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마라 위험하다"란 말이 더 위험합니다

by 태준열

나의 어린 시절은 꽤나 유복했다.

아버지는 당시 운수사업을 하셨고 어머니는 우리 형제들을 잘 돌봐 주셨다. 강남 아파트에 살았으며 8 학군으로 일컬어지는, 명문대를 많이 간다는 고등학교에 다니기도 했다. 어린 시절 기억을 돌이켜 보면 나름 풍족하고 행복한 시절을 보내지 않았나라고 생각한다. 나는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게 해 준 부모님께 여전히 감사해 하고 있다.


유복한 삶 건너편에 반대급부의 삶도 있었다.

사업을 하신 아버지, 빈틈이 없었던(물론 이런 아버지의 면모를 존경하긴 했지만) 아버지는 자식들을 너무 사랑하셔서 그랬는지 실패할 수 없는, 답이 정해진 공식과 같은 인생의 길을 제시해 주셨다. 항상 아버지의 말씀을 따라야 했고 수긍해야만 했다. 좋은 학교 들어가서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회사에 취직하고 좋은 여자 만나서 애들 둘 정도 낳고 회사에 열심히 다녀서 임원이 되는 것, 그리고 회사에 오랫동안 다니는 것... 당신은 이런 삶의 패턴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셨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살기를 원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부모님이 가두리 쳐주신 올바른 길, 안전한 길, 공식과도 같은 길을 가끔 벗어나려 했다.


어쩌면 나는 연극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당시에는 배우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여지없이 걱정을 하셨고 "위험하다" "안된다" "다시 생각해 봐라"... 이런 말씀으로 나의 흥분된 마음과 생각을 안전한 궤도 안으로 돌려놓으셨다. 나는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아들이었고 꽤나 착한 아들이었다. 정말 평범한 삶을 살았다. 명문대는 아니었지만 평범한 대학에 들어갔고 졸업 전에 좋은 회사에 취업했고 몇 번의 이직을 거치며 20년이 넘는 회사생활을 했다. 연봉도 나쁘지 않았다. 결혼도 적당할 때 했고 아이도 둘을 낳았다. 나는 부모님이 완전 만족해하는 삶의 궤적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안정된 인생을 살았던 것 같다.


그게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불안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보다 적당히 안정되고 적당히 행복하고 적당히 꿈이 있는 인생이 좋겠지. 안전한 인생의 궤적을 그린다고 그게 잘못된 삶은 아니다. 오히려 그 성실함에 박수를 쳐 줘야 하는 일 아닌가.


하지만 왠지 모를 아쉬움이 가슴 한편에 남아있다.

좀 더 일찍, 어릴 때 불확실하고 예측할 수 없으나 내 마음이 정말 하고 싶다고 말하는, 요동치고 있는 그런 일을 시도해봤으면 어땠을까. 이런 생각이 여전히 마음 구석 한편에 자리 잡고 있다. 물론 이것이 인생의 가두리를 쳐 주신 부모님에 대한 원망은 아니다. 지나간 선택에 대한 후회도 아니다. 나는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니까.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으니까.


중요한 건 나는 가두리에 저항하는 것을 스스로 포기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옳든 옳지 않든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똑바로 보려 하지 않았다. 애써 외면하고 자기 합리화를 했던 것 같다. 가두리를 벗어나면 부모님이 실망하지 않을까? 마음 아프시지 않을까 이런 걱정을 했고 그만큼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행복한 아들의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 반드시 하나의 방법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내 생각을 지키기 위해 저항했어야 했다. 부모님이 만들어준 안전지대(safety zone)를 벗어나 나만의 생각을 스스로 할 수 있는 힘을 길렀어야 했다.




나는 여전히 새로운 시도에 두려움이 있다. 안전함의 궤도를 벗어나는데 두려움이 크다.

불확실성을 싫어해서 분석을 좋아하고 예측하는 것을 좋아한다. 리스크를 헷지 하는 것이다. 뭐 중년의 나이에는 당연한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누구나 그런 거 아닌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그랬다. 정말 하고 싶은 것을 "불확실성"이란 이름으로 시도하지 못했고, 좋아하는 일이라도 성과가 빨리 보이지 않으면 "효과성 저하"라는 이름으로 뒤돌아서기도 했다. 위험이 감지되면 계산하고 분석하고 계획하고 대비했다. 조금만 더 하면 임계점에 다다를 텐데 다칠 수 있다는 이유로 뒷걸음치기도 했다. 물론 이 모든 일들이 어느 정도 안정된 인생을 사는데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었지만....(긍정성과 부정성이 함께 존재했던 것 같다)

이제는 리스크를 헷지 하려는 나의 습성을 좀 던져버리고 싶다.
사업계획이니 뭐니 분석과 거창한 비전에 목숨 걸지 싶지 않다.
하고 싶은 일이 생각나면 그냥 하는 것이다. 영감이 떠오르면 당장 실천하는 것이다. 하다 보면 거미줄처럼 서로 연결되는 날이 있겠지...


이렇게 하지 않으면 더 이상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없을 것만 같다.

참 이상한 게 나이를 먹고 있음에도 점점 하고 싶은 일들이 생각나고 도전하고 싶은 일들이 떠오르는데 막바로 행동에 옮겨지지는 않는다. 그동안 작지만 내가 이룬 성취들을 돌이켜보면 깊게 고민하고 계획을 세워서 된 것은 하나도 없는데도 말이다. 2021년, 2022년 연달아 책을 성공적으로 기획 출간할 수 있었던 것은 그저 내 블로그와 브런치에 글을 쓰고 생각을 나누고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을 뿐, 엄청 대단한 계획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최근 <빠르게 실패하기>라는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도 나와 같이 생각이 많고 조심스럽고 복잡한 사람은 무조건 행동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분노의 포도>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존 스타인백이 한 말이다.

"500페이지를 써야 한다는 황량한 불가능에 직면했을 때, 패배의식이 밀려왔고 나는 결코 그것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 다음 나는 점차적으로 한 페이지를 쓰고 다음 페이지를 썼습니다. 하루치 분량을 끝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루의 일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 빠르게 실패하기


계획적이고 분석적이면서도 돌다리를 두드려 보는 성격이 어린 시절 부모님이 만들어 주신 인생의 가두리 때문에 생긴 습성이라 하더라도 이제는 과감히 벗어나 나만의 바다에 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가두리를 벗어나는데 늦은 때란 없다. 무언가 용기 있게 시도하는데 늦은 때란 없다. 잘했던 못했던 빨랐던 늦었던 그것은 모두 내 인생이기 때문이다. 물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항상 있다. 하지만 그동안 내가 이룬 성취를 생각해 보면 큰 계획 없이 진심을 다 해 그대그때 했던 행동들이 뭔가와 연결되어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을 부정할 순 없다. 그러한 결과는 내가 결코 예측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생각과 계획이 언제나 결과를 리드하는 것은 아니다.


생각이 행동을 낳기도 하지만 행동하면 생각이 난다.


마지막으로...

나는 내 아버지만큼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딱 한 가지는 반대로 하려 한다. 비록 이게 자식을 양육하는 좋은 방법일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올바른 길"을 만들어서 내 자식들에게 "떠 먹여" 주지는 않을 것이다. 아이들이 내가 생각하는 올바른 길을 벗어나는 순간 나 또한 "하지 마라 위험하다"라는 말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헤매는 자식을 보며 가끔 답답해 하긴 하겠지만 해답은 스스로 찾길 바란다.


그러니 인생의 공식과도 같은 가두리는 이제 없다. 다만 부모의 생각이 아니라 내 생각을 할 수 있는 아이들로 자라나길 바랄 뿐이다.


그래야 진짜 인생의 위험이 다가왔을 때 벗어날 수 있는 힘이 생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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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준열 (taejy@achvmanaging.com)

리더십 코치/컨설턴트

25년 동안 음반회사, IT 대기업, 반도체 중견기업, 소비재 기업 등 다양한 기업에서 인사, 조직개발 업무를 경험하였으며 15년 동안 인사팀장/조직 개발실장을 맡아왔다. 현재는 리더십 개발기관 Achieve. Lab의 대표이며 팀장 리더십, 성과관리 등 강의와 팀장 코칭, 리더십 개발 컨설팅, 조직개발 활동 등을 활발히 이어 나가고 있다. 저서로는 <어느 날 대표님이 팀장 한번 맡아보라고 말했다><Synergy Trigger><존버 정신>이 있다.



태준열 리더십 코치의 신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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