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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블링 Dec 16. 2021

집에서 하는 수학공부에서 꼭 기억해야 할 것.

"완벽한 것은 없다."

집에서 하는, 아니 시키는 공부는 상당히 어렵다.


혹자는 공간이 분리되지 않아서 라고 한다. 자는 공간과 공부 공간 또는 노는 공간이 분리가 되지 않아서라 한다. 어떻게 보면 맞는 것 같기도 한데 고등학교 때 맨날 엎드려 자는 책상에서 책을 파고들 듯이 공부한 경력도 있고, 한 평도 안되는 고시원방의 침대 겸 책상에서 미친 듯 집중한 기억도 있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확보해 보고자 미친년처럼 일주일에 한번씩 가구를 옮겨 댔다. 아이들은 학교만 다녀오면 바뀌어 있는 집 가구들을 보며 틀린 그림 찾기 하는 거냐며 재미있어했다. 조금은 도움이 되었나 싶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신통찮은 집중시간, 그에 비해 얻은 바닥의 기스들과 하나 둘 망가져가는 가구 그리고 나의 근육통에 비하면 남는 장사는 아닌 듯 하다.


어떤 이는 꾸준하지 않아서 라고 한다. 남편과 크게 싸우고 10시간 무단외출을 했을 때, 그리고 학교(나의 직장)에서 맡은 동아리 아이들을 데리고 수학축제에 참여하여 8시간 호객행위로 모든 에너지를 소진한 후 집에 와서 그대로 뻗었을 때, 같은 아주 특수상황을 제외하고 나름 꾸준하게 해 나간다고 자부하고 있지만, 꾸준하게 한다는 것은 전제조건일 뿐 결코 집공부가 원만하게 굴러가는 것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유튜브, 책, 강연을 통해 어느 전문가, 어느 박사님의 의견을 아무리 들어 보아도 우리 집에서 내 아이를 쉽게 공부 시키는 것에 대한 무릎을 칠만한 방법을 찾을 수 없었고, 집공부가 힘든 것에 대한 그럴만한 이유를 꼭 집어 찾을 수 없었다.




첫 고비는 2학년 1학기 첫단원 '받아올림'이었다.

나는 상당히 다혈질이고, 승부근성이 꽤 있는 편이라 될 때 까지 도전하는 편이다. 엄마의 설명을 도저히 알아 먹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눈을 꿈뻑대는 아이를 보면서도 그 얄궂은 오기가 발동한 것 같다. 


온라인 수업처럼 아이의 인형을 출연시켜 동영상 강의를 만들어 보기도 했고 - 인형 볼 때만 눈이 반짝 했다.

학교 시험지 양식을 가져다가 시험지를 만들어 수학시험을 치기도 했으며 - 틀리고, 운다.

모르는 내용만 무한 반복 시키기도 했다- 방법이 아닌 문제를 외움.

아침마다 연산을 시키기도 했고- 아침부터 온 식구가 저기압이 됨.

수학 게임을 하기도 했으며- 이거 수학이잖아! 하면서 게임을 싫어하게 되는 기현상 발생.

수학 만화를 하루에 몇 페이지씩 읽는 숙제를 내주기도 했다- 이야기만 읽고 수학부분은 스킵.


이런 과정을 거치며 깨닫게 된 한 가지.

'맞다. 재이는 나를 닮아 수학을 별로 안좋아하는 거다. '

(수학선생이라고 모두 수학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초등학교 교육과정은 참으로 과학적이다. '받아올림' 정도의 좌절 적합 단원이 있으면 그 다음 단원은 좀 쉬운 '도형'이 나온다. 에미의 썩은 마음을 애써 뒤로 하고 재이는 도형에서 자뻑타임을 가진 후에 2학년 1학기를 그렇게 지나왔다.


그.런.데.말.입.니.다!!!

2학년 2학기에 시간 덧셈이 나오는데, 갑자기 재이가 받아올림에 관한 내 설명을 이해하며 풀어내기 시작했다. 눈이 커지고 콧구멍이 벌어졌다. 뭐지, 이건 뭐지, 날 닮은게 아니었어! 그럼 그 때 왜 그렇게 개고생을 했던가.




남편이 결혼하면서 가지고 온 책 중, 절대 버리지 못하게 하는 책이 있다. 

노구치유키오 작가의 ⟪초학습법⟫ 이라는 책인데 거기서 릿쿄 대학의 세키 세쓰야 교수는 


“단계를 밟아서 한 걸음 한 걸음씩 이해해 가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라고 한다. 


예를 들면, 분수의 나눗셈을 계산할 때, 사람들은 보통 나누는 수의 역수를 곱하는 방법으로 계산한다. 그런데 왜 이렇게 계산할까? 그 이유를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세키 교수는 “이공계 학자 중에서 극히 고도의 수학을 매일 구사하고 있는 사람이라도, 이 질문에 즉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즉, 아무리 노력해도 모르면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 마침내는 알게 될 것이다.”라고 이야기 한다.


나는 수학교육전공이지만, 대학교 2학년 때 해석학개론 수업의 '입실론-델타'내용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교수님은 영어로 계속 설명하셨고(아니, 읽어 주셨고) 들으면 들을 수록 점차 멘붕에 빠졌다. 그러나 하필 그때, 난 인간관계에서의 좌절을 처음 겪은 때였고 도서관 외에는 갈 곳이 없었다. 할 일이 없어서 시작한 공부이긴 했지만 도저히 인간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방법을 몰랐다. 어쩔 수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외워버렸고, 그걸로 A+를 받았다.  

그리고 그 의미를 이해한 것은 2년 동안 위상수학, 현대대수학 등의 과목을 공부한 후 였고, 정확히 말하자면 그 모든 과목을 통해 여러번 반복하고 또 반복한 후, 즉 임용고시를 준비할 때 였다.


개고생이 헛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개고생을 할 대로 하다가 공부자체를 포기하거나 수학에 대한 마음을 닫는 것 보다는 '여기는 다음에 한 번 더 짚고 넘어가자'는 생각을 다이어리 어딘가에 적어두고 마음을 다치지 않는 선에서 넘어가는 것이 집공부를 이어갈 수 있는 큰 팁이다.


지금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 집공부다. 언제 또 이렇게 알콩달콩 아이와 함께 앉아 있을 수 있겠는가.

제 여친 생기면 나한테 눈길이나 한번 주려나 모르겠다. 

(결론은 또 왜 이런거지...ㅠ)


#집공부 #엄마표수학 #엄마표공부 #초등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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