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변화를 만드는 방법은 환경을 바꾸는 것에서 시작한다
“수학의 발전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이론은 무엇일까?”
누군가 저에게 묻더군요. 제 생각을 듣고 싶다고요. 몇 가지 중요한 이론들 또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문제들이 떠올랐습니다. 350년 동안 풀리지 않다가 1995년에 풀린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같은 것도 떠올랐고, 피타고라스 정리와 같이 누구나 알고 있지만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한 수학의 내용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수학의 발전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어떤 수학이론보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숫자 표현 0, 1, 2, 3, 4, 5, 6, 7, 8, 9 아라비아숫자나 기호법 같은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요.
유럽사람들은 14세기까지 로마숫자를 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로마숫자는 가끔 시계에서 보게 되는데, 1에서 10까지는 I, II, III, IV, V, VI, VII, VIII, IX, X 와 같이 표기합니다. I는 1, V는 5, X는 10, L은 50, C는 100, D는 500, M은 1,000입니다. 수 표현은 각각을 더한 값으로 표현하는데, 가령 LXVII는 50 + 10 + 5 + 2 = 67입니다. 큰 수부터 표현하는데, 작은 단위의 수가 큰 수 앞에 오면 빼기의 의미를 갖습니다. VI = 5 + 1 = 6이지만, IV = 5 – 1 = 4와 같은 거죠. IX = 10 – 1 = 9, IIL = 50 – 2 = 48입니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아라비아숫자와 비교하면 너무 복잡하죠. 로마숫자로 곱셈과 나눗셈을 하는 것은 매우 힘들어서 주판을 활용하여 계산을 했다고 합니다. 로마숫자보다 더 복잡한 고대 그리스숫자를 사용하던 때에는 곱셈을 배우러 유학을 갔다고 하더군요. 중세 유럽의 수학은 종교적 탄압으로 거의 1,000년동안 발전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는 사이에 아랍에서는 알콰리즈미 같은 수학자들이 대수학을 정립하고 실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수학을 발전시키는데, 아라비아숫자를 도입하여 사용한 것이 큰 역할을 합니다. 피보나치 수열로 잘 알려진 피보나치가 아라비아숫자를 유럽에 소개하며 15세기 이후 하나 둘씩 아라비아숫자를 받아들입니다. 역사적으로 17세기에는 천재들이 한꺼번에 태어났다고 해서 천재의 시기라고 부르는데요, 데카르트, 페르마, 파스칼, 뉴턴, 라이프니츠 등의 천재들이 폭발적으로 수학, 과학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은 아라비아숫자의 도입이 매우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습니다.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 내용을 담는 형식이 어쩌면 더 중요하다는 것이죠. 형식을 잘 만들어야 그 형식에 담기는 내용이 좋아지는 겁니다. 연관된 사례로 한글의 띄어쓰기가 생각나는데요, 한글에는 띄어쓰기가 없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하시고 한글로 많은 책들이 써졌습니다. 사람들이 편지를 쓰고 일기를 쓰며 한글을 많이 사용했는데요, 1800년대 후반까지 한글에는 띄어쓰기가 없었습니다. 한글의 띄어쓰기를 처음으로 도입한 사람은 흥미롭게도 스코틀랜드 출신의 선교사 존 로스(1842~1915)입니다. 그가 1877년 쓴 한국어 교재 ‘조선어 첫걸음(Corean Primer)’에서 한글의 띄어쓰기는 처음 도입되었다고 합니다. 한글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문자들이 처음에는 띄어쓰기가 없었다고 합니다. 옛날 영화에 나오는 고대문자나 이집트의 문자, 중국의 한자 등을 봐도 띄어쓰기가 없죠. 옛날에는 종이가 귀했고, 양피지에 글을 썼기 때문에 한글자라도 아끼는 것이 매우 중요했을 겁니다. 그래서 띄어쓰기가 없는 것이 어쩌면 당연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띄어쓰기가 없는 한글은 이해하기가 매우 힘들었을 겁니다. “아버지가방에들어가셨다” 이렇게 쓰면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거죠. 띄어쓰기가 도입되고 한글은 더 쉬워졌고 대중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보급되며 우리 민족의 문맹률을 급격해 낮췄던 겁니다. 어떤 문학작품보다 띄어쓰기가 한글의 발전과 보급에 큰 역할을 한 것이죠.
형식과 내용, 어느 것이 중요할까요? 네, 내용도 중요하고 형식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때때로 형식의 중요성을 크게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형식이 내용을 만듭니다. 내용이 잘 풀리지 않을 때에는 내용을 만드는 형식을 고민하는 것도 좋은 접근입니다. 저는 글쓰기를 할 때 형식을 먼저 정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형식을 정해놓고 내용을 채우는 것이죠. 가장 쉽게 활용하는 것이 Why What How 박스입니다. 다음과 같이 내가 고민하는 주제에 Why What How 박스를 그리고 칸 채우기를 해보는 겁니다. 그렇게 칸을 채워보면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내용이 만들어집니다.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봤을 때에는 그 형식이 마음에 들어서 어떤 주제에 대해서 “좋은 점, 나쁜 점, 흥미로운 점”이라는 형식으로 글을 썼던 적도 있습니다. 이상한 점을 흥미로운 점으로만 약간 틀어서 바꾼 거죠. 그렇게 형식을 정해놓고 칸 채우기를 하듯 글을 쓸 때 쉽게 흥미로운 글을 썼던 경험이 있습니다. 내용이 잘 안 풀릴 때에는 형식을 먼저 만들어서 접근한 것이죠. 사람들에게 인상적으로 접근할 목적으로 형식을 고민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저는 처음 칼럼을 고정적으로 쓰기 시작했을 때 특정한 형식을 먼저 정해놓고 내용을 채웠던 적이 있습니다. 그 형식은 어떤 스토리를 먼저 제시하고 그 스토리에 관한 제 나름의 메시지를 뽑아서 정리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사회경험도 적은 제 글을 사람들이 읽지 않으면 어떡하지, 고민하다 제가 전달하는 메시지에서 큰 감동을 못 받아도 인상적인 스토리를 하나 읽는 것만으로도 독자들에게 유익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런 형식을 취했던 겁니다. 내용을 고민하는 것처럼 형식도 고민했던 거죠.
어떤 변화를 만들고 싶을 때 우리는 오마에 겐이치의 명언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을 바꾸는 방법은 3가지뿐이다. 시간을 달리 쓰는 것, 사는 곳을 바꾸는 것,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 이 3가지 방법이 아니면 인간은 바뀌지 않는다. 새로운 결심을 하는 것은 가장 무의미한 행위다”
오마에 겐이치가 지적하는 것도 결국 내용보다는 형식을 먼저 바꾸라는 것입니다.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내겠다는 마음의 다짐을 하는 내용적인 것보다는 시간, 공간, 인간 이렇게 내 생활의 형식을 먼저 바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도 형식이 내용을 만드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겠죠. 형식이 내용을 만든다고 하는데, 멋진 내용을 채워줄 생산적인 형식을 먼저 고민해보시기 바랍니다.
박종하
mathian@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