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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준열 Dec 03. 2022

오래된 친구는 과연 친구일까?

인생의 가두리 벗어나기

나는 오래된 친구들이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그리고 대학교시절을 함께보낸 친구들이다. 물론 자주 연락하고 만나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그렇듯 중년이 되면 먹고살기 바쁜 나날을 보내니까 말이다. 글쎄, 은퇴를 하면 좀 시간이 날까? 아무튼 친구들을 만나서 치맥이라도 하면 그날은 당연히 즐겁고 유쾌한 날이다. 갑자기 시공간이 뒤엉키며 나를 어리고 철없던 때로 데려가니 말이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보면 옛 이야기에 여념이 없다. 짝사랑했던 이야기, 연애 이야기, 황당했던 에피소드 . 때로는 치명적이어서 입을 막아야 할 정도로 창피한 이야깃거리도 있다. 나는 옛 친구들을 만나면 주로 당하는(?) 쪽이다. 물론 나도 당하는걸 즐긴다. 어린 시절이 하도 액티브해서 나에 대한 에피소드가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옛 친구들을 만나면 악의 없는 공격과 수비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유난히 딱 한 친구에게 서운한 적이 있었다.


나는 옛 친구를 만나면 무조건 옛날이야기만 하는 것이 싫었다. 그것은 "친구"라기보다 추억을 함께 간직하고 있는 "학우"느낌이 강했기 때문이다. 학우는 "함께 공부하는 벗"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내 느낌에는 뭐라 할까... 그냥 과거에 머물러 있는 "기억"같은 것이었다(그냥 내 느낌이다^^).

어쩌다 나의 근황과 걱정거리, 앞으로의 미래, 생각 등을 말했을 때 그는 함께 공감하면서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아 했다. 뭐라할까..계속 과거에 머물러 있고싶은 느낌? 마치 일상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과거의 웃음거리에서 치유받고 싶은 사람처럼 말이다.

"야! 너는 나를 못 벗어나. 내가 너 학교 다닐 때를 아는데? 너는 OOO 사람이야. 너는 OOO 하게 되어 있어. 내기할까?"

"아 참나 난 예전하고 많이 달라졌어 인마, 지금 강산이 몇 번이나 변했는데 나라고 변하지 않았겠냐? 생각도 달라지고 환경도 달라지고 모든 게 달라졌지. 지금 내가 그래. 너도 그렇지 않냐?


대화가 몇 번 이어지고 우리는 잠시 침묵했다. 어색했기 때문이었다(어색할 땐 그냥 건배다.ㅎ)




친구가 알고있는 나는 내가 맞을까?


어쩌면 내가 별난 사람일 수도 있겠다. 그냥 그렇게 흘러가듯 친구를 만나고 웃고 오면 되지 뭘 그렇게 생각을 하는지.... 그 친구 입장에서는 그냥 재미있는 친구 만나서 치맥 하고 웃고 떠들고 옛 추억에 잠긴 채 집에 돌아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날 엄청 피곤한 일이 있었는지도..


문득 런 생각이 들었다. 서로 사는 게 바빠서 자주 못 보니 현재모습은 공유된게 없구나... 그러니 당연히 이해도 떨어지고 지금의 모습은 오히려 어색한 . 우린 과거에 머물러 있는 서랍 속의 친구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한편으론 이해가 되었다.

뭐.... 별거 있나.


반면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나도  친구도 바쁜 일상이지만 그래도 시간을 좀 더  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면 옛날만큼은 아니겠지만 현재를 함께 공유할 수 있을 것이고, 예전의 모습이 아니라 지금의 너와 나로서 이해할 것이고, 공감할 것이고.. 렇게 함께 늙어간다는 생각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나만의 생각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생각하는 "친구"의 정의를 그 친구한테 강요했던 것일까?


아무튼 난 그날 집에 돌아오면서 좀 착잡했다

평소 오래된 친구들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뿌듯하기도 했는데 친구들은 지금의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물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친구라기보다 어쩌다 한 번씩 꺼내보는 서랍속의 학우였다.


갑자기 외로움이 밀려왔다. 어쩌면 그 친구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자꾸 내가 과거 속에서 나오려 하니 말이다.


이제는 오래된 친구를 친구로서 놓아주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가슴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던 그 친구들을 조금씩 놓아주는 연습 말이다. 그래야 내 마음이 좀 편해질 것 같다(편하게 볼 것 같기도 하고..)




어쩌다 한 번씩 보는 사촌보다 지금 나와 현재를 함께하는 이웃사촌이 더 가깝듯 친구도 오래된 친구라고 해서 모두 진짜 친구는 아닌 것 같다.

오래된 진짜 친구는 과거 어느 시점에서의 현재가 멈춰버린 사람이 아니라 지금까지도 서로의 현재가 쌓이며 숙성되어 가는 사람이 아닐까?



Photo by Hannah Rodrigo on Unsplash

Photo by kazuend on Unsplash



태준열 (taejy@achvmanaging.com)

리더십 코치/컨설턴트

25년 동안 음반회사, IT 대기업, 반도체 중견기업, 소비재 기업 등 다양한 기업에서 인사, 조직개발 업무를 경험하였으며 15년 동안 인사팀장/조직 개발실장을 맡아왔다. 현재는 리더십 개발기관 Achieve. Lab의 대표이며 팀장 리더십, 성과관리 등 강의와 팀장 코칭, 리더십 개발 컨설팅, 조직개발 활동 등을 활발히 이어 나가고 있다. 저서로는 <어느 날 대표님이 팀장 한번 맡아보라고 말했다><Synergy Trigger><존버 정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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