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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준열 May 29. 2023

아버지를 사랑했지만 아버지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

인생의 가두리 벗어나기

요즘은 갑작스레 예고도 없이 그렇게 아버지가 생각난다.


작년 8월, 오늘 같이 비가 추적추적 내릴 때 아버지는 우리 곁을 떠나셨다. 참 이상한 게 벌써 1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아직도 울컥할 때가 있다. 이제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어떨 때는 아버지와 함께 보낸 마지막 한 달이 불현듯 떠오른다. 어제는 버스를 타고 오다가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면서 흐르는 눈물을 닦았지만 한번 터진 눈물은 멈출 줄 몰랐다. 난 결국 고개를 숙이고 흐느끼고 말았다. 다행히 버스 맨 뒷줄에 앉아서 나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더 이상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아련하게 추억도 떠오르고 눈물이 흐르기도 한다.

한 가지가 더 있는데, 돌아가신 아버지와 나 그리고 형제들과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잘 모르겠지만 그 마음은 복합적이다. 감사함과 추억, 그리움 그리고 섭섭함... 아쉬움...

아버지가 계셨을 때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돌아가시고 나니 조금씩 생각이 난다. 아버지와 함께 있었던 시간들, 장면들... 안 좋았던 기억, 좋았던 기억... 이 모든 것들이 자연스레 정리가 되는 것 같다. 아마도 이젠 마음을 내려놓고 아버지를 정말로 떠나보내려는 나도 모르는 나의 마음 인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어릴 적부터 부모에게 받은 의식적, 무의식적  영향력 속에 살고 있다.

우리 아이들 또한 그럴 것이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사람이 진정으로 독립하는 시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 또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가 아닐까? 심지어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4050이라도 말이다. 그동안 내 생각이 내 생각이라고 생각했고 내 신념이 내가 만들어 낸 신념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건 내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어린 시절부터 청년시절을 거쳐 지금까지, 어쩌면 내 잠재의식 속에 각인된 부모님들의 습성과 생각, 신념이 아니었을까. 지금껏 나는 나로서 살아왔지만 완벽한 나로서는 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말이다.


나는 진정으로 이해하고 싶어졌다.

한 인간으로서의 아버지를 이해하고 싶었고 나에게 영향을 준 아버지의 부정성과 긍정성 모두를 이해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서야 나는 한 발자국 떨어져 객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모든 것이 투명해지고 이해가 되어 벗어날 것은 벗어나고 추억할 것은 추억하게 되는, 보다 성숙한 내가 될 것 같았다.


아버지는 우리를 사랑하셨지만 그 방식은 "걱정과 두려움"이었다.

걱정과 두려움으로 우리 어린 시절을 보호하셨다. 당신이 어렵고 힘들게 살아오셨기에 자식들에 대한 사랑은 무척 보호적이고 관리적이었다. 우리는 부족함 없는 중산층으로 살았지만 동시에 부모님의 걱정과 근심으로 가득 찬 가두리 안에서 살아야만 했다.

세상은 조심해야 할, 이겨내야 할 대상, 서로 잡아먹으려는 놈들이 많은 세상. 잘 해내야 하고 극복해야 하고 보호해야 하고... 지켜내야 해...


우리 가족은 건전하고 선했지만 반면에 조심스럽고 의심 많은 가족이었다.

그게 우리 가족의 중요한 덕목이었다. 덕분에 살면서 크고 작은 피해를 본 적도 없고 남에게 그 어떤 피해를 준 적도 없다. 아주 무난하게 잘 살아왔다. 반면에 가슴 뛰는 삶을 꿈꾸거나 무언가 더 큰 도전을 해 본 적도 없는 것 같다(내 인생의 수많은 도전들이 진짜 도전이었을까?..). 어린 시절 나를 미치도록 드러내고 싶었고 남들 앞에 나서기 좋아하는 관종 of 관종이었던 이유가 이런 걱정과 두려움의 가두리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반항심은 아니었을까? 참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생각들 말이다. 물론 무엇이 더 나은 삶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조심스러운 삶 그리고 도전적인 삶.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를 이해하는데 내 어린 시절과 부모님과의 관계, 부모님의 상처...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받아왔던 생각들.. 이제 조금씩 이해가 가니 마음이 편해진 것 같다.


나는 아버지를 용서하게 되었다.

그것은 아버지가 무슨 큰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그냥 뭐라 할까... 아버지도 나약한 한 인간이었기에 아버지 삶의 모든 순간이 다 좋았을 순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어머니와 우리에게도 말이다. 아버지도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가 있었을 것이고 외로웠을 것이고 거친 인생을 살아오면서 스스로가 만든 방어벽도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 또한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받았던 긍정적, 부정적 영향이 있었을 것이고 그것이 아버지를 형성해 왔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었든 나는 이제 완전히 이해한다. 그렇기에 그런 아버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감사하고 또 용서한다.





이제 나는 내 인생의 가두리를 완전히 나가려 한다. 꽤 늦은 나이지만 지금이라도 괜찮다. 내 인생은 앞으로도 계속될 거니까. 부모로부터 형성된 보이지 않는 인생의 가두리를 완전히 빠져나가는 길은


그것을 알아채고, 용기 있게 직면하고 진실된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것이다.


나는 이제 새롭게 거듭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나 자신이 느껴진다. 나이를 먹었던 아니던 상관없다. 앞으로의 내 인생, 그리고 우리 아이들과 아내의 인생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 하나.

내 부모님에게 무의식적으로 받아온 부정적인 것들을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줄 순 없다. 물론 나 또한 내 아버지처럼 불완전한 한 사람이겠지만 나는 더 생각할 것이고 더 실천할 것이다. 적어도 그 부분만큼은 아버지보다 더 나은 삶을 살 것이다.


세상이 아름답고 진취적인 곳인 이유는
내 생각이 내 세상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내 아이들에게는 이러한 마음의 유산을 물려줄 수 있게 되기를....

나는 아버지 사랑하고 추억하지만 아버지보다 더 빛나는 인생을 살아가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될 것이다.




UnsplashDerek Thomson

UnsplashElijah Hiett



태준열 (taejy@achvmanaging.com)

리더십 코치/컨설턴트25년 동안 음반회사, IT 대기업, 반도체 중견기업, 소비재 기업 등 다양한 기업에서 인사, 조직개발 업무를 경험하였으며 15년 동안 인사팀장/조직 개발실장을 맡아왔다. 현재는 리더십 개발기관 Achieve. Lab의 대표이며 팀장 리더십, 성과관리 등 강의와 팀장 코칭, 리더십 개발 컨설팅, 조직개발 활동 등을 활발히 이어 나가고 있다. 저서로는 <어느 날 대표님이 팀장 한번 맡아보라고 말했다><Synergy Trigger><존버 정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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