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에세이> - 나는 클래식을 좋아합니다.

by 신하영




아주 오래 전 부터.





고등학교 시절 저는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에 빠져 매일 보고 싶었던 장면만 골라봤던 때가 있었습니다. 3개월 동안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영화를 틀고 음악을 들었었죠.

저에겐 피아노에 대한 강한 로망이 있었습니다.

말할 수 없는 비밀에 모든 OST를 주연 배우인 주걸륜이 직접 작곡을 했다고 들었을 땐 온몸에 전율이 돋아 음악이 내 길인가 하고 진심으로 고민하기도 했었죠. 예술인의 길은 정말 멋있구나.라고 생각해서 부모님에게 작곡을 하고 싶다고 조금의 고민도 없이 말했었습니다. 실제로 어머니는 허락을 해주셨고 그대로 피아노 학원까지 등록을 하러 갔을 만큼 열망이 강했었죠. 물론 일주일 뒤에 손가락이 부러지긴 전까지는요.








어쨌든.


싸이월드 홈페이지에 가장 좋아하는 신을 업로드했습니다. 단순히 제가 보기 위해서 올린 영상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 초등학교 동창이었던 친구에게 연락이 옵니다.


"하영아. 고맙다."

저는 당황스러워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응? 뭐가 고마워?"


그러니 친구가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네가 올린 피아노 영상을 보고 마음에 들어서 대학 입시 곡으로 준비했는데 교수님이 너무 좋다고 그 자리에서 바로 합격시켜 주셨어."

"헐. 진짜?"
"응. 진짜. 고맙다 진짜 다 네 덕분이야."



음. 솔직히 그땐 그냥 '그랬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한 건 그저 홈페이지에 영상을 올린 것 밖에 없었으니깐요. 하지만 몇 달뒤 대학에 입학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니 뿌듯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기분이 묘하게 좋았죠.

7년이 지난 지금 그 친구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저는 분명 좋은 음악가가 되었을 거라 믿고 있습니다.









저는 클래식을 좋아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뉴에이지와 클래식의 차이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오래전부터 저는 클래식을 좋아했습니다.

유명한 음악가라 하면 베토벤, 모차르트, 브람스 등등 교과서적인 정보만 기억할 뿐 클래식의 자세한 역사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 제가 클래식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어렸을 때부터 집에 있는 오디오로 항상 클래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만 저는 클래식 시디를 바꿔 들으며 장난감을 만지고 엘리자베스를 위하여를 들으며 누나와 춤을 추기도 했습니다.

그런 저에게 피아노에 대한 재능은 없었지만 콩쿠르에서 입상까지 했던 누나가 치는 '소나티네'라는 곡은 정말로 좋아했습니다. 물론 젓가락 행진곡 정도는 여유롭게 칠 수 있었지만요.





창 밖을 보며, 사색.








학창 시절. 저의 MP3 안에는 항상 클래식이 들어있었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비보이를 했기 때문에 줄곧 힙합에 빠져 있었지만 집에 가는 버스를 탈 때면 이상하게도 클래식이 듣고 싶었습니다.

저는 버스 안에서 사색에 잠기는 걸 좋아했습니다. 그 어린놈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싶지만 드뷔시의 달빛을 들으며 날이 저물어 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는 걸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니까 저는 알게 모르게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 전이었죠.

글 작업을 하려고 컴퓨터를 켰는데 마우스를 잘못 클릭했는지 윈도우 미디어 창이 켜져 있었습니다.





3개의 곡







눈에 익은 3개의 앨범이 제 눈에 보였습니다.



'Bob Acri, Richard Stoltzman, Mr. Scruff'



저는 이 사람들이 누군지 모르지만 이곡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군인 시절. 행정업무를 볼 때 항상 듣던 곡들이었거든요. 좋아했습니다. 매일 음악을 듣던 저에게 군인 시절은 삭막, 그 자체였습니다. 무언갈 하면서 음악을 듣지 못하는 부분이 개인적으로 정말 불편했는데 이렇게 잠시라도 클래식을 들을 수 있다는 것에 기쁜 마음이 들었습니다. 동기들이나 선임들이 그만 좀 듣자고 몇 번이나 말했었지만 저는 고집스럽게도 이 곡을 듣고 또 들었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니까요.








차분해집니다.

글을 쓰고 난 뒤로부터 저는 피아노 곡과 잔잔한 재즈를 직접 찾아서 듣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정재형의 'Le Petit Piano'이라는 앨범을 가장 좋아합니다.

그중에서도 '오솔길'이라는 곡을 제일 좋아하는데 매일 자기 전 한 번은 듣고 눈을 감습니다.

들을 때마다 떠오르는 장면들이 저를 기분 좋게 가라앉혀주기 때문이죠.






정재형의 최고의 앨범




그러니까.

어떤 곡을 듣고 있자면 선율에서 전해지는 영감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캐치해내서 글을 쓰곤 하는데, 완성작을 보며 음악을 들으면 창작에 대한 뿌듯함이 가득 느껴지기도 합니다. 역시 음악 없이는 못 살아.라는 생각을 했던 순간이었죠.

이런 제가 어쿠스틱 카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겨울'을 들으며 자신 있게 말해봅니다.



"나는 클래식을 좋아해."라고요.



이 정도면 좋아한다고 말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클래식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이런 제 경험이라면 아무렇지 않게 클래식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p.s

취향은 바뀌지 않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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