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하지 않아 보이지만 노력한다고 말하는 아이

친절과 책임 사이에서

by 심원장

노력하지 않아 보이는데 아이는 분명히 말한다. “저 노력하고 있어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잠시 멈춘다. 아이의 말을 믿어야 할지, 내가 보고 있는 현실을 믿어야 할지 망설이게 된다.


아이의 기준에서 노력은 분명 존재한다. 학원에 오는 것, 자리에 앉아 있는 것, 모른다고 말하는 것. 그 자체로 아이는 하고 있다고 느낀다. 하지만 학원에서 보는 노력은 조금 다르다. 혼자 붙잡아 본 시간, 다시 풀어본 흔적, 틀린 이유를 스스로 말해보려는 시도. 그런 것들이 남아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아이가 움직이고 있다고 느낀다.


문제는 그 사이에 있다. 아이는 노력한다고 말하고 나는 아직 아니라고 느낀다. 그리고 그 간극을 늘 어른이 메운다. 설명을 더 하고, 다시 알려주고, 대신 정리해주고, 대신 기다려준다. 친절은 그렇게 시작된다. 처음에는 분명 도움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친절은 아이가 혼자 서지 못하게 만드는 손이 된다.


밥을 혼자 먹지 못하는 어른에게 “그랬구나, 그럼 내가 먹여줄게”라고 말하는 것이 정말 도움이 되는 걸까. 언젠가는 숟가락을 쥐어줘야 하지 않을까.


하위권 아이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래서 더 묻게 된다. 나는 지금 이 아이를 돕고 있는 걸까, 아니면 대신 살아주고 있는 걸까. 학원은 돌봄의 공간이 아니다. 성과가 나와야 하는 곳이고, 아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해야 의미가 생기는 공간이다.


노력은 말로 증명되지 않는다. 노력은 남아 있는 흔적으로만 보인다. 그 흔적이 보이지 않을 때 교육자는 점점 불안해진다. 친절해질수록 더. 이 아이 하나로 인해 하위권에 대한 생각이 다시 시작되었다. 아이 때문이 아니라, 내가 어떤 어른으로 남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 때문이었다. 어쩌면 설명을 더 해주지 않기로 하는 순간이 가장 늦은 친절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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