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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블링 Dec 17. 2021

너의 말, 찰떡같이 알아듣기

아이 니드 파파고

"엄마! 나 민수에게서 절교장 받았어!!"


낮에 받았다며 제이(아들, 초2)가 쪽지를 하나 건네 준다. 절교라니...!!!

초등학교 2학년 남자아이가 절교라는 말을 알고 있다는 것도 충격이었고, 그 절교장을 내 아들이 받았다니 내아들의 인성과 교우관계가 심히 걱정이 되는 순간이었다. 서둘러 받은 쪽지를 열어보니, 60도쯤 누워있는 글씨로 아이의 친구인 민수가 한껏 감정을 담아 쓴 글씨가 눈에 들어 온다.


"절교장/ 나는 준혁이가 싫은데 너는 계속 준혁이랑 절교를 안해서 너랑 절교함"


이게 이유야?? 물어 보니 그렇단다. 그런데 더 당황스러운 것은 이 절교장을 주고 나서 같이 집에 왔다고 한다. 오면서 젤리를 줬다고... 흠.........


이 세상에는 대놓고 눈치채지 못하는 마음이 많다. 민수의 절교장은 '너가 좋다'라는 뜻이고, 남편의 헛기침은 '나 지금 쓰레기분리수거하러 가니 칭찬해줘'는 뜻이고, 우리 반 하늘이의 "쌤 너무 좋아요"는 '선생님 오늘 수업 좀 일찍 마쳐주세요' 라는 뜻이다. 부장선생님의 "선생님, 요즘 일 많죠~" 라는 말은 지금 뭐 시킬테니 긴장하라는 뜻일때가 많다.

성인이라면 어슴푸레(?) 눈치챌 수 있어야 하는 것들이고 나는 나름 잘 캐치하며 살아오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책상앞 재이와의 대화에서는 매번 뭔가 매끄럽지 못함을 느낀다.


"이거 하기 싫어"  "하기 싫다고 안하면 나중에 하고 싶어도 못해"

"엄마 싫어!"    "엄마 싫으면 좋은 엄마 찾아봐"

"엄마 설명은 못알아듣겠어"  "집중을 해야 알아듣지 제대로 읽지도 않으면서 뭘 알아듣냐"

"너무 많아"   "이거만 하면 실력 하나도 안 늘어"

"이거만 하고 가면 안될까?"  "연필 좀 제대로 잡을 수 없어?" 

고2수학에 나오는 일대일함수를 떠올리며 투덜 하나에 정답 하나씩 꼭 꼭 맞춰 대응을 하곤 한다.


하지만 게임에서도 제대로 된 답을 고르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않듯 엄마가 제대로 된 답을 입력하지 않았기에 재이는 그대로 얼음이 되어 진행불가가 되었다.


저기서 적절한 대답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한 끝에 재이에게 직접 물어 보기로 했다.

제일 좋아하는 월드콘을 물려주며 어드벤처 타임을 한시간 가량이나 옆에 앉아서 본 이후에 슬그머니 물어보았다. "너가 수학시간에 그런 이야기 하고, 하기 싫어하는 이유가 뭐야?" 기분이 한껏 좋아진 재이는 단순 명료하게 이야기 해 주었다.


"어려워!"


"!"


당황해서 방으로 들어왔다. 

머릿속으로 다시감기를 해보니 고등학교에서 이미 선행으로 내용을 다 알고 온 아이들에게 설명을 주~욱하고 "풀어봐" 했던 것처럼 초등학교 2학년에게 똑같이 하고 있었다. "앉아서 공부해" 하면 알아서 공부하는 야간자율학습시간의 모범생 고등학생처럼 앉혀만 놓으면 공부습관이 들 줄 알았다.

무식했다. 부끄러웠다. 미안했다.


'절교장'이라고 쓰인 글자가 '너랑만 친하게 지내고 싶어' 라는 뜻이었다면 '하기 싫어'라는 말은 '어려우니 도와주세요'가 아니었을까. 

너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미안했어. 앞으로 강아지떡처럼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 볼게.


'파파고' 같은 '아들고'가 있으면 좋겠다.


#초등아들 #파파고요청 #산소호흡기요청 #너의눈높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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