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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준열 Oct 07. 2019

누구와 경쟁하는가

나의 고교시절 10km 마라톤 이야기

                                                                                                                                                       

경쟁자의 질주에 말리는 순간 나는 없어지고 경쟁자의 레이스에 종속되고 말 것이다  

<존버 정신- 태준열>                                                 

                                                                                                                                                          

예전 고등학교 때의 기억이다. 1년에 한 번 춘계 체육대회를 했는데 대회 마지막은 항상 10km 마라톤이었다. 매년 할 때마다 이것저것 핑계를 대고 빠지려 했지만 담임선생님은 결코 열외 시켜주는 법이 없었다. 난 솔직히 마라톤을 잘 뛰지 못했다. 항상 지구력과 페이스 조절이 문제였다. 그날도 어김없이 10km를 뛰어야 하는 출발선에서 지옥의 마라톤을 생각하니 차라리 일주일 화장실 청소당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더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은 나와 사이가 좋지 않던 친구가 바로 옆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평소 나와 여러 면에서 경쟁하던 친구였는데 성적도 그렇고 좋아하는 운동 분야도 그렇고 나와 캐릭터가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 겉으로 싫은 내색을 하진 않았지만 은근히 그거 있지 않은가... 서로 싫어하는데 드러내지는 않는 사이.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친구와 경쟁할 이유는 딱히 없었고 오히려 친해질 이유들이 더 많았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난 그 친구가 싫었다.


갑자기 경쟁의식이 발동하면서 이 친구만은 꼭 이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탕' 하는 출발 소리와 함께 힘차게 달려 나갔다. 초반부터 친구를 멀찌감치 따돌렸다. 일단 기분은 좋았다. '내가 이길 거야!!' 마음속으로 외치며 내가 순위권에는 못 들어도 이 친구만은 이겨야겠다는 의지가 불타올랐다. 그런데 중반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호흡은 힘들어졌고 다리는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속도 역시 불규칙했다. 뛰었다 걸었다.. 뛰는 건지 걷는 건지... 역시 초반에 너무 무리했던 탓이었다. 친구는 이미 나를 앞질러가고 있었다. 결국 그 친구는 중상위권으로 마라톤을 마쳤고 나는 꼴찌를 했다 ㅠ.ㅠ 작년에 꼴찌까지는 아니었는데... 내가 너무 오버하고 흥분했던 것 같다. 창피했다.


그런데 솔직히 창피하다고 느꼈던 것은 내가 꼴찌를 한 결과가 아니라 그 친구의 평온한 얼굴을 보면서부터였다. 그 친구는 나에 대해 별다른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자신의 레이스에 집중했고 꽤나 괜찮은 성적까지 올렸다. 반면에 나는 나만의 레이스에 집중하지 못했고 온통 그 친구를 생각하면서  뛰었다. 어리석었다. 내 안에 내가 없고 다른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고등학교 체육대회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다시 한번 나와 타인을 생각해봤다. 경쟁이란 것을 생각해 봤다. 조직생활을 하면서 경쟁상황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원하지 않지만 상황이 우리를 그렇게 만든다. 동기들과의 미묘한 경쟁의식,  어쩌면 부하직원, 상사와도 경쟁할 수 있고, 타 부서와 우리 부서와의 경쟁, 평가, 보상, 상대평가.... 어쩌면 누구나 마음속에 경쟁의 화신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누가 알겠는가 내 속마음을. 나도 나를 모를 때가 있는데.



당시 아무도 몰랐지만 나만 알고 있었던 부끄러움 때문에 '이긴다는 것, 경쟁한다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는 경우는 정말 쉽지 않다. 남이 잘되고 있는 것을 볼 때, 더군다나 나와 경쟁하고 있는 사람이 잘 나가고 있는 것을 볼 때 우리 마음은 흔들린다. 솔직히 그렇다. 심지어 나의 능력을 자책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코 그래서는 안된다. 어쩌면 중위권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나의 레이스가 꼴찌가 되어버린 이유처럼 이스를 펼칠 때는 내 안에 다른 사람을 두면 안 된다.

 나 스스로 중심을 잃게 되면 레이스의 주인은 내가 아니고 타인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 나 스스로를 잃고 있다면 다시 되돌려 놓자. 내 레이스에 말이다.


말이 쉽지.... 쉬운 게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게 지극히 정상이다. 이해한다.

하지만 그다음은?....


현재 내가 무엇을 하고 있으며 왜 하고 있는지에 더 집중하는 게 내 레이스를 잘 마무리하는 방법일 것이다. 항상 배우는 자세로 좋은 것들을 받아들이고 벤치마킹하되 나를 중심에서 밀어내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경쟁은 어제의 나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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