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이야기
내가 당신을 오래 생각하게 된 건 이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상상력이 비범한 나는 그저 생각만 했을 뿐이다. 그대가 현관문을 열고 한숨을 쉬며 신발을 벗는 것. 가방을 집어던지고 후줄근한 옷으로 갈아입는 것. 손발을 뽀독뽀독하게 씻고 거울을 보는 것. 찬장을 열어 몇 초 고민하다 라면을 꺼내는 것. 냄비에 물을 올리고 콧노래를 부르며 라면을 끓이는 것. 한 손으로 머리를 잡고 면치기를 하는 것(?) 마지막으로 잘 먹었다고 메시지를 보내는 것까지.
하나를 먹어도 맛있게 먹어야 한다고 말했으니 분명 내 상상에 맞게 행동할 것이다. 설거지가 귀찮겠지만 기어코 고무장갑을 끼고 해내겠지. 조금 튀어나온 뱃살을 집으며 입술을 삐죽 내밀테지만, 그 자체만으로 인간적이고 매력적인 당신 아니겠는가. 이밖에도 나는 우리가 함께 밥을 먹는 상상을 한 적이 있다. 이제는 영화관이나 카페에 가는 것보다 식탁 위에 음식을 가지런히 두고 좋아하는 사람과 식사를 하는 게 가장 큰 행복처럼 느껴지니 내겐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일단 새 모이를 먹는 것처럼 절대로 소심하지 않을 것이다. 각자의 방식대로 아주 맛있게 한술을 뜨겠지. 배가 차면 어때, 워낙 대화가 통하니 그만큼 소화도 잘되고 이야깃거리가 점점 늘어날 테다. 이건 어떻고 저건 어떻니, 블라블라 하며 공감과 탄식을 반복하다 보면 우린 어제보다 한층 가까워져 있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친구와 야끼니꾸 집에서 술을 마실 때 고기를 구우며 대화를 나누는 연인을 본 적이 있다. 직상 상사 얘기였나? 아무튼 모든 서사를 아는듯한 남자는 잘 구워진 고기 한 점을 여자의 접시에 내려놓으며 가벼운 유머로 그녀를 웃음 짓게 했다. 우리가 바라는 건 거창한 사랑이야기가 아니지 않은가. 그저 평범한 하루에 내 연인이 조금씩 스며드는 것. 그 자체로 연애는 빛이 나는 것이니 내가 라면하나에 멋진 이야기를 그리는 건 판타지가 아닐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