듣는다.

같이 마셨던 와인이 있어 오늘은 우리 집에서 같이 밤을 보내기로 했다.

서현이를 끌어안고 자면 당신도 날 쉽게 찾아오지 못할 거야.

아랫입술을 깨물고 엑셀을 조금 더 세게 밟았다.

도로의 기운을 느끼며 밤바람을 맞는다.






"스산하네."










.









붉은빛 와인을 적시고 서로의 몸을 맞댔다.

뜨거운 키스. 부드러운 살결.

물기가 채 마르지 않은 하얀 그녀의 몸을 감싸 않은 채 잠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그녀와의 만남은 다섯 번째가 된다.







.







"할 말이 있어요."



"오늘은 돌아가실 필요 없어요."



"네? 그게 무슨 말.."



"사랑한다고 해도 돼요."



"아.."



그녀의 아리따운 느낌이 났다.

살포시 내 품에 안기니 세상을 얻은 기분이었다.

맡을 수 없는 향기가 난다. 그렇지만 이대로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었다.




"오늘은 왜 이러시는 거죠?"



"그냥요. 그냥."



"근데.."



"네."



"당신은 누굴까요? 전 누군지도 모르는 그쪽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매번 다른 곳에서 다른 옷을 입고 이렇게 꿈에서 만나는데 전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면

당신 생각에 생활을 못할 정도예요. 사랑한다고 말하는 건 우리 서현이한테도 어색한 일인데.

이렇게 꿈에서 본 당신한테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는 게 웃겨서요.

근데 모두 진심이었어요.

태어나서 이렇게 좋은 감정을 느껴본 적 없으니깐요.
꿈에서 누군가를 계속 만난다는 거, 쉽게 일어나는 일이 아닌데 꿈사랑은 쉽나 봐요.

실제로 전 당신을 만나길 고대하면서 잠에 빠져들었죠.

근데 이제 더 이상은 안될 것 같아요."




여느 때와 다름없는 바람이 분다.

오늘따라 더욱 희미하게 보이는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내 말을 들으며 사박사박 풀을 밟으며 앞으로 걸어나갔다.





"제가 아련해지길 바라요."




발걸음을 멈춘 그녀가 나지막이 말했다.




"존재하지 않는 전 어쩌면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있잖아요.
절 소중히 여겨주세요. 그걸로 족해요."




무슨 뜻일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그녀의 뒷모습만 보고 긴 오솔길을 따라 걸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것이 마지막 꿈이라면.

그렇다면
나 한번쯤은 들어도 괜찮지 않을까?
사랑한다는 말을 듣는다면 나, 모든 걸 잊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데.
이 꿈사랑의 종점을 찍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염치없는 짓인걸 알면서도

나는 용기 내어 말했다.




"마지막 부탁이 있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내 얼굴을 응시했다.




"이것이 마지막이라면 저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실 수 있나요?"




희미하게 보이는 그녀.

하얀 커튼을 친 것처럼 애타게 보고 싶은 그녀는 나에게로 점점 다가온다.

한걸음. 두 걸음.



그녀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얼굴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모든 걸 놓아버렸고 그녀가 내 앞에 오길 기다렸다.

공기 중에서 옅은 향기가 난다.

그리고 양 볼의 보조개와 연갈색의 긴 머리

마지막으로 그녀의 얼굴


그녀는 나에게로 다가와 아주 조용히. 그리고 세심하게 속삭였다.

세상 어느 누구도 나 말고는 듣지 말라는 듯이.





"사랑해요."







.








눈을 떴다.


눈 앞에 보이는 내 연인의 얼굴

얼굴을 어루어만지며 내 숨소리에 맞춰 호흡을 하고 있다.

내 꿈의 마지막 장면은 짙은 미소를 짓고 있는 서현이의 얼굴이었다.

꿈의 장난 일지 몰라도 어쩌면 희미했던 그녀는 지금 내 옆에 있는 서현이가 아닐까?


가슴속 깊은 어느 곳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나도 사랑해."




이 말을 듣고 행복해하는 서현이의 얼굴을 보고 나는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꿈사랑













P.S

누구나 꿈에서 한번쯤 빠질 때가 있어요.

판타지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부분이 분명 있는 요소죠.

저는 딱 한번 있습니다.

그 꿈을 꾸고 3일 내내 멍한 상태였죠. 다행히 그땐 사랑하는 사람이 없었답니다.

어쨌든 주인공은 꿈사랑을 통해 현재의 사랑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됐어요.

희미하게 보였던 건 단지 꿈이라서겠죠.

사랑하는 그녀를 순간마다 생각하다 보면 꿈에 나오고도 남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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