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5일
저는 현재 아이폰 6s를 사용하고 있는 26살 청년입니다.
아빠의 권유로(반강제적으로) 16기가를 샀는데 11개월을 쓰고 있는 지금 매일 저장공간이 없다는 울림을 받고 있는 아주 슬픈 현실을 겪고 있어요.
공장 초기화를 시켜서 5기가를 남겨놨는데도 꾸역꾸역 알 수 없는 용량이 채워지나 봐요.
저는 스카이 폰을 좋아하던 사람입니다. 지금보다 어렸을 때 삼성이나 애플은 대기업이라 이유 없이 미운 생각이 들었거든요. 근데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게 되면서 아이폰 감성이라는 것에 빠졌고 지금은 사과 모양이 나오게 거울 셀카를 찍곤 합니다. 뭔가 있어 보이잖아요? 못생긴 얼굴도 가릴 수 있고.
아무튼
우리 세대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모두 겪은 축복받은 사람들이에요.
어렸을 때 아버지가 운영하시는 휴대폰 가게에서 수많은 종류의 삐삐와 두꺼운 휴대전화기를 봤어요.
집에선 핑클이나 S.E.S 노래를 휴대용 카세트로 들었고 얼마 뒤에는 GOD 앨범 시디를 오디오에 넣고 누나와 한참을 들곤 했죠.(S.E.S 누나들 컴백 축하해요.)
갑자기 기억나는 건데 가수들 테이프를 모아 도미노를 만들어서 논적도 있답니다.
저는 가수들 안무도 많이 외웠었고 초등학교 때는 베이비복스의 'Get up'으로 장기자랑에 나가기도 했어요. 그때 엄마가 제 차례가 됐는데도 도착하지 않아서 장기자랑이 끝나고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 있네요. 엄마는 저를 안으시고 백화점에 가자고 했었죠. 그 설움이 아직도 기억나는 걸 보니 그때 정말 서운했나 봐요.
초등학교 때
오락기 게임이 너무 재밌어서 동전 한 푼 없이 남들 하는 것만 보다가 해가 진적이 있어요.
오백 원이라도 생기는 날이면 잘하는 게임 2판을 하고 불량식품 2개를 주머니에 넣고 하나는 요물 조물 먹으며 집으로 가곤 했죠.
그 나이에 맞게 퐁퐁도 타고(다른 도시는 붕붕이라더라) 숨바꼭질, 옥상 탈출, 삼국지 놀이를 하면서 재밌게 놀았어요. 고학년이 되고 나선 비디오 가게에서 후뢰시맨과 바이오맨을 빌려 보고 6학년 때는 WWE 슈퍼스타들을 아주 열심히 따라 했었죠.
밖에서 뛰어놀다 해가 지면 집으로 가서 저녁을 먹고 소파에서 디지몬 어드벤처를 보다 잠에 빠져들던 때가 있었어요. 아빠가 집에 오시면 항상 절 안아 방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셨는데. 얼굴에 뽀뽀를 할 때 느껴졌던 턱수염의 감촉이 아직 생생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한 친구랑 친해졌는데 그 친구는 핸드폰이 있었어요. 아주 큰 폴더 폰이었는데 음악을 틀면 엄청난 소리가 났고 그 당시임에도 불구하고 지문인식이 됐죠.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이었는데!
놀이터에서 노래를 틀어놓고 춤을 추고 엽기 사진을 찍고(그 친구 집에서 하두리도 찍었음) 계단에 앉아 자동차 게임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집에는 돌덩이 같은 컴퓨터가 있었어요. 뒤통수가 아주 큰 모니터를 보며 버추어 캅을 했죠. 추석 때 받은 용돈으로 게임 CD를 사고 심지어 집에서 장판으로 된 DDR을 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메가패스, 라이코스, 야후코리아 뭐 이런 것들이 기억나네요.
15년 전. 디지털은 제 인생의 전부가 아니었고 아날로그도 제 어린 시절의 전부가 아니었죠.
그러니까 저는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공존하며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말로 그랬거든요.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MP3라는 게 나왔어요.
아이리버 아시죠? 물론 저희 집도 샀답니다. 128메가 256메가 512메가 이렇게 3개가 있었던 거 같은데 제 기억상으론 256메가 MP3를 24만 원을 주고 샀던 것 같네요.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올 정도예요.
256메가 MP3가 24만 원이라니!
근데 들고 다니면 얼마나 멋이 나는지. 열심히 들고 다니다 잃어버리고 얼마나 맞았는지 몰라요.
그다음에 나온 건 디지털카메라. 디카라고 많이 불렀죠. 그 당시 저는 500만 화소 카메라가 최고인 줄만 알았답니다. 그 비싼 돈을 주고 산 디카를 제가 또 잃어버려서 죽도록 맞았었어요. 그때부터 잃어버리는 습관을 조금씩 고치기 시작했죠. 음, 음.
그렇게 살다 보니 핸드폰에서 노래가 나와요. 안테나가 줄어들고 액정이 돌아가기 시작하네요.
그리고 예쁘게 셀카도 찍어요.
"아빠 나도 갖고 싶어 그 핸드폰!"
원래 짜장면 집 아이들이 짜장면을 더 못 먹는다고 휴대폰 가게를 하시는 아버지가 있는데도 저는 늘 시대에서 조금 뒤처진 핸드폰을 쓰곤 했어요.
그렇게 스마트 폰이 나오면서
아날로그 감성은 저 멀리 떠나버립니다.
이해합니다. 현재 저는 디지털 감성을 마음껏 누리고 있는 사람이니까요.
어때요? 아날로그. 그때 그 시절이 그리운 가요?
저는 가끔 그립기도 한다만.
요즘 아이들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순수했던 것 같기도 해서요.
지금 아이들은 SNS가 생활의 바탕이 되어있고 스마트 폰에서 너무나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느끼고 있죠.
제 어릴 적엔 세이클럽, 다모임, 버디버디를 같은 걸 했는데 그땐 정말 '대화' '소통'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잖아요. 이성과 나누는 문자 한 통이 소중했고 편지라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어요. 그리고 미니홈피에서 진정한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나갔죠.
그렇다고 요즘 아이들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닙니다.
말했듯 전 두 시대를 공존하면서 살아온 사람이니까요.
안타까운 게 한 가지 있다면 모르는 게 많았던 시절이 좋았다는 제 모습과 실제로 너무나 많은 걸 아는 요즘 아이들을 보면서 생기는 괴리감일 거예요. 말했듯 저는 26살. 어리다면 어리고 어른이라면 어른일 수도 있는 저 또한 너무나 많은 것들을 알기 때문에 여기서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요.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들을 알아서 그만큼 세상을 보는 눈이 높아진 게 아닐까요?
제가 앞서 말한 것들은 전부 좋은 추억이랍니다. 행복이라는 건 진행형으로 느끼는 것과 후에 느끼는 것들이 있어요. 누군가와 함께 "그땐 그랬잖아."라고 말하며 추억을 나눌 순 있는 건 그때 행복했기 때문에 가능한 게 아닐까요? 추억이라는 건 전에 느꼈던 행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러나 요즘의 저는 매사가 걱정이고 행복이라는 게 뭔지 깊게 생각하곤 해요. 좋은 날이 있지만 항상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진정 내가 원하는 게 뭔지 가만히 살펴보면 너무나 속물적이고 현실적이어서 친한 친구들이 아니면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죠. 예전의 제 모습과 지금은 제 모습은 너무나 달라졌습니다.
그만큼 많은 것들을 보고 느낀 탓이겠죠.
앞서 말했듯 제 핸드폰의 용량은 16기가입니다.
지겨운 알람에 또 어떻게 지우다 보니 300메가 정도의 여유공간이 생겼어요.
하지만 금방이고 채워질 거예요. 저도 모르는 것들에 의해서 말이죠.
그러면 전 다시 어떤 것들을 지울 거예요.
나아지는 게 전혀 없고 이 상황이 반복되겠죠.
우리 자신에게도 정해진 저장공간이 있을까요?
만약 있다면 우리가 매일 보고 느끼는 것들이 쌓이는 용량이라고 해봐요.
정해진 용량에 점점 가득 차는 것들은 좋은 것일 수도 있고 안 좋은 것일 수도 있겠죠.
중요한 건 제 핸드폰처럼 어느 공간에 자신도 알지 못하는 쓸데없는 것들이 쌓이고 있다는 거예요.
그것은 매일 우리가 경험하는 것에 비롯되겠죠. 그러니까 우리는 살면서 걸러내는 힘을 길러야 해요.
좋은 건 좋은 것대로 나쁜 건 나쁜 것대로. 인지하고 걸러내고 받아들이는 방법을 알아야 머릿 속이라든지 마음속에 여유로운 공간이 생길 거예요.
아이폰은 초기화라는 게 가능합니다. 핸드폰에 있던 모든 것들을 지우는 게 가능하죠. 하고 나면 얼마나 시원할까요? 근데 인생은 그게 안돼요. 아니 그것보다 인생 초기화라니 너무 극단적이잖아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방법을 모르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 도대체 뭘까요.
글쎄요.
저따위가 어떻게 알겠는가요
근데 자신한테 이렇게 한 번만 물어보는 게 어때요?
"나는 나 자신을 얼마나 아는가요?"
나를 아는 만큼 행복은 그리 멀지 않다는 걸 느끼게 된대요.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내가 잘 아는 나의 행동은 모두 절 위한 거였거든요.
행복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용량을 분명 알고 있을 거예요.
제가 16기가에 맞게 최소한의 어플로 핸드폰을 사용하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넓이를 알고 그에 맞게 행동해야 할 필요가 있겠죠.
전 64기가를 쓰는 친구들이 부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가 불행하다고 생각 들진 않아요. 거기에 맞게 아주 잘 사용하고 있죠.
만약 제가 64기가를 사용하는 것처럼 핸드폰을 사용했다면 전 지금보다 신경질적이고 불행할 거예요.
우리내 인생도 마찬가지겠죠.
자신의 그릇 안에서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것.
그게 인생을 살아가는 현명함이 아닐까요?
어렸을 적 아날로그 감성이 사라져도 그건 아직 제 머릿속에 남아있네요.
그게 아주 큰 공간을 차지한다 해도 절대 지우지 못할 거예요.
이제 제가 해야 할 건 걸러내는 힘을 길러보는 겁니다.
제 안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아직 용량이 많이 남아있더군요.
앞으로 일어날 일들은 너무나 많이 남아있어요.
그러니까
생각을 낮게 해봐요.
잔잔한 바다에서 물결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처럼.
맛있는 음식에, 메시지 한통에, 싱그러운 바람에, 상대방의 웃음에
우리도 충분히 행복하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전 그렇게 믿어요. 저렇게 한다고 절대 손해 보는 건 없더라고요.
당장 오늘 하루부터 시작해보는 거예요.
물론 하루 만에 바뀌지 않겠지만
그러다 보면 언젠간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 되지 않겠어요?
P.S
이 에세이는 그냥 다들 힘내자라는 이야기예요.
힘!
결과적으로 아이폰은 16기가 사지 마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