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소설> - 수줍은 고백

by 신하영
















pm 22:13





-띠링





"응?"




다연은 깜짝 놀랐다. 이 시간에 그이에게 연락이 오다니.

눈을 비비고 한번 더 메시지를 살핀다.

확실히 그였다.



침대에서 일어나 서둘러 거울을 본다.

차마 이 꼴을 보여줄 순 없다. 얼마 만에 온 연락인데. 이건 기회야.



간단하게 맥주라니. 답장을 보낸 뒤 비비크림을 바르면서 온갖 상상을 다했다.

편안하게 나오라 했는데 또 자기만 왕창 꾸미고 온지도 몰라 그러니 아껴뒀던 티셔츠를 입자.

머리를 끌어올려 묶은 뒤 양치를 한다.

동생은 이 시간에 무슨 유난이냐며 눈초리를 보내지만 다연은 그것조차 느낄 새가 없었다.



15분 뒤 사거리 편의점 앞

시간을 확인하고 조금 진한 톤의 립밤을 바른다.

향수를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고 바디 미스트를 뿌렸다.

한참을 누워있어 얼굴이 부은 것 같아 얼굴을 쭉쭉 늘리며 괴상한 마사지도 했다.





"으어 누나 나갔다 올게."


"썸남이냐?"



"아니야. 엄마한테는 내가 말할 테니까 이상한 소리 하지 마."



"남자 만나러 가는 거구만 뭐."



"아 시끄러. 나 간다."





다연은 엘리베이터에 있는 거울을 보고 자신의 얼굴을 한번 더 체크한다.

자연스럽게 한숨이 나왔다. 도대체 보자고 한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하며 현관 밖으로 나섰다.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분다.

기분은 좋았지만 글쎄, 워낙 한 치 앞을 모르는 오빠라 다연은 최대한 마음을 다스리며 사거리로 향했다.








.








"왔어?"




멀리서 손을 흔드는 오빠




"오랜만이네 다연아."



"그러게요."



"일단 맥주 사러 갈까?"



"네."



"너 뭐 좋아하는데?"



"저 카스.."



"카스 좋지."





그렇게 편의점에서 맥주 2캔을 사 근처 의자에 앉은 둘이다.

짧은 텀마다 느껴지는 어색함은 다연이만 느낀 게 아닐 것이다.

매너 있게 맥주 캔을 따서 전해준다.





"잘 마실게요."



"응."



"근데 무슨 일이에요 오빠?"





자연스럽게 물었다. 생각하고 말한 것도 아니었다.

다연은 왜 이 한밤에 맥주 한 캔을 하자고 자신을 불러냈는지 정말 순수하게 궁금했다.





"아. 그냥.."



"그냥요?"



"그냥 이쪽 동네 왔는데 너 생각나서."



"아.."





입을 쭈욱 내밀고 맥주를 목으로 넘긴다.

9월 초의 밤 맥주는 그 한 모금으로 오늘 하루의 모든 노고를 잊게 한다.

저도 모르게 탄성이 나와 다연은 서둘러 입을 막았다. 읍





"근데 저녁은?"



"먹었죠. 닭볶음탕에"



"맛있었겠다. 나는 이게 저녁이야."



"원래 밥 안 챙겨 드시잖아요. 배 안고파요?"



"고파."



"밥 먹으러 갈까요?"



"너는?"



"전 또 먹을 수 있어요."



"뭐야. 벌써 먹었으면서.."



"저 돼지거든요."



"응?"



"아니에요."





혼자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얼굴을 들었다.

지나가는 차 소리. 별다를 것 없는 도로의 네온사인.

다연은 갑자기 노래가 듣고 싶었다.

핸드폰을 들고 스웨덴 세탁소의 숲을 틀었다.

소리는 매너 있게 5 정도로. 아주 잔잔하게 들리게.





"오빠 오늘 말 되게 없으시네요. 노래 좀 들을게요."



"아.. 응."



"근데. 우리 언제 마지막으로 봤죠?"



"음.. 내 기억으론 2주 좀 넘은 거 같은데?"



"그때 술 먹고 실수해서 죄송해요. 저 완전 이불 킥 했어요."



"괜찮아. 마시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근데 오빠."



"응?"



"그때 하신 말 다 진심이에요?"



"어, 사실은.. 그거 해명하려고 왔어."



"대충 그럴 거 같았어요."



"내가 한 말, 다 진심은 아니지만 솔직하게 말한 것도 있어."



"알겠어요."



"그러니까 다연아."



"오빠."



"응?"



"저 이제 오빠 안 좋아해요."





제법 진지한 말투로 말했다.

그래.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6개월 전 친구와의 술자리였다.

다연은 근 2년 동안 본 남자 가운데 처음으로 반함을 느꼈다고 친구에게 알랑방귀를 꼈다.

부지런한 노력으로 오빠와 커피를 마실 수 있었고 그다음에는 영화 그리고 나중에는 일대일로 소주도 한 잔 했다. 근데 남자의 애매모호한 행동 때문에 다연은 쉽게 마음을 잡지 못했다.

아니 그렇기보다는 마음은 점점 커지는데 그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고백은 한 번도 안 해본 그녀가 사귀자고 말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부끄러워서)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자연스럽게 시소의 위치는 남자 쪽으로 올라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같이 저녁을 먹으면서 소주를 한 잔 했는데 다연은 큰 마음을 먹고 온 상태라 남자보다 훨씬 빨리 잔을 비웠다.

발그레다연

그 상태로 남자에게 말했다.





"오빠. 오빠는 그레이야."



"그레이? 좋지. 그레이 잘생겼잖아."



"아니 아니~~ 아니야. 왜 그레이냐면은 회색이잖아 회색."



"회색?"



"응! 애매해. 막 먹구름 같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무슨 말이야 갑자기."



"내가 오빠 너 많이 많이 좋아하는데. 내가 티를 못 낸 거야.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거야 정말."





남자는 다연이의 말을 듣고 아무 말도 못 하였다.

그저 당황해서 헛웃음만 낼뿐.

다연은 그 10초 동안 단숨에 술이 깨는 마법을 느껴버렸다.

하지만 이미 늦은 걸 어쩐다. 엎친데 덮친 격 남자는 다연에게 진한 상처를 남긴다.





"다연아. 미안한데 오빠 좋아하는 여자 있어.

우린 미주가 소개하여줘서 그냥 좋은 오빠 동생으로 지내기로 했잖아. 그래서 편하게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이렇게 술도 마신 거 아니었나? 난 너 다른 남자랑 연락하고 있는지 알았는데. 갑자기 이러니깐 당황스럽네."



"아.. 그래요?"





다연은 빨개진 볼을 하고 선 초점을 잃어버렸다.

지난 3개월 동안 난 뭘 하고 있었던 거지. 역시 얼굴이 열라게 예뻐야 하나. 망할

아랫입술을 꾸욱 깨물고 차오르는 눈물을 넣었다.





"응. 내가 오해할 짓을 했으면 사과할게. 근데 우린 스킨십도 안 했고. 자주 본 것도 아니니깐.

괜히 이런 말 해서 어색해지지 말자. 다연이 너는 좋은 여자라 나 말고 충분히 더 좋은 남자 만날 수 있어."



"응. 취소할게요. 취소 꾸욱. 퉤퉤."



"너 취했네. 이것만 마시고 가자. 택시 태워줄게."





그 날.

택시에서 엉엉 울었지만 다음 날 내색은 할 수 없었다.

오빠는 좋은 사람이었으니까. 그래서 한 번의 대화로 잃고 싶진 않았다.

그 뒤로 몇 번 연락을 하고(짝사랑) 그러니깐 2주 하고도 조금 더 전에 힘들다고 연락이 와

술을 먹고 같이 밤을 보냈다. 물론 섹스도.



모르겠다. 술이 원수지만 다연이도 아직 남은 짝사랑의 잔상이라는 게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녀가 사과를 한 이유는 침대에서 배게로 사정없이 때렸단다.

세상에 마상에. 버릇을 가져도 그런 버릇을 가지고 있다니.

잔 건 둘째치고 이러다 사람을 죽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금주를 시작한 그녀다.



어쨌든.

그때 남자는 다연이에게 호감을 표시했다.

여태 동안 주절주절. 생각을 해봤는데 꾸물꾸물. 저번에 그 여자애는 팔딱팔딱.

다연이는 잠자코 들어주었지만 여자의 마음은 갈대가 아니던가.

지난 3개월 동안 잃고 싶지 않았던 오빠를 다연은 종이비행기를 만들듯 차곡차곡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접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그걸 날려 보낸다.






"그래 무슨 말인지 알아."



"아. 뭐 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렇다고 지금 오빠를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그래."



"사실은 저 오빠 아직 좋아하긴 해요. 근데 그러지 말라면서요. 그래 놓고 이제 와서 이러면 저더러 어쩌라고요. 오빠는 그 언니 만나서 히히덕 다했으면서. 그걸 뜬 눈으로 다 본 전 오빠를 남자로 여길 생각은 없어요. 그래도 예전만큼은 아니라서 이런 말 하는 거예요. 한 달 전에 이랬으면 넘어갔을지도 모르죠. 근데 그때 술 취해서 오빠 때리고 화가 다 풀렸나 봐요. 지금은 뭔가 초연해진 거 있죠? 지난 6개월 동안 그래도 혼자 낑낑거리면서 난리 피우니까 진이 다 빠졌나.. 어쨌든 더 이상 감정 소모 안 하고 싶어서요. 오빠도 저 완전히 좋아하는 것도 아닐 테고 그 언니랑 헤어진 지도 얼마 안 되었고. 그냥.. 저는 그래요 뭐.."





남자는 땅을 응시한 채 다리만 까딱까딱 움직였다.

다연이의 수줍은 고백은 그에겐 천둥 같았을 것이다. 안일함의 결과. 무지한 사람의 끝.


자연스럽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생각해보니 다연이가 한 말은 모두 옳았다.

타이밍이 중요했지만 자신은 이기적이었고 다연이에 대한 안정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안됐다. 그러면 안됐었다. 어디 감히.

자신이 부끄러운 듯 맥주를 벌컥벌컥 마신다.





"듣고 보니 네 말이 다 맞네."



"혹시 몰라서 이미지 트레이닝해놨죠."



"하하.. 그래. 미안해 다연아. 내가 괜한 소리를 했다."



"오빠한테 미안하다는 소릴 들을 이유가 없어요. 제가 제대로 고백해서 차인 것도 아닌데."



"그건 그렇지만. 그냥 여러모로 느껴지는 게 그래서."



"괜찮아요 오빠. 뭐예요 이게.. 괜히 어색해졌어."





다연은 이마에 삐져나온 잔머리를 넘기며 남은 맥주를 마저 마셨다.

사실 지금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사람은 바로 다연이 아닐까?

잘근잘근 아랫입술을 깨문다. 누군진 몰라도.





"어쨌든 정리가 돼서 다행이다. 추운데 이제 갈까? 바람이 많이 부네."



"네."



"나는 이쪽으로 가면 돼. 집 가까우니까 혼자 갈 수 있지?"



"물론 입죠."



"그래. 나 갈게."





손을 살랑 흔들고 뒤돌아서 가는 내 아련한 오빠





"오빠."



"응?"



"잘 가요."





다연은 마지막으로 오빠의 미소를 보고 싶었다.

웃을 때 하얀 건치가 보이는 오빠는 "잘 가요."라고 말하면 항상 미소를 보여줬던 사람이니까.



그 미소를 꾸깃꾸깃 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가는 다연이다.

많은 생각이 든다. 이제는 의미 없는 것들.

킁킁 바람을 들이마시고 이어폰을 꼽았다.





"춥기는, 이렇게 날씨가 좋은데."






오늘 다연이는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

수줍은 소녀와 당당한 여자의 경계선을 완벽히 보여준 그녀에게 모두 박수를!





















P.S


다연아 어딨니? 내 목소리 들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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