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성을 바탕으로 창의성을 발휘하자
우리 집 정원에는 달팽이가 몇 마리 있을까?
어떤 수학자가 아이와 정원에서 흙 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잔디에 있는 달팽이를 보고 아이가 “아빠, 우리 집 정원에는 달팽이가 몇 마리나 있어요?”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대충 대답할 수도 있었지만, 그 수학자도 호기심이 생겨서 자신의 집 정원에 달팽이가 몇 마리 있는지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그는 일단 10분 동안 정원에 있는 달팽이를 잡기로 했는데, 잡은 달팽이 마릿수를 세어보니 모두 23마리였습니다. 그리고 이 달팽이들을 풀어주기 전에 패각에 십자 표시를 했죠. 정확히 1주일 후에 다시 10분 동안 달팽이를 잡았는데, 이번에 잡힌 달팽이 수는 18마리였습니다. 흥미롭게도 이들 중 3마리에서 패각에 십자 표시가 발견되었는데요. 18마리 중 3마리, 1/6이 전에 한 번 잡았던 달팽이였던 겁니다. 이로써 그는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전체 달팽이 중 23마리를 잡아서 표시했는데, 다시 잡은 달팽이 중 1/6에서 이런 표식이 발견됐다. 그럼 처음에 잡았던 23마리가 전체의 1/6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정원에 있는 전체 달팽이는 ‘23 X 6 =138’마리라고 추정할 수 있다."
창의적 아이디어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을 어떻게 보셨나요? 혹시 푸셨나요? 이런 질문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처럼 보입니다. 쉽게 풀리지도 않고요. 이런 유형의 질문을 ‘페르미 추정’이라고 하는데요. 실리콘밸리나 월스트리트에서 똑똑한 사람을 채용하는 방법으로 많이 사용합니다. 그런데, 제가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들은 생각은 “뭘 알아야 이런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내겠구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관련된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이 똑똑하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문제를 척척 해결하는 것은 아닐 거 같더군요. 실제로 앞의 이야기는 수학적인 방법으로 생물학을 연구하는 수리생물학자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는 그 분야에서 흔히 활용하는 ‘포획-재포획’이란 방법으로 쉽게 정원 안에 있는 달팽이 숫자를 추정할 수 있었던 겁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전혀 없는 사람이어도, ‘포획-재포획법’을 알았다면 이와 비슷한 문제에 이 방법을 적용해 어렵지 않게 문제를 해결했을 겁니다.
전문성이 있어야 창의성도 있다
“뭘 알아야 아이디어도 낼 수 있다”라는 말을 창의성과 전문성이라는 키워드로 생각해보면, 창의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전문성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전문성이 높다고 해서 높은 수준의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일정 수준의 전문성이 없다면 창의성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그래서 창의적인 사람은 기존 지식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대신, 기존 지식을 기반으로 새로운 것을 재구성합니다. 기존의 것을 잘 배우고 다양하게 학습하면서도, 그 안에 갇히지 않는 것이죠. 이미 알려져 사용되는 방법만 그대로 따라 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방법을 만드는 것입니다.
기존의 방법에 약간의 센스를 더한다
우리는 ‘전문성’을 권위 있는 소수의 전문가가 만들어 놓은 특별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존의 방법을 잘 배우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죠. 하지만 전문성과 창의성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존의 방법에 자신의 사소한 시도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덧붙이는 것이 바로 나의 전문성을 쌓으며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입니다. 다시 말해 일반적인 방법에 자신의 센스를 덧붙이는 거죠.
일반적인 방법에 센스 있는 아이디어를 적용한 사례를 하나 소개합니다. 고등학생들에게 “당신은 담배를 피우고 있습니까?”라고 질문을 하면 많은 고등학생이 곧이곧대로 대답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조사기관에서는 이렇게 설문을 하더군요. 일단, 조사관은 다음과 같은 3장의 카드를 보여줍니다.
학생들은 3장의 카드를 무작위로 섞어서 하나를 꺼내 자신만 봅니다. 그리고 카드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예/아니오’로 표시한 이후 카드를 다시 무작위로 섞습니다. 만약, 학생이 ‘예’라고 표시했다면 그는 담배를 피우는 학생일 수도 있고, 또는 두 번째 카드를 꺼냈을 수도 있는 겁니다. 조사관으로는 어떤 경우였는지 알 수 없죠. 이렇게 응답이 모아지면, 조사관은 계산을 통해서 이 고등학교의 흡연율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가령, 1,200명에게 질문을 했을 때 600명이 ‘예’라고 대답했다고 가정해볼까요? 카드를 무작위로 섞었기 때문에 1,200명 중 1번, 2번, 3번의 카드를 꺼낸 학생은 각각 400명씩이라고 계산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라고 대답한 600명 중 400명은 2번 카드를 꺼낸 것이고, 200명은 1번 카드에 대답한 것입니다. 결국 1번 카드를 꺼낸 400명 중 200명이 ‘예’라고 대답한 셈이기 때문에 이 고등학교의 흡연율은 50%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이렇게 설문을 하는 것은 직접적으로 “당신은 흡연자입니까?”라고 질문하는 것보다 더 정확한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내가 담배를 피우는지 안 피우는지를 직접적으로 밝히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더 정직하게 대답을 하기 때문이죠. 일반적인 조사에 사소한 센스를 덧붙여서 더 정확한 결과를 얻어낸 사례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센스를 발휘하며 아이디어를 내는 것 역시 똑똑한 사람이 그냥 뚝딱 만든 것이 아닐 겁니다. 관련된 일을 많이 경험하고 익숙한 사람이 좀 더 좋은 결과를 얻으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죠.
잘 배우고 그것을 자신의 상황에 맞게 센스 있게 적용하자
“일단 저분들이 하는 거 잘 배워, 모두 외워! 그리고 다 잊어버리고, 네 생각대로 해!”
제가 사회 생활 처음 할 때 존경하는 선배님이 해준 조언입니다. 저는 그분 말이 전적으로 옳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인가를 잘 배우고 그것을 자신의 상황에 맞춤으로 적용하는 것이 창의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존의 방법에 사소한 센스를 덧붙이면서 좀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가는 것이죠.
때로는 기존의 방법론을 새로운 분야에도 적용할 수 있으면 더 좋습니다. 처음 사례에서 살펴본 수리생물학자의 방법론을 생물학이 아닌 다른 분야에 적용하는 사람도 있을 거 같습니다. 축구 경기장에 모인 사람의 수를 추정하거나 사회적인 문제에 관련된 여론 조사나 코로나 19의 무증상 감염자의 수를 추정하는 것에 수리생물학의 방법론들을 적용하는 거죠. 그렇게 한다면 매우 창의적인 접근이 되지 않을까요? 우리에게도 기존의 방법을 먼저 배우고 거기에 자신의 상황에 맞게 약간의 센스를 덧붙여보는 노력이 필요한 거 같습니다.
박종하
mathian@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