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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블링 Dec 10. 2021

'금쪽같은 내새끼'의 수학 공부

집 수학이 이긴다

1) 어린 나를 닮은 아이   


텔레비전에서 방영되고 있는 꽤 유명한 육아 프로그램이 있다. 소아정신과 의사가 문제행동을 보이는 아이들의 상황을 관찰하고 원인을 파악하여 그에 맞는 해결책을 주는 내용이다. 이 프로그램의 장르는 ‘육아’ 또는 ‘자녀교육’ 이지만 아이를 키우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이 본다는 기사를 보았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도중 출연한 아이의 부모들은 몇 번씩 눈물을 흘린다. '당신이 의사라 해도 다 알지는 못할거야!'라는 불신의 눈빛을 가지고 녹화를 시작한 사람도 아이의 행동에서 본인의 모습, 결핍, 욕구를 지적당하면 당황하며 가슴 아파한다. 시청자들도 그 상황을 보며 부모나 아이의 마음에 공감하며 본인의 문제점, 또는 어린시절의 결핍을 발견하기도 하고 치료받기도 하며 빠져들게 되는 것이리라.     


우리 집 첫째인 재이의 모습을 보면 꼭 나를 복제해 놓은 듯 하다.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시작하해야 하는 성격 덕분에 난 대부분의 모임의 총무를 도맡아 한다. 재이 역시 이런 내 생격을 그대로 닮아 어린이집 시절, 모든 남자친구들의 가방에 키즈카페에 갈 모임 일시와 연락처를 적어 보낸 전적이 있다. 덕분에 일면식도 없는 분들에게서 연락이 오는 바람이 당황하기도 했고 놀라기도 했다. 외향적인 성격도 꼭 닮아서 어릴 때부터 놀이터에 가면 친구 한 두명은 사귀고 퇴근하는게 다반사 였다.

둘째인 지니는 남편의 데자뷰같은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교 다녀와서 숙제를 먼저 하지 않으면 놀면서도 계속 숙제 얘기를 한다. 어떤 일을 계획하면 성공할 때까지 절대 입 밖에 내지 않는 성격을 닮아, 문제를 풀고는 있지만 정답이라고 생각될 때까지 답을 쓰지 않는다. (보고있는 에미는 속이 터진다.)계단도 절대 두 칸씩 오르지 않고, 문제집도 대충 그림만 보고 문제를 풀려고 덤비거나 어렵다고 뒷 부분부터 하는 법이 없다.  

   

그 프로그램의 의사 선생님이 부모를 파악해서 아이를 이해하듯, 아이와 함께 공부하다 보면 부모를 꼭 닮은 아이와 마주하게 된다. 물론 마음에 들지 않는 내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이면 민망하면서도 화가 나지만, 그래서 더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수학 한 쪽 풀면서도 덜렁대며 틀리는 재이의 모습은, 수업 중 칠판에서 하는 계산도 대충해서 틀려 민망해 하는 바로 내 모습이다. 화가 나지만 나를 닮아 어쩌겠냐고 중얼거리며 ‘두세 번 점검하는 법’을 알려준다. 문제 풀이 과정을 써보라고 몇 번이나 얘기해도 대답이 없는 지니의 모습에 숨이 찬다. 하지만 곧, 한 가지에 집중하면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상태가 되는 지니 아빠의 모습이 오버랩되며, 머리로만 생각하는 것보다 ‘쓰면서 풀어야’ 오류를 파악할 수 있다고 알려준다.     


어떤 명강사라도 아이 엄마의 모습까지 확인해가며 아이를 이해할 수는 없다. 아이에게서 보이는 내 어린 모습, 내 부족한 모습을 완전히 이해하고 보완해가는 일은 집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다.     




2) (의도가 다분히 섞인) 내 모습을 닮을 아이    


집 공부를 하다보면 재이에게서 나의 단점과 똑같은 그것이 보인다. 조금 업그레이드 되어도 될 법한데, 어쩜 그리 디테일까지 살아 있는지 어이가 없다. 

“나 때는 그러다가 선생님께 혼난 적이 있었고, 혼자 울었던 적도 있고, 어차피 그러면 다시해야 해서 시간이 두 배로 들고,..그러니까 너도..."  

수십 번 얘기 한다고 재이가 나와 180도 다르게 훌륭해질까? 

그래도 계속 이야기 하면 은연중에 머리에 박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안할수가 없다. 꼰대 같아 보이는 내가 싫지만 이렇게라도 이야기 해주지 않으면 내가 했던 실수를 재이도 할 것 같다. 그런 유전자를 물려준 주제에 어떻게 다르게 살라고 이야기하고 있을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고사성어를 '부모의 잔소리를 백번 듣는 것 보다 부모의 모습 한 번 보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라고 해석을 하며 나름 이를 역으로 이용해 보고 있다. 내 이미지를 자체설정(?)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아직 엄마의 실체를 모르는 밤바는 설정된 엄마를 닮아가게 되지 않을까!라는 작은 바람으로…


재이가 책상에 오래 앉아 있으면 좋겠어서, 함께 책상에서 (유난히 시간이 빨리 간다고 구시렁대며)자리를 지킨다. 수학을 재미있어 하면 좋겠어서 굳이 옆에 앉아 30년간 지겹게 해 온 수학 문제를 재미있(어 보이)게 푼다. 수학은 손과 머리를 쓰는거다 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머리를 쥐어 뜯어가며) 식을 쓰고 지우고 또 쓰며 문제 푸는 모습을 보여준다. 수학은 멋있는 학문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안 그려도 되는 그래프를 굳이 크고 화려하게) 그리며 색칠해 본다.     


난 수학을 업으로 삼고 있긴 하지만, 학창시절 수학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그 엄마에게 태어났기 때문에 재이도 역시 수학을 썩 좋아하지 않는 거겠지. 하지만 계속 수학을 부담스러워하는 과목으로 남겨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수학이 썩 좋지 않다는 너의 취향은 일단 인정. 하지만 자신있는 과목이 되게 하는건 지금부터 하기 나름이라 믿으며 오늘도 함께 자리를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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