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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블링 Dec 14. 2021

집 공부의 매력

feat. 친자확인

대학교 4학년 시절, 나는 임용고시를 앞두고 있었지만 용돈이 궁했던 지방학생이었다.

친하게 지내던 과 조교님이 과외가 들어왔다며 내가 살고 있던 하숙집과 가까운 곳에서 찾는다고 하겠냐고 물었다. 어디든 가야죠 라며 덥썩 물었는데, 고3이라고 한다. 

그럼 어쩔텐가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약간의 부담을 안고 시범과외를 하러 갔다. 

하지만 1시간 후,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열심히 하겠다고 학생의 어머니께 꾸벅 절을 하며 집을 나왔다. 전혀 내 공부에 방해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수업 준비를 해갈 필요가 전혀 없었다는 뜻이다.)


고3인 정연이(가명)의 첫인상은 참 좋았다. 발음은 어눌했지만 누구보다 밝았고 나를 언니처럼 좋아해 주었다. 무엇보다 과외 준비를 안해도 된다는 사실이 정연이에게 더욱 좋은 감정을 느끼게 해 주었다.

정연이의 아버지는 아주 바쁜 분이시라 얼굴을 뵐 수가 없었고, 어머니는 스튜어디스 출신이라 아주 미인이셨다. 그리고 자주 집을 비우셨다. 첫 날을 제외하고 정연이는 대부분 혼자 집에서 나를 맞이 하였고,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해 수학의 정석을 가르치고, 가르치고, 또 가르쳤고, 약간의 허무함을 가지며 수다를 떨다 돌아오곤 했다. 아, 아주 가끔 정연이가 키우는 이구아나의 보호색을 구경하다 오기도 했다.

 

나는 주로 '수학의 정석'을 과외 교재로 사용했다. 지금은 '개념원리'에게 베셀의 자리를 양보했지만, 그 당시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위치의 최고의 수학 개념서였다. 그 당시 내가 과외 주교재로 정석을 골랐던 이유는 베셀인만큼 체계적이고 정리가 잘되어 있기도 했다는것이 첫번째요, 두번째는 학부모님들이 가장 신뢰하고 있는 교재라는 사실이었고 마지막 가장 중요한 이유, 정석은 기본 개념 바로 밑에 증명이나 설명이 아주 구체적으로 나와있기 때문이었다. 즉, 증명부분에 잠깐씩 막히는 부분이 있더라도 훔쳐보면서 설명해 주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에 정석은 참 좋은 과외교재였다. 

개념 설명을 하고 나면 그것을 그대로 적용해서 푸는 유제가 2문제 정도를 풀어준다.

첫 유제는 개념을 적용하여 최대한 자세하게 설명하고는, 정연이에게 이야기 한다.

자, 이거 숫자만 다른거니까 너가 풀어보자.

착한 정연이, 해맑은 얼굴로 집중해 본다. 고민을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대며 뭔가를 끄적댄다. 중간에 지적을 하면 생각의 흐름이 끊길까봐 다른 부분을 확인하며 참을성 있게 기다린다.

5분이나 지났다. 이렇게 진지하게 고민을 하다니...곧 답을 이야기 하겠지? 라고 매번 기대를 하지만, 정연이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선생님!! 도~~~~~~~~~~저히 모르겠어요!!"

"아, 아 그래....;;;; 다시 보자~~"


처음엔 웃기려고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두 번 세 번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자 나중에는 조금 기분이 나쁘기도 했다. '얘가 도대체 내 말을 듣긴 들었나..?' '아니면, 나를 무시하는 건가?'" 어떻게 이렇게 쉬운 기본 내용을 이렇게 자세히 설명하는데 못알아 들을 수가 있지?'

그런데 정연이의 진심어린 표정을 보면 내 추측은 나의 오해인걸로 결론이 나는 경우가 많았다.


요즘 재이(아들, 초2)에게 수학을 가르치면서 자주 정연이가 생각난다.

그리고, 정연이에게는 화를 내지 않았는데 지금은 자꾸 화를 낸다.

이제 마흔인데 벌써 갱년기가 오나... 라고 생각해 보지만, 구차한 변명이다. 

그저 친자확인을 하고 있었을 뿐.

마음속으로 포기하고 웃으며 가르쳤던 그 과외제자만큼만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화를 내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다들친자확인잘하고계시는지 

#집수학 #엄마표수학 #친자확인 #내려놓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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