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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팡 Nov 24. 2021

대칭

수학 에세이

사랑의 기원

우리는 왜 누군가를 사랑하는가? 플라톤의 <향연>에서 아리스토파네스가 전한 이야기에 따르면, 그건 인간의 본래 모습이 지금과 달랐기 때문이다. 태곳적 인간은 팔과 다리가 네 개씩 있었고, 몸통은 눈사람처럼 둥글었다. 어느 날 하늘을 올려다본 인간은 저 높은 곳까지 다달아 신을 공격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래서 커다란 산을 쌓아 사다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를 지켜보던 제우스는 그 건방진 모습에 화가 치밀은 나머지, 인간을 둘로 갈라버렸다. 조각난 인간은 그날부터 잃어버린 반쪽을 찾아다닌다. 사랑은 본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시작되었다.

닐 버튼- 사랑의 기원 (https://www.psychologytoday.com/us/blog/hide-and-seek/201204/the-origins-love)

사랑하는 인간이 되찾고자 하는 그 본성이란 과연 무엇일까? 물리학자 헤르만 바일은 이 이야기에서 본래 인간의 둥글둥글하고 대칭적인 외양에 주목한다. 이 모습이 인간의 본성을 상징한다면, 우리가 사랑을 통해 희망하는 것은 한마디로 '대칭성'이 아닐까? 일반적으로 대칭이란 똑같은 두 부분을 가진 상태를 뜻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도의 타지마할이나 잠자리의 날개에는 대칭성이 있다. 한 모양을 계속 덧붙인 무늬를 대칭적이라 부르기도 한다. 가령, 육각형이 반복적으로 배열되어 생긴 거미줄과 벌집은 대칭적이다. 대칭은 안정감을 준다. 잠자리는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추락하지 않고, 벌집은 생각보다 튼튼하다. 그렇기 때문에 생물학자들은 대칭성이 진화의 산물일 수 있다고 얘기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대칭적인 얼굴을 가진 남성은 정자가 건강하고 여성에게 사랑받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대칭성을 갖기 위해 사랑할 뿐만 아니라, 대칭성을 가진 것을 사랑하도록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대칭성을 '힘'의 상징으로 읽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랑을 통해 갈망하는 건 결국 힘이다. 이 관점에서 아리스토파네스의 신화는 도합 여덟 개의 팔과 다리로 데굴데굴 굴러다니던 인간이 대칭성(힘)을 잃고 두 발로 서게 되는 이야기다. 이야기의 뒷부분에 제우스는 무시무시한 경고를 하기도 했다. "계속 선을 넘으면 너희를 또다시 반으로 잘라 스카이 콩콩으로 만들어 버릴 테다!" 그래서 인간은 사랑을 하면서도 신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스 신화에는 비슷한 이야기가 또 있다. 오래전 마르시아스라는 괴물이 땅에 떨어진 피리를 발견했다. 주워서 숨을 불어넣자 아름다운 소리가 흘렀고, 빵 냄새를 맡은 비둘기처럼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혹시, 나, 음악의 천재?" 마르시아스는 바로 음악의 신 아폴론에게 도전했다. 며칠 뒤, 음악 대장을 가리는 대결이 펼쳐졌다. 그런데 승부는 쉽게 나지 않았다. 이에 아폴론은 악기를 거꾸로 들고 연주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그렇게 성사된 이차전에서 아폴론은 악기 '리라'를 뒤집어 다시 아름다운 연주를 했지만, 마르시아스는 피리를 거꾸로 들고 소리를 내지 못했다. 비대칭적인 피리는 대칭적인 리라에게 지고 말았고, 마르시아스는 피부가 벗겨져 죽는다. 피리를 든 마르시아스는 힘(대칭성) 없는 존재였다.


사랑에는 방향성이 있다. 사랑의 '짝대기'의 기원까지 이해하려면, 아리스토파네스의 신화에서 인간의 성(性)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는지도 확인해 봐야 한다. "먼 옛날 인간의 성별에는 여성(여-여 인간)과 남성(남-남 인간)만 있던 게 아니라네. 남성과 여성을 합친 세 번째 성별(남-여 인간)인 '남녀추니'도 있었다네." 이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여자와 여자 혹은 남자와 남자의 결합체였던 인간은 쪼개진 뒤 동성을 사랑한다. 남녀추니의 일부였다면 헤어진 뒤 이성애자가 된다. 이 신화에서는, 나의 성별은 원래 남녀추니였습니다, 라는 말과, 나는 이성애자입니다, 라는 말이 논리적으로 동일하다. 즉 성별과 성적 지향이 서로를 거울처럼 비춘다. 여기에는 대칭이 있다.


재밌긴 하지만, 현실 속 인간의 복잡한 성적 지향을 드러내기에는 부족한 설명이다. 책 <젠더는 패러디다>에서 조현준이 쓴 글을 천천히 읽어 보자.

예컨대 한 남성을 사랑하던 여장남성이 꾸준히 자신을 여성으로 동일시한 결과,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했는데 수술 직후부터 남성보다는 여성을 좋아하게 되었다면, 그런데 그 여성이 알고 보니 여장한 남성이었다면 이때 섹슈얼리티는 기존의 동성애/이성애라는 대립 구도로 설명될 수 없는 복잡하고 가변적인 구성물이 된다(p.35).


이 예시는 적어도 두 가지를 알려준다. 첫째, 성별과 성적 지향은 변화무쌍하다. 젠더 이론가 주디스 버틀러는 인간이 태어날 때 특정 성별을 타고난다는 생각은 착각이며, 성별은 그저 반복된 행위를 통해서 사회적으로 만들어질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둘째, 성별이 성적 지향의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 이 둘은 서로에게 거울이 아니다. 따라서 인간의 성(性)을 표현하는 그림을 그린다면, 어딘가에 비대칭적 요소를 집어넣는 것도 방법이다.


지금까지 아리스토파네스의 대칭 이야기를 중심으로 사랑의 '이론'을 살펴봤다. 하지만, 에리히 프롬이 말했듯이, 사랑을 하려면 이론 못지않게 '실천'이 필요하다. 사랑의 실천까지 대칭과 연관 지어 설명할 수 있을까?


가공할 만한 달빛

결혼한 두 사람이 있다면 이들은 서로를 '부부'라고 부르지 않는다. 부부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일컫는 말이다. 18세기 수학자 르장드르에게는 대칭 또한 대상이 아닌 관계의 특징이었다. 따라서 그는 특정 도형을 대칭적이라 하는 대신 한 쌍의 도형이 대칭 관계에 있다고 말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래 두 삼각형은 서로 대칭 관계이다. 2차원 도형의 대칭 관계를 파악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서로 포개지는지 시험해보면 된다. 왼쪽 삼각형을 살짝 들어 뒤집으면 오른쪽 삼각형과 정확히 겹쳐 놓을 수 있다. 성공! 이때, 뒤집기는 3차원 공간에서 이루어졌다. 2차원 평면 위에 있는 두 도형이 서로 대칭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그보다 높은 차원의 조작을 이용한 것이다.

그렇다면, 3차원 입체 도형이 서로 대칭인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3차원 물리 세계에서는 아래의 왼쪽 삼각뿔을 오른쪽 삼각뿔에 꼭 맞게 변형하는 방법을 찾을 수 없다. 그러려면 4차원 세계의 조작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르장드르는 새로운 접근을 떠올렸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로 대칭에 의해 어떻게 조화, 평형, 균형, 안정성이 생겨나는지에 집중했다면, 르장드르가 주목한 것은 대칭이 무엇을 뒤틀고 망가뜨리는지였다. 그에 따르면, 대칭 관계의 본질은 어긋나버린 '순서'다. 아래의 두 뿔에서 옆면의 순서를 살펴보자. 시계 방향을 기준으로, 왼쪽은 ① 다음 ②가 나타나지만, 오른쪽은 ② 다음 ①이 나타난다. 대칭이란 이처럼 똑같은 구성품이 순서만 바뀌어 있는 두 대상 사이의 관계다.

르장드르 이후에는 아예 대칭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집단이 생겼다. 이들의 연구 대상은 '군(group)'이다. 책 <사랑과 수학>에 나오는 설명을 따라가면 군이 무엇인지 대략 알 수 있다. 둥근 식탁과 네모난 식탁 중에 무엇이 '더' 대칭적일까? 저자는 둥근 식탁이라 말한다. 둥근 식탁은 어떻게 돌려도 같은 모습이지만 네모난 식탁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적절히 돌리면 네모난 식탁의 모습도 그대로다. 정확히 반 바퀴만 회전시키면 식탁을 돌린 티가 나지 않는다. 군 연구자들은 '네모난 식탁 반 바퀴 돌리기' 같이 '모습이 바뀌지 않는 짓'을 '대칭'이라 하고, 어떤 대상에 대한 대칭을 일부 또는 모두 모은 것을 '군'이라 부른다. 즉 군 연구자에게 대칭은 무언가의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그것에 대한 특별한 '행위'다. 이들에게 대칭은 정적이기보다는 동적인 개념이다.

왼쪽은 원형 식탁. 오른쪽은 정사각형 식탁 (에드워드 프렌켈-사랑과 수학, p. 16)

군을 연구하던 학자들은 가장 단순하고 기본적인 군만을 선별해서 대칭성의 '주기율표'를 작성하는 프로젝트를 벌였다. 이 프로젝트의 이름은 '아틀라스'다. 그리스 신화에서 아틀라스는 하늘을 떠받들고 있는 거인이다. 아틀라스가 지탱하는 밤하늘에서 숨겨진 별을 찾고 'TRES-4' 따위의 이름을 붙이는 천문학자처럼, 프로젝트 아틀라스의 연구원들은 알려지지 않은 군을 발굴하고 'Fi24 군' 등의 이름을 붙였다. 8차원에 있는 'E8 군'을 2차원에 표현한 그림을 보면, 이 연구원들이 정말로 별을 찾아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참고로, 프로젝트 아틀라스는 성공적으로 종료되었다. 연구 결과, 가장 기본적인 군은 18개의 범주와 이 범주에 해당하지 않는 예외 사례 26개로 분류될 수 있었다. 인류는 현재 대칭성의 주기율표를 갖고 있다.

E8 군을 시각화한 그림

주기율표에 적힌 군 중에서 가장 유명한 군은 아마 피셔와 그리스 박사가 찾아낸 'MONSTER 군'일 것이다. 몬스터 군은 콘웨이와 노턴이라는 수학자로 인해 유명해졌다. 이들은 몬스터 군과 타원 보형 함수 사이의 연관성을 밝히는 논문을 쓰고 제목을 '가공할 만한 달빛(monstrous moonshine)'이라고 지었다. 콘웨이는 연구 중 "마치 춤추는 아일랜드 레프러콘 요정에게서 신비한 달빛이 비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이런 제목을 달았다고 밝혔는데, 아주 당혹스러운 설명이다. 레프... 뭐라고? 달은 사실 빛을 방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달빛이란 개념은 특이하다. 달은 태양의 빛을 반사시킴으로써 반짝일 수 있다. 간단히 말해, 달빛은 대칭의 결과다. 이렇게 보면 '가공할 만한 달빛'은 대칭에 관한 연구물의 제목으로 어울리는 것도 같다.


달이 빛나는 밤에

깊은 저녁 달빛이 내리면 사랑할 준비를 해야 한다. 일본의 어느 소설가가 "사랑해요"를 "달이 참 밝네요"라고 번역했다는 설도 있듯이, 애인이 산책 중 오늘따라 달이 밝다고 말한다면 그건 더 깊은 뜻을 담은 표현일 수 있다. 그런 애인에게, "그러게요, 가공할 만한 달빛이네요"라고 대답하는 것은 어쩐지 부족하다. 그렇다고, "당신이 원한다면 저 달을 따러 가겠습니다"라고 답하는 건 또 과한 면이 있다. 영화 <게임의 규칙>에서 옥타브의 대답, "멋진 밤이에요. 달이 떴어요."는 어떨까? 아니면 투르게네프의 소설 <짝사랑>의 주인공처럼 "죽어도 좋아요."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 최고의 답을 찾을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속마음을 변형 없이 옮긴 대답, 그러니까 속마음을 잘 대칭하는 대답이 필요한 순간들은 있다.









* "Facial attractiveness in men provides clues to semen quality", C. Soler, M. Núñez, R. Gutiérrez, J. Núñez, P. Medina, M. Sancho, J. Álvarez and A. Núñez, journal Evolution and Human Behavior, May 2003, vol. 24, issue 3, pp. 199-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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