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가던 반찬가게 아주머니는 총각김치를 아주 잘 담그셨다. 자연스레 단골이 된 건 엄마의 손맛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부터 가게 문이 닫혀있어 내심 걱정했는데, 얼마 뒤 맞은편 큰 가게로 자리를 옮기신 아주머니를 보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노란색 간판에는 큼지막하게 아주머니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새로운 곳으로 옮겼으니 매출을 올려드리는 게 단골의 사명이 아닌가. 나는 부채질을 하고 있는 아주머니에게 가서 말했다.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김치를 봉지에 담는 아주머니에게 “큰 데로 가게 옮기셨네요.”라고 하니 물개박수를 치신다.
몇 초 고민하다 고생하셨다는 전하니 아주머니는 이제야 편하게 일할 수 있다며 반찬이 더 맛있어질 테니 자주 오라는 농담을 하셨다. 나는 왜 거기에서 눈물이 핑- 돌았을까. (진짜 잘 운다,,) 잠시 고개를 돌리고 두툼한 봉지를 손에 쥔 채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반찬 통에 김치를 담는데 안이 가득 차 다 들어가질 않는다. 역시 인심이 좋으시다. 손으로 총각김치를 들고 한 입 크게 베어 먹었다. 콰드득- 콰드득-. 감칠맛이 나는 최고의 김치다. 저녁 9시. 고요한 집 안에서 김치 씹는 소리만 들린다. 그때 엄마 생각이 났다. 고생한 우리 옥 여사. 내가 아까 울음이 차올랐던 건 아마 순금 아주머니의 쭈글쭈글한 손에서 우리 엄마 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냥 반찬만 살 수 있었는데 나도 참 실없는 사람이다. 부산에 내려간다면 엄마 손을 꼭- 잡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식을 위해 오랫동안 김밥 장사와 마트에서 일한 그녀의 손 주름에는 사랑과 희생이 스며들어 있다. 볼에 손을 가져다 대고 엄마의 사랑을 가득 느끼고 싶은 밤이었다.
요즘은 그렇다. 점점 마음이 약해지는 기분. 나는 아무렇지 않은 일에 눈물을 절절 흘리고 큰 시련에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 나약하고, 인간답고, 따듯한 것에 반응하는 건 내가 너무 각진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이겠지. 뚜껑을 겨우 닫으며 순금 아주머니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기회가 된다면 “아주머니가 만든 반찬에는 사랑의 힘이 있어요!”라고 말해주고 싶다. 하지만, 그건 너무 오버겠지?
바쁜 일상으로 총각김치는 냉장고 안에서 빠르게 쉬어갔다. 나는 뒤에서 누가 쫓아오는 사람처럼 정해진 하루를 보내기 급급했고 언젠가 쉬어있는 김치를 보곤 굳은 일상을 한 번 뒤돌아볼 수 있었다. 나는 생각한다. 가끔 순금 아주머니 같은 따스한 것들이 내게 찾아와 주었으면 하고.
그땐 고개를 돌리지 말고 그냥 울어 버려야겠다.
나에게 왜 울어요?라고 물으면 “그냥 이 순간이 너무 따뜻해서요.”라고 말해야지.
내게 더 많은 온기가 찾아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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