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걸어요.
자기 전에 마음이 허하다거나 오늘이 만족스럽지 않을 것 같다면 우리 나와서 조금 걸어봐요.
이봐요. 4월은 산책의 계절이에요. 기분 좋은 바람이 부니 어디를 거닐어도 기분이 나아진다고요.
낮에는 당신, 열심히 치열하게 시간을 보냈으니 우리 밤에는 조용히 몇 발자국 걸어봐요.
좋은 노래를 듣는다면 좋겠죠. 누군가와 대화를 한다면 더더욱이요.
이왕이면 차들이 별로 없는 곳이 좋겠어요. 도시와 숲의 경계선이 아마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곳일 거예요.
봄비가 왔네요.
떨어진 꽃잎을 보며 작은 한탄도 해보고 예쁜 나무 밑에서 고개를 올려 사진도 찍어봐요. 가끔은 밤에 보는 꽃이 더 예쁘거든요. 땅은 조금 젖어있고 벤치에도 물기가 있으니 어딘가 앉을 수도 없어요. 아직 힘이 들지 않았다면 조금 더 걷기로 해요. 내일이 되기엔 시간이 너무 이르잖아요.
걷다 보니 여러 생각이 들어요. 예를 들면 먹고 싶은 음식이라던가 사고 싶었던 옷이요. 어딘가 있는 미운 사람의 얼굴도 떠오르고 좋아하는 사람이 생각나기도 해요. 또 갑자기 누군갈 용서하게 되고 짧은 후회도 드네요. 마음이 조금 울적해졌지만 그래도 버텨야지. 참아야지. 하면서 당신은 어디론갈 향하고 있어요.
그래도 이런 시간을 갖음에 조금은 기쁜 마음이 들기도 해요. 아마도 조금 퍽퍽한 생활을 보낸 게 이유겠죠.
삶의 낙이 불투명하고 먼 목표를 향하다 보니 그런 것 같아요. 윤기 나는 생활은 환경이 받쳐주지 않는 이상 힘이 들기 마련이죠. 정했던 목표가 뚜렷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무엇이든 한 번에 그 모양이 나오는 건 없거든요.
하나둘씩 조각들이 모이고 뭉툭한 것들을 조금씩 잘라내 버리면 당신이 가슴 깊이 원했던 것들을 알게 되는 순간이 올 거예요. 사실, 그래서 이 밤에 걷자고 한 거예요.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어떤 것들이 생각나거든요. 자질구레하다고 생각해도 좋아요. 하지만 그것들은 조각조각 당신의 인생을 만들어주고 있어요. 그러니까 아무렴 괜찮다고요. 우울해져도 좋고 기분이 나아진다면 내일 또 걸을지도 모르잖아요. 밤은 밝지 않아서, 주변에 것들이 잘 보이지 않아서 가까이는 있는 것들을 바라보게 해요. 거기에 속해있는 건 나무도 아니고 주홍빛 전봇대도 아니에요. 가까이 있는 건 바로 나 자신이니까요.
그러고 보면 저는 맨날 나 자신을 바라보라고 누군가에게 말해요.
그런 자격이 없음에도 이러는 이유는 이 글의 첫 번째 독자가 바로 저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오늘은 조금 걸으려고 합니다.
비가 와도 좋으니 아무 곳이나 걸어보려고 해요.
그러니까 당신도 밤에 좀 걸어요.
p.s
저는 오늘 3시간이나 걸었답니다. 헥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