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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준열 Nov 19. 2022

비교인 듯 비교 아닌 비교 같은 말

인생의 가두리 벗어나기

친구 아들이 이번에 전교 10등 안에 들었다네
김 사장 아들은 이번에 서울대 경영학과에 합격했데! 너무 좋겠어
순철이가 이번에 SK그룹에 입사를 했다네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난리야 난리,
친구 아들이 의사인데 이번에 강남에서 개업을 했다지 뭐냐
지 부모한테 용돈을 자주 주더라고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청소년 때부터 저녁식사 시간이 달갑지 않았다.

부모님은 식사시간에 대부분 남의 집 자식 자랑이나 친척이 잘된 이야기를 하셨다. 그럴 때마다 "아빠 엄마, 나도 그만큼은 아니지만 잘하고 있어요. 나도 공부 못하진 않아요, 더 열심히 하면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어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말이 나오지 않았다. 대신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가슴에 뭔가 꽂히는 그런 느낌? 그게 뭐였는지 몰랐지만 아무튼 아팠다. "난 부모님에게 자랑스러운 자식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형과 동생도 마찬가지였으리라. 나중에 내가 좀 크고 성인이 되었을 때 부모님께 한 번쯤 말씀드려야겠다라고 생각했고 난 그 생각을 실천에 옮겼다.


"아버지, 어머니. 저도 열심히 살고 있어요. 그 사람 만큼은 아니겠지만 저도 잘 하고 있다고요. 이제 다른 사람 이야기는 좀 안 했으면 좋겠어요. 너무 오랫동안 들어왔고 이제 잘했든 못했든 자식을 좀 칭찬해 주면 안 될까요?" "다른 사람들이랑 계속 비교당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파요"


"어? 그게 무슨 말이냐... 난 비교한 적 없는데.... 난 그저 친구가 하도 자식 자랑을 해서 기분이 좀 상했고 그냥 단순히 그랬다는 걸 말하는 건데? 난 너와 다른 사람을 비교한 적 없다"


부모님은 비교하는 건 아니라고 항상 말씀하셨다.

그저 그 사람들이 좋겠다고 말한 거였고, 부러웠기 때문에 그냥 그 이야기를 한거였다고 말씀하셨다. 그래, 내가 너무 예민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내가 성공하지 못했다고 생각 했거나...자격지심이었나? 부자가 아니라서? 아무튼 내가 비교를 당한 것인지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것을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인 건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당시에 마음이 아팠던 것 만은 분명하다.


이상하게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큰 슬픔 속에 있던 내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복잡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 동안은 "성공해서 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렸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한거야.. 죄송해요 아버지.."이런 생각이 나를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생각보다 왜 그러셨을까... 왜 그렇게 나와 형제들을 보듬어 주시지 않았을까.. 잘 안되고 있어도 "잘될 거야, 넌 할 수 있어" 이렇게 말씀해 주시지 않았을까.. 왜 남에 자식이 잘한 것은 부럽고 내 자식이 잘한 것은 그리 칭찬할 만한 것이 아니었을까...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부모님을 원망하는 것은 아니다.

부모님이 정말로 자식을 남과 비교하고 싶은건 아니었을 것이다. 누가, 어느 부모가 자기 자식을 일부러 남과 비교하여 마음을 아프게 하겠는가. 그런 부모는 없다. 하지만 당신이 하시는 말속에 자식의 아픔이 함께 빨려 들어가고 있다는 것은 모르셨을 것이다. 비교인 듯 비교 아닌 비교 같은 말속에 자식들이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는 까맣게 모르셨을 것이다.


나는 성인이 되고 회사에 다니는 동안 "성취"라는 말에 꽂히게 되었다.

몇 번의 실패와 몇 번의 성공을 경험하면서 나는 불도저 같은 사람이 되었다. 어떤 상황이 와도 어떤 도전이 와도 나는 물러서지 않았고 응전을 하였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였다. 잘하고 싶었고 성공하고 싶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 스스로에게는 정말 엄격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성취와 성공"에 꽂히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 아니 부모님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됐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엄마 친구 아들"이 되어 그들의 식탁에서 이야깃거리가 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되는 것이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는 거니까.


나는 이제야 나도 몰랐던, 아니 애써 외면하고 있던 내 생각의 근원과 뿌리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그토록 무엇인가에 달려들었던 이유, 그리고 성공을 열망했던 이유는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 부모님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 말이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어 하니까. 그리고 그것이 나를 움직이는 동력이 되기도 하니까.

하지만 타인의 인정만이 나를 움직이는 유일한 이유가 되어선 안된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어떤 의미로는 누군가에게, 무엇인가에게 종속된 마음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니 학창 시절에 공부를 열심히 했던 이유도 부모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난 그게 좋았으니까. 그게 나를 위한 게 아니라도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면 나도 엄친아가 될 수 있었으니 말이다(친구분들에게 내 자랑을 하시면서 우쭐해 할 수 있으니까). 팀장으로 승진했을 때도 나는 부모님께 내가 이렇게 자랑스런 아들이라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부모님께 인정받고 싶었던 정신적으로 완전히 독립하지 못했던 둘째 아들이었다. 나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어쩌면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마음은 "내가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는지" 알고 싶은 기회를 앗아가 버리는건지도 모르겠다. 애시당초 열망의 초점이 나에게 없었으니까.

고의는 아니었지만 부모님이 하셨던 비교 아닌 비교는 우리(가족)도 모르는 사이에 "프레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내 인생"이 아닌 "부모님 아들로서의 인생" 말이다.

누군가의 행복과 기대를 위한 것이 아닌 내 행복을 위한 , 나의 꿈을 생각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고 그것을 하는 행복한 나를 만나는 것. 그것이 부지불식간에 만들어진 인생의 프레임, 누군가가 만든 인생의 가두리에서 벗어나는 가장 빠른 길이 아닐까.


세월이 흐른 만큼 연륜도 함께 쌓인다고 한다. 조금은 더 현명해 질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만큼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알지 못했던 것 일수도 있다. 내 생각의 근원과 뿌리를 찾아보지 않으면 내가 지금껏 해 왔던 생각이 내 생각이 아닐 수도 있으니 말이다.



아들이 어제 수능을 봤다. 수시를 먼저 봤지만 그리 해피한 상황은 아닌 것 같아 아들은 좀 의기소침해 있었다. 나는 아들과 최고로 멋진 식당에 가서 맛있는 식사를 했다.


"아들, 고생했다. 수고 많았어", 잘 될 거야 마지막 실기시험 남은 거 최선을 다 해 보자. 너 스스로를 위해 모든 최선을 다 했으니까 그걸로 됐어. 아빠는 네가 언제나 최선을 다 한다는 걸 알고 있어. 실기 끝나면 아빠하고 소주 한잔 하자!"


"잘 했어 그리고 잘 할거야!!"

나는 아들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나는 빈말이라도 다른 아이들에 대해 물어보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아들이 보았을 때 "비교인 듯 비교 아닌 비교 같은" 말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아빠를 기쁘게 하는 착한 아들이 아니라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 좋아하는 일을 찾고 그것에 매진하여 자신을 기쁘게 하는 그런 아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Photo by Sasha Freemind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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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준열 (taejy@achvmanaging.com)

리더십 코치/컨설턴트

25년 동안 음반회사, IT 대기업, 반도체 중견기업, 소비재 기업 등 다양한 기업에서 인사, 조직개발 업무를 경험하였으며 15년 동안 인사팀장/조직 개발실장을 맡아왔다. 현재는 리더십 개발기관 Achieve. Lab의 대표이며 팀장 리더십, 성과관리 등 강의와 팀장 코칭, 리더십 개발 컨설팅, 조직개발 활동 등을 활발히 이어 나가고 있다. 저서로는 <어느 날 대표님이 팀장 한번 맡아보라고 말했다><Synergy Trigger><존버 정신>이 있다.


태준열 리더십코치의 신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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